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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3:12-17 인류의 스승 예수(주일설교)

2011.05.16 01:29

김성찬 조회 수:1202 추천:89

요13:12-17 인류의 스승 예수
2011.5.16(월)


2011. 05. 15 (sun) 주일설교

요한복음 13장 12-17


김나리 자매 받아 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선언을 하셨다. 나는 00 이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무리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

 

감히 누가 이러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예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했다면, 시간이 지나면 그게 다 엉터리다 거짓말이다 판정이 나게 마련이다.

주변에 정통 기독교 안에서도 우리 주변에서도, 영성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영성 장사치들

말로는 굉장히 거룩하고, 외롭지 않고, 세상의 욕망도 없고, 전혀 엉뚱하게 사는데

십자가의 길을 어떤 사람이 썼는데, 저건 거짓말이다-

외국에 있는 명상가들, 신학자들의 책을 잘라 편집해서 책장선언 하고 강인하는데, 아니다.

미혹하는 거짓들이 너무나도 많다. 속지 말라.

그런데 이런 말을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요, 라는 말을 누가 했다고 한다면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은 금방 들통이 날 뿐만 아니라 죽고 나면 판정이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욕해도 예수를 욕하지는 않는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기독교인들이 요즘 많이 비난받고 있다. 하지만 예수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생명이시고 선한 목자시고, 생명의 떡이시고 참 포도 나무 시다.

자기가 자기를 선언한대로 사셨던 분이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 너희 말이 옳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고난을 지시는 주가 가까워 오셨기 때문에 준비를 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내가 죽지만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는 부활 또한 예고하셨다.

이 땅은 유한하고, 곧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다. 주인공으로 오실 것이다, 라는 것을 예고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후자는 듣지 않으셨다. 당신이 죽은 후에 부활하던, 그건 우리와 관계가 없다.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내가 출세하는 것이오, 라고 생각하는 제자들이 많았다.

그렇게 따랐던 제자들이 예수께서 수난을 예고하시자, 그들이 침울해졌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신다. 세상에 있는 자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유월절 희생양으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다.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다. 하인들이 주인들의 발을 씻겨준다. 그 일을 하셨다 예수님께서,

수제자 베드로가 이에 깜짝 놀라서, 이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안됩니다.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그렇다면 내 몸도 씻겨 주시오,

발만 씻으면 된다.

우리는 값없이 의로움을 얻었다. 우리를 정제할 자가 아무도 없다.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목사 되어가기, 성도 되어가기,

이건 신학과 교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미 구원을 주신 자답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발을 씻기신 후에 다시 앉아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요즘에 선생이란 말은 지식 전달의 수단이 되는 기계 같은 존재이다.

지식 전달의 가치마저도 상실된 상태. 학교서 배울 것이 없다. 이게 오늘의 현실이다.

스승의 날이다. 선생들에게 괴로운 날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스승이란 말이 있었다. 스승은 일본 말, 센세이 라고 하는 선생이란 말을 가져다가 썼다.

우리가 스승이라 할 때는, 뭔가 배울 점이 있는 사제 지간의 모범이 되는 의미로 사용됨.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자신이 그런 분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스승의 특징은 본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라. 본을 보여라. 하셨다. 오늘 우리는 스승의 날도 맞이했고, 부모 자녀의 관계도 중요하고, 스승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모범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좇아가는, 그런 성도가 되자,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전한다.

 

평범한 식물에 비범한 사랑이 있다- 주먹밥 한 덩이를 내가 배고플 때 나에게 준사람, 그 사람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 그 주먹밥 한 덩이가 소중한 매체이자 도구이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사람이 사람 되는 것은, 스승 되는 것은 작은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하찮은 일로 큰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

발 씻기는 것 아무것도 아니어 보이지만- 신분의 차이가 심했던 그 당시에는 큰 일,

차별의 벽을 깨는 것, 모범을 보여주신 것,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른다.

남자는 월등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남자나 여자나,

이러한 차별도 예수님께서는 거부하셨다.

로마의 감옥에서 바울을 만난다.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만난다. 그가 결단한다. 다시 주인의 집으로 돌아간다. 자기가 주인의 집에서 뭔가를 훔쳐왔던 도적에서, 이스라엘의 밖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처럼, 새 사람이 된 누구처럼,

우리의 형제 오네시모를 너에게 보낸다. 형제를 받아들여라. 이건 빌레몬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그가 예수 안에서 본을 보인 사람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차별’을 타파하시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

빌레몬에게 바울이 간청한다. 그가 너에게 빚진 것이 있으면 내가 다 갚아주마. 바울은 빌레몬에게 형제로 간청한, 멋진 사랑의 시를 쓴다. 본을 받을 만큼 그런 행위를 하는 자가, 그 사람이 스승이다. 그 사람이 주인이다. 돌아가서 빌레몬에게 용서를 구한다. 형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결과가 도출되는가?

전에는 종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빌레몬을 섬겼지만, 그 후에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빌레몬을 섬겼다.

 

성도의 교제란 말은 그런 말이다.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세상의 신분과 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하나 되는 것이다.

직분이 직위가 아니다. 목사고 장로고 권사고 집사고 대접받아야 할 직위가 아니다. 직분일 뿐이다. 직책일 뿐이다. 그 직분은 참 무거운 것이다. 성도들은 대접만 받으면 된다. 하지만 직분 맡은 사람은 성도를 돌아보고 목자를 보좌하며 성도에게 긍휼을 베풀고, 지도하고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율법으로 교리로 사람을 난도질 한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겸손한 법이 절대 없다.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자기를 낮추고 낮춰서..

나 같은 사람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하겠는가. 이런 마음으로 직분을 맡아도, 시간이 지나면 행세한다. 대접받으려고 한다. 자기는 의당 그렇게 될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봉사할 수 없다. 낮고 천한데서 왔다.

큰 사고는 용서한다. 하지만 작은 사고는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 그게 잘못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스승 되심은, 주되심은, 고정 됐던 잘못된 사상과 관습과 관행을 예수님께서 뒤집으신 것이다. 가난한 자의 부유가 되신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참 스승이시고, 본받을 만한 분이시다.

스승은 죄를 대신 지는 사람이다. 내가 다 책임질게, 이게 리더. 내 호주머니 털어서 교회를 지킨 사람이 주인공. 자기 호주머니가 비어있고..

교회가 가는 수순을 보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다.

교회의 종말. 한국 교회 복음이 없다.

나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에는 신들매를 풀기도 어렵다.

아이들의 여러 가능성을 테스트 하자.

예수님을 본받자.

본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본이 되는 가정 될 수 있게, 본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