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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나타난 신령과 진정의 예배(1)

2008.07.11 03:25

윤사무엘 조회 수:1644 추천:49

 

                            “구약성경에 나타난 신령과 진정의 예배” (1)


                                                        윤사무엘 목사 (NJ감람산교회)


      1. 들어가는 말


       구약성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인생으로부터 바른 예배를 받기를 원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구약에서 보면 예배를 '아바드'(‘avad)라고 하는데 섬기고 봉사한다(to serve)는 뜻이다. 종이 그 주인을 위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봉사하고 위하는 태도(참고, 눅 17:10 무익한 종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를 말한다. 또 '사하'(shachah)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코와 배와 무릎이 땅에 엎드리어(to prostrate) 경배한다는 의미가 있다. 독일어로 번역된 Kult 는 라틴어 kultus에서 나온 말로 ‘종이 땅에 엎드려 주인이 무슨 심부름을 시키든지 응할 수 있도록 대령하고 있는 자세’를 말한다. 구약성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예배의 모습을 정리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세로 최대의 봉사를 하며, 명령이 하달되면 최선을 다해 섬기며, 하나님 앞에 나와서 경배하고 그를 찬양하며, 그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감사를 드리며,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을 다짐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예배란 곧 제사(sacrifice)인데,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양, 염소, 소, 비둘기를 바치는 희생이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더욱 깊어지며, 헌신과 봉사를 다짐하게 되었다. 예배를 통해 소명을 받으며, 회개와 죄사함이 이루어졌다.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결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도 했으며 예배의 핵심인 언약(계약 Berith=covenant)이 현재 우리에게 체결되었다(신 5:2-3). 즉 예배를 통하여 과거에 조상들에게 일어났던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재현(再現, re-presentation)되는 하나님의 드라마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예배는 공동체의 예배이다(corporate worship). 가족단위, 지파단위, 나라단위 등 공동체의 예배가 정기적으로 드려졌다. 이스라엘의 생활 중심은 예배였다. 자연환경과 보이지 않는 악마와 악령과의 대결에서 인간 자신의 힘으로만은 항상 패배자란 경험을 하기에 그들은 이 잔혹한 자연의 힘과 그 신비한 악령과 마력을 이길 수 있는 다른 힘을 원했다. 그 힘이 예배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이라고 믿었다. 예배는 하나님의 도움과 은총을 받는 행위로 간주했기에 모든 예배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예배를 중단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도움과 그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배의 포기는 바로 생의 포기와 삶의 중단이라 생각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예배라면, 예배가 어떻게 무너지며, 왜 무너지며, 어떻게 바른 예배(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이 예배를 통하여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첫사랑이 회복되며, 순수한 믿음이 회복되며, 공동체가 회복되었다. 이것이 나이스크 회복 신학의 주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예배만큼 중요한 가르침이 없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예배의 순서와 내용, 예배의 준비와 뒷처리, 예배의 시간과 장소, 예배의 목적과 정신 등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가르치고 있다.  바른 예배,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를 자세히 가르치며, 반복적으로 드리는 예배이지만 드릴 때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드려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 이외 다른 신에게 예배드리는 것을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성서는 예배의 지침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구약성서에서 보여주는 예배에 대한 가르침을 소개하고자 한다.

 

      2. 구약신학에서 예배에 대한 연구사


예배에 대한 이해에 기여한 초기의 학자는 거의 신구약 성서학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1960년대에 예배의 성서적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 신구약 학계에서는 이 주제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폰 라트(G. von Rad)1),W. 해릴슨(Walter Harrelson)2)을 비롯하여 로우리(H. H. Rowley),3) 모빙켈(Sigmund Mowinckel),4) 한스 크라우스 (Hans-Joachim Kraus),5)  드보(Roland de Vaux),6) 쿨만(Oscar Cullman),7) 폰 알멘(J. J. von Allmen)8)등을 열거할 수 있다.


구약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배는 중심주제가 되지 못했다. 오경의 자료설, 종교사학적 연구, 전승연구, 비교연구 등에 관심이 많았지 진작 중요한 예배문제는 무게있게 다뤄지지 아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학자들은 예배문제를 부분적으로 다루어 왔다. 여기서는 구약학계에서 취급되어온 예배문제를 개관해 본다.


종교사학파의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은 문화사적으로 이스라엘 예배를 3단계로 분석했다.9)

(1) 출애굽기 34:18이하(출 24:14-17) 나타난 대로 농경문화적인 배경에서 시작한 맥추절 수장절과 같은 예배로, 예배의 목적이 땅의 축복을 목적한 것으로, 그들의 1년 농사의 결과인 추수가 풍작되기를 기원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나안 원주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2) 신명기 16장에 나와 있는 대로 이스라엘의 삶이 땅과 자연에만 의지하지 않고 역사적 사건과 관련됨을 의식한 정치사적인 사건을 중심한 예배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출애굽 사건이 일어난 때에 시작된 유월절 예배에서 그들의 하나님과 자기들과의 관계성의 뜻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다. (3) 제사 문서(P)에 나타난 예배개념과 의의로서(민 28-29장, 레 23장) 농사와 관련된 맥추절이나 정치사와 관련된 유월절 예배와는 달리 속죄의 의식, 번제, 화제 등 의식과 규약이 제도화되어진 예배를 보게 되는 단계이다. 그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예배 역사는 유치한 자연종

교적인 형태에서, 윤리적 의미를 강조하는 단계로, 그 다음은 의식적인 면을 더 강조하는 제도화된 예배로 발달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벨하우젠을 이어나간 학풍은 진화론적 이성주의the evolutionistic rationalism of the Wellhausen School)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런 종교사학파적 입장과는 달리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은 이스라엘 예배의 역사보다는 그 생성과정과 발전 경로를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삶의 정황’ (Sitz im Leben = setting in life)에서 보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게 되었다. 양식사 연구의 초석을 놓게 된 궁켈은 시편의 문학적 양식을 찾아 분석하면서 시편의 배경은 예배였다고 강조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체적인 삶의 환경에서 예배가 시작되어 적절한 기도와 찬송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시편에 수록된 시들은 단순한 서사시가 아니라 지어진 동기는 항상 예배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가령 시편 45편은 왕의 혼인예식을 성전에서 드리게 될 때 부른 찬송이며, 20편은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적과 더불어 싸우려 전쟁터에 나갈 때 먼저 하나님의 성소에 모여 제사장의 사회 아래, 승리를 가져오며 그들의 무운이 장구하기를 기도하는 예배의식에서 나온 시이며, 21편은 전쟁에 나간 왕과 군사들이 승리를 얻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성소에 모여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때 부르기 위해 지어진 것이었다. 예배는 예배 그것을 위하여 드린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생의 사건이 있었다. 즉 삶의 자리 또는 구체적인 삶의 환경에 때라 예배가 드려졌다는 것이다. 칠칠절, 수장절, 유월절 예배, 속죄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그들의 삶에서 얻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구원이 감사해서 드린 것이다.10)


구약성서 자료의 전승된 역사를 다룬 알트 (Albrecht Alt, 1883-1956)는 구약의 율법의 기원을 연구하면서 그 율법들이 단순한 사회의 윤리적 법질서를 규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맺은 계약을 갱신하는 예배의식을 집행하는 가운데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존재 의의와 그 사명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율법도 예배의 선물로 여겼다.11)


알트의 제자인 마틴 노트(Martin Noth, 1902-68)는 이스라엘 역사 형성이 전승의 기원과 보존 및 육성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 경우에도 그는 이러한 전승의 과정이 이스라엘의 예배 사정과 긴밀한 관계에서 되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승의 과정에서 예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12)


스칸디나비아 학파(혹은 Uppsala-School, 소위 예배역사학파 Kultgeschichtliche Schule=Cult-history School, Wilhelm Gronbeck, S. Mowinckel, Johannes Pedersen, Aage Bentzen, Geo Widengren, Ivan Engnell, Alfred Haldar, A.S. Kapelrud 등)에서 시편의 제의적 연구를 많이 하여 예배연구에 공헌을 많이 하였다. 제사문서(P)의 체계적인 연구도 예배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구약에서는 화해를 위한 희생 제사가,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화해를 기념하는 성찬 예식이 예배의 근원적 의미를 보여 주고 있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예배는 모두 화해(reconciliation)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짐승의 희생을 통해 죄사함을 받거나 (레1:5, 삼하24:24)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고후5:17-19) 예배는 화해를 이루시는 분에 최상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모빙켈(Sigmund Mowinckel, 1884-1965)은 궁켈의 영향을 받아 시편의 문학적인 유형을 발전시키면서 고대 이스라엘의 예배의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였다, 고대인의 생활 그것이 종교요, 그 종교는 교리와 윤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전하기 위한 예배의식이 중요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들의 날마다의 생활이 자기 자신들의 지혜와 힘으로 되어진다고 생각지 아니하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의해서 되는 것으로 믿기에 그들은 하루의 생활을 예배로 시작하고 또 예배로 끝맺는 것으로 생각했다.13)


궁켈의 제자인 폰 라트(G. von Rad, 1901-1971)는 이스라엘 신앙 형성이 그들의 예배의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또 이 신앙은 어느 개인 신앙 지도자에 의하여 다음 세대로 전승되어간 것이 아니고, 그들이 각종 절기와 예배를 지키는 일로 전승되어 간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공적인 예배 환경과 계기를 가짐으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갱신하며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란 의식을 굳히고 또 새롭게 했다고 볼 수 있다.14) 구약성서 신학의 기초를 이스라엘에 전승되어진 신앙고백(Historical Credo, 신 26:5-10)에 두고 있으면서 이를 예배의 주제로 여겼다. 이스라엘은 그 예배를 초기에 초라한 초막에서 가졌든지, 또는 가나안에 정착한 초기에 열두지파 동맹의 중심에서 가졌든지, 단일화된 중앙성소에서 가졌든지, 장소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예배의식의 차이가 없이 예배시간 마다 이 신앙고백을 한다. 그 예배는 과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선조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를 분명히 기억시키며, 동시에 과거에 도와주신 그 구원이 오늘 현재도 꼭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예배이라는 것이다. 구약 신명기서는 이러한 예배의 의미를 강조하는 증거로써 ‘오늘’(this day)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예배의식을 통하여 오늘 나의 사건으로 현재화 시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신 5:3) 이런 현재화 예배의식은 신앙의 유산을 자여손에게 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구약에서 ‘신앙의 전승’ (transmission of faith)의 문제는 예배와 직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예배가 결코 성전 안에서 어떤 의식을 집행하고 거기 참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성전 밖에서도 가정에서도 삶의 현장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예배가 곧 삶, 삶이 곧 예배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배공동체(worshipping community)였다. 구약성서에서는 우상숭배의 근절과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예배를 강조하고 있다. 고대근동 고고학의 발달로 팔레스타인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제의 장소가 발견되고 있다. 그 대부분이 우상 숭배의 제단이다. 어느 촌락이나 도시(state-city)이건 한가운데 신전(shrine)이 있었다.  구약에서 성소(聖所)의 개념은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 즉 예배 장소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기 위해 택한 곳이라고 나타내고 있다 (출 2:24, 신12:5, 12:21, 14:23-24, 왕상8:15,30).  고대근동지방의 종교(바알 종교, 가나안 토속종교, 바벨종교, 이집트종교 등)에서는 의식만 잘 갖추면 신들이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준다고 믿었다.15) 예배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에 더 신경을 썼다. 이에 비해 구약성서의 예배자는 하나님과 체결한 계약의 약속들을 잘 지키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진정의 예배를 드리기를 힘썼다.

       

예배 회복의 회복은 공동체의 회복이며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었다. 이 예배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벨, 에녹, 노아와 같은 인물을 당대에 선택하시고, 바벨탑 이후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선민의 조상을 삼으셨다. 의인의 특징은 믿음으로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바른 예배를 찾아 그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그들의 그릇된 형식적인 예배, 습관적인 예배, 겉모양만의 예배에 대하여 “나는 너희 절기를 미워하며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한다” (암 5:21, 7:12-13)이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는 마음과 정신을 딴 곳에 팔아먹은 속이는 예배이기에 이런 예배를 하나님은 미워하고 싫어하고 기뻐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우리 예배가 우리 인간의 드리는 종교적인 행사에 그치고 하나님 아버지의 미워하는 일, 싫어하는 일, 기뻐하지 않은 일이라면 이처럼 종교적인 불행은 없다. 아모스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가 드리는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않겠다. 너희가 살진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릴지라도 나는 돌보지 아니하겠다. 너희 찬송소리를 내 앞에서 그치게 하라. 너희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겠다.” (암 5:22-23)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 (암 5:24)은 예배의 생활화를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아모스뿐만 아니라 이사야 (사 1:10-17), 호세아 (2:11, 3:4, 4:8, 17-18, 6:6-7), 미가 (6:7-8) 등 8세기 예언자들은 대체로 반제의적 예언자(Anti-cultic prophets)였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예배를 없애자는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른 예배 회복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잘못된 예배를 더 이상 형식적으로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회복운동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하에 완성된다고 예고했다. 암 9:11에서 회복의 주체자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일으켜서 옛적과 세우고” (암 9:11)


바른 예배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갱신하고 기억하였다. 회복의 하나님께서 예배 속에서 죄를 사하심으로 교제를 회복하시며 (사 1:18, 6:7, 고후 5:19, 요일 1:7),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골 1:15)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며(요 3:16),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 (마 5:3-10)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정기적인 예배와 절기를 통해 신앙을 자자손손 대대로  전승할 수 있었다. 가정에서는 쉐마 교육을 전수하였다. (창 18:18-19, 신 6:4-9) 예배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만들고(formed), 유지시키고(maintained), 강화시켰던 것이다.(consolidated)  계약갱신을 통해 상징적 우주(symbolic universe, Peter Berger)이 유지되고, 예배를 통하여 공동체가 강화되어 나가 예배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배가 죽으면 교회가 죽고 가정과 나라가 죽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예배와 삶은 항상 병행되었다.16) 예배와 생활이 따로 떨어진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예배가 곧 생활이요, 생활 그것이 예배였다. 예배의 생활화가 이루어졌다.


이를 정리하면

(1) 땅/기업 회복 - 하나님 나라 유업 - 칠칠절/오순절/율법을 받은 날/성령강림절

(2) 생명 회복 -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 주심 - 유월절 및 초실절/성금요일과 부활절

(3) 교제 회복 - 죄를 용서해 주시고 화목케 하심으로 하나님과 사귐 - 대속죄일/장막절/재림



        3. 구약시대의 예배

        이스라엘은 계약을 정기적으로 기억하는 예배공동체(worshipping community)였다.  구약에 많은 경우 이방종교처럼 예배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의식)에 더 신경을 썼다. 그러나 구약의 가르침에 의하면 예배자는 하나님과 체결한 계약의 약속들을 잘 지키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진정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3-1  아벨의 예배

       구약성서에서 최초의 예배가 소개되어 있는 창세기 4장 3-7절을 살펴보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태생과 그 기름으로 드렸는데 결과는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 하신지라”고 성서는 기록한다(창 4:4-5). 당시에는 특정한 예배법도 없었고 기준도 없는 때였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제사법(출애굽기 25-31장, 레위기1-27장)을 계시받기 전이기 때문에 제물의 종류나 제사의 순서 등이 문제가 되지 아니했다. 가인은 농산물을 드려서 받지 아니했고 아벨은 양을 드려서 피의 제사여서 흠향(歆饗)했다는 해석은 문제가 많다.17) 문제는 제사를 드리는 자의 삶의 태도과 인격의 모습이 하나님께 열납(悅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이다.  가인과 그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은 이유는 창세기 4:6-7에 나온다.  이 구절 속에서 가인은 평소 선을 행하지 아니했고 죄악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18) 예배의 갱신을 이야기할 때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점이다. 예배의 순서와 내용에 앞서 먼저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일이 중요하다.19)  원문에서 죄(תאטח)라는 단어가 구약성서에서 처음 나온다.  이 단어는 구약에 124번 나오는데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는 말의 뜻은 “짐승이 공격하기 위해 웅크리고 있듯이 마음의 문 앞에 도사리는 실체” (at the door of Cain sin is a crouching beast)가 죄라는 뜻이다.20)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관계를 파괴하며 공동체를 해치는 실체이다. 이런 죄성을 가지고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신다.21)  죄의 소원은 있지만 이 죄를 다스려야 할 책임이 예배자에게 있는 것이다.


         3-2  성막전의 예배

        온통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을(貫盈) 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는 경건한 생활을 한다. 노아가 대홍수 후 방주에서 나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흠향(歆饗)하셨다고 했다 (창 9:20-21). 이 짐승과 새를 번제로 드린 예배 후 유명한 무지개의 언약을 체결하시면서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םלוע תירב everlasting covenant)을 기억하리라.” (창 9:16) 노아의 아들 셈의 자손 중 9대 손으로 데라가 태어났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가보니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 ( 창 12:1-5)  세겜은 가나안 땅의 중앙부에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하시니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고, 이어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인 중간지점에서 다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창 12:7-8) 첫 족장(Patriarch)이 된 아브람의 예배생활을 잘 보여준다. 이집트에 가서 바로에게 창피를 당하고 나서 아브람과 그 일행이 가나안에 다시 돌아온 곳이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곳이다 (창 13:3-4).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되며 그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리아 산위의 사건(창 22:1-14)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가 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쳐진 이삭의 모습과 순종하는 아브라함이 열납 되는 예배자의 모습이다.


          3-3.  성막예배

  출애굽의 목적은 광야에 나가 히브리인의 조상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광야에서 율법을 받게 되었고 규정된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이것이 성막예배 였다.  구약의 제사법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계시한 말씀인 율법에서 규정되고 있다.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제와 화목제의 규례라” (레 7:37)고 예배의 종류부터 성막, 제사장옷, 제사의 순서와 질서, 내용을 자세히 가르치고 있다.22)  이스라엘의 제사법이 주변의 다른 셈족의 제의와 구별되는 점은 짐승을 제물로 드릴 때에 그 제물 짐승을 부분적으로나 온전히 제단 위에서 살과 바치는 화제나 완전 번제(올라 Olah)라는 점이다.23) 이런 제도는 메소포타미아나 아라비아나 이집트에는 없는 이스라엘만이 가지는 독특한 제사법이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틴에 정착하면서 제물을 제단에 부분적으로나 온전히 살라 바치는 올라(‘Olah)와 제바흐(제물 Zebach)풍습을 가나안 원주민으로부터 이어받고 이것들을 고대의 피와 관련된 제사의식들과 결합시켜 그 후 독립적으로 계속 제사법이 발전해 갔을 것이라”고 롤랑 드보는 주장한다.24) 구약학의 비평학을 연 벨하우젠(J. Wellhausen)은 이스라엘의 예배의 역사를 세 기간으로 나누었다.25) (1) 1기는 주전 621년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이며, 이 기간에는 제의 행사에 대해 별로 꺼려하거나 관심을 두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번제와 화목제를 주로 바쳤는데 누구에게 제물을 바치느냐가 항상 관심사였다는 것이다  (2) 요시야의 종교개혁이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기까지의 기간이다. 이 기간에 중요한 변화는 제단의 중앙성소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지방의 성소들과 산당의 성소들에 다양한 제의 풍속이 있었으나, 이 시기에는 예배제도가 정착되고 단일화되었다는 것이다. (3) 3기간으로 포로로 잡혀갈 때부터였다. 이 때 새로운 풍조가 나타났는데 오염된 제사법의 난무였다. 이에 에스겔 중심으로 오염된 풍조를 쇄신하고 재건된 성전에서 엄수해야 할 제의 행사를 묘사하고, 속죄의 개념을 절실하게 강조했다는 것이다. 에스겔은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을 강조했다.26)  포로시대 동안에 제사장들이 제사문서(Priestly writings, 혹은 P자료)를 정리하면서 제사제도가 정립이 되었고, 제2성전이 건립되고 80년 후인 450년 무렵에 에스라가 개혁을 완성하여 제사 의식법이 확정되어 신약시대까지 계속된 것이라는 것이다.27) 그의 의견은 후에 다소 수정이 되었지만 예배제도가 발달되어 온 기본이론은 아직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3-4. 성전예배

   이스라엘 왕국이 안정되었을 때 성전이 완성됨으로 성전예배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솔로몬이 즉위하고 4년(출애굽한지 480년 만에, 왕상 6:1)만에 성전건축을 시작하여 7년간(주전 962-955년) 공사하여 (왕상 6:38) 완성하였다. 이를 “솔로몬의 성전” 혹은 “제1성전”이라 부른다.  역대하 7;1-3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봉헌예배를 드릴 때 기도하니 하늘로부터 불이 제단에 있는 모든 번제물을 태운 후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안을 채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성전은 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파괴될 때까지 370년 동안 존속해 왔었다. 사독계 제사장들이 항상 예배를 집전했다.28)  로울리(H. H. Rowley)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중요목적은 왕실의 성소(royal sanctuary)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29) 예언자 가운데도 아예 왕실소속 예언자가 있었으며 (예, 시드기야, 왕상 22:24), 제사장 가운데도 사독계열 제사장은 왕실과 밀접히 관계되어 성전예배를 이끌어 나갔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성전이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처소가 되었다.

    성전예배가 자기를 잡을 때 즈음에 차츰 예배의 형식만 남게 되고 예배의 내용과 본질은 망각되어 갔다. 이 때 예언자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게 되어 예배 갱신운동을 전개한 것이었다. 대체로 예언운동은 반제의적(anti-cultic) 운동으로 이해되어진다. 예언자들은 왕정시대에 타락하고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에 대해 공격을 가했다. 특히 주전 8세기에 활약한 예언자들 중심으로 예배갱신 운동이 강하게 전개되었다. 아모스(주전 750년경)는 날로 심각해져 가는 이스라엘의 그릇된 예배의식을 역설적으로 꾸짖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인간 중심의 예배를 드리면서도 가장 경건한 척하며 잘 믿는 척하는 무리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암 4:4-5).  호세야(주전745년경)도 타락한 이스라엘의 영적 생활을 지적하면서 ‘너희들의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보다는 각종 포도주와 음행 등 인간의 정욕을 충족시키는 것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호 14:1-2) 이사야(주전 약 742-689년)도 거짓예배를 고발하고 있다. (사 1:10-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사 1:17)는 것이다.  이사야에 의하면 잘못된 삶을 회개하지 않은 채 드려지는 기도, 찬양, 헌금을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입술로만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예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는 공의, 인자(Chesed, 한결같은 사랑), 겸손임을 천명한다.(미가 6:6-8)  예레미야도 예배의 생활화를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진실된 회개가 있는 예배이다. (시 51:16-19).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쉐마, 신 6:5-7)으로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제3이사야 (520년경)는 진실된 예배 회복을 예고하고 있다. (사 66:22-23).30)


       3-5.  회당예배

    기도, 성경낭독과 해설(exposition), 찬미, 교제 등으로 구성된 회당예배는 흩어진 유대인들에 의해 발전된 것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주전 587/6)후 대제사장, 부제사장, 세 명의 수문장들을 비롯하여 성전의 고위관리들이 모두 포로로 붙잡혀 립나에서 느부갓네살에 의해 처형당했다 (왕하 25:18-21 = 렘 52:24-27, 39:6).23) 다행히도 에스겔은 1차 포로시(597년)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는 중 소명을 받아(592년, 겔 1:1-3) 20여 년 동안 제사장 출신의 예언자 역할을 감당하였고, 그의 집안인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과 보조인원들은 포로생활을 하였다. 솔로몬 등극시 축출되었던 아비아달 제사장의 지도층들도 다수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것이다.31) 포로생활 중 제사장과 일반 레위인들의 차별이 굳어졌다. 남은 제사장들도 성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이 주로 율법, 역사서, 예언서등 문헌들을 정리 보관하는데 집중하거나 농사했을 것이다 (참고, 왕하 24:14, 25:12).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할 때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모여서 찬양, 기도, 말씀묵상을 한 것이 회당(Synagogue)예배의 시초가 된다.32) 시편 137:1-6에서 바벨론 포로생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국을 위한 기도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생활을 힘쓴 것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의 예배는 희생의 번제단을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회당은 희생의 제단이 없는 예배의 형태가 발전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경건한 삶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낭독하고 묵상하며 강론을 하기 시작했고, 조국을 위해 애국적인 기도를 하며, 시온의 찬미를 수시로 드렸다. 회당에서 찬양을 위해서는 옛 시편들이 사용되어졌으며, 또 새로운 시편들이 많이 만들어 진 것 같다. 기도는 주로 암송(recitation)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주후 4, 5세기경에 문서로 남긴 기도문이 많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기도문이 바로 18기도문 (Shemoneh ‘Esreh)이다. 이 기도문에서는 영적인 각성을 위한 기도, 빵을 주신 감사기도, 창조에 관한 기도, 중보기도, 고백기도, 병자를 위한 기도, 송영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외 쉐마암송(신6:4-9, Keriat Shema')을 꼭 하였고33), 매일 기도문을 개발하여 낭송했고, 매일, 매주, 매년 읽어야 하는 성경을 봉독했다. 저들은 세계 어디에 흩어지더라도 매일 성서의 세 구절(신 6:4-9, 11:13-21, 민 15:37-41)을 두 번씩 낭송할 의무가 있다. 십계명도 자주 암송해야 하고 축복기도(Benediction)34)도 발전되었다.


       3-6  제 2 성전시대 예배

시편은 포로기 후의 이스라엘 공동체(the post-exilic community of Israel)의 산물이다. 제2성전의 찬송가(Hymnbook)이라고 불릴 수 있는 시편은 이스라엘 예배공동체의 진수를 잘 보여주고 있다.35) 시편 안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내용이 수록된 예배 특히 역대기서(the Chronicler)에서 예배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법궤를 성전으로 옮길 때,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나팔 부는 제사장 120명과 함께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며 감사하였다. 관현악의 반주로 합창이 장엄하게 울러 퍼지는데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였다.(대하 5:11-13). 이처럼 패트릭 (Millar Patrick)이 지적한대로 “예배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the offering of praise to God)이며 그 외의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고36) 한 대로 성전예배는 음악이 강조되었다. 마지막으로 주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한 후 80년 후 느헤미야가 유대총독으로 부임하여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했다 (6월 25일, 느 6:15). 여호와께 헌신하기 위하여 수문 앞 광장에 모여(로쉬 하사나, 7월 1일) 율법책을 낭독하며 해석하고, 율법이 정한 초막절을 크게 지켰다.(느 12:36-39, 12:43)고 전해준다. 예배의 축제 모습을 잘 보여 주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