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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세속화(世俗化)

2008.10.24 19:54

김성찬 조회 수:1179 추천:120

영혼일기 105: 세속화(世俗化)

2008.10.24(금)



지난 볼리비아의 밤에 특별연사로 나오신 PCUSA(미연합장로교회)에서 목회적, 행정적 지도력을 구사하고 있다는 모 목사님께서(그분의 성함을 아직 모른다. 차후에 알아 볼 수 있다.) 탄식하며 우리 앞에서 이런 말을 쏟아 내셨다.


“우리 PCUSA(미연합장로교회) 교리장전(? ; 이런 류(類)의 교리 문서)에서 남녀 간의 순결이라는 조항을 빼버렸습니다. 이 말은 동성애자들을 목회자로도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입니다. 정말 큰일 났습니다.”


그분은 그 외에도 여러 염려되는 부분에 대해 말씀했지만,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미국 교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오늘은 특별한 분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통합 측 최삼경 목사님과 그의 친구 되시는 재미목회자 김 삼(Sam Kim ; 김성훈) 목사님을 만났다. 최삼경 목사님은 처남 윤사무엘 목사와 교제를 나누는 분이라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김 삼 목사님과의 만남은 우연치고는 필연적 우연한 만남이었다.


김 삼 목사님은 우연히 사이버 상에서 그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내 홈피에서도 이슈모음 ‘관상기도에 대하여’라는 토론 마당에 그분의 글을 올려놓고 읽은 적이 있다. 그 땐 건성으로 봤는데, 엊그제 우연히 그분이 한국에 들어 와 계신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오늘 빛과 소금교회에서 그분을 만날 수가 있었다. 최삼경 목사님의 환대로 오찬을 함께 나누고, 차도 마시면서 한 식경(食頃)을 함께 보냈다.


총신대학 동기 분들이라는 두 분은 각기, 한국과 미국에서 온전한 복음을 사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계셨다. 물론 두 분의 입장이 동일한 것은 아니었고, 나 또한 내 나름대로 일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들의 대화는 모처럼 이 같은 말씀에 관심이 모아진 영적 대화였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고후 6:14,15).    


결국 우리의 대화의 주제는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우려’였다. 소위 신신학에서 말하는 ‘세속화’란 말이 과연 우리 정통기독교에서 말하는 세속화의 개념과 동일한 것이냐는 말이었다. 우리 정통 기독교회에서는 ‘세속화’를 빛과 어둠이 사귀는 세상 되어 가는 것, 즉 타락과 동일시한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세속적 관용이란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렇다면 신앙교육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와 권능이 있는 것인가?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이 지닌 포월주의라는 것이 과연 유일신 신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이런 논의였다. 그러나 우리의 답은 하나였다.


그러나 소위 자유주의 신학은 그 ‘세속화’를 반긴다. 그 신신학에서 말하는 ‘세속화’란 성육신 사건을 정점으로 한, 신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의 합일이라는 말이다. 하비 콕스는 그의 저서 ‘세속도시’에서 “세속화는 또한 역사의 비운명화이기도 하다. 역사의 비운명화란 인간이 온 세상은 그의 양손에 맡겨졌다는 것과 인간 행위의 결과인 행운이나 진노에 대하여서는 핑계할 수 없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함이다.” 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역사는 인간의 손에’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들은 인간은 역사를 재창조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정통 기독교적 인간론을 역사의 운명화라고 명명한다. 그 촌스런 역사의 운명화를 비운명화 시키는 것이 ‘세속화’라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모든 자율과 선택권이 있다고 신신학자들은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인간이란, 폐차장으로 핸들이 꺾인 폐차처럼, 내버려두면 저절로 폐차장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1, 2차 세계대전은 바로 그런 성선설적인 자유주의 신학에 철퇴를 가했다. 그래서 인간은 철저한 죄인이며, 교육에 의한 이 땅의 파라다이스는 헛된 꿈이며,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영적 선회가 자연스럽게 인 것이다.


그런데, 절대가 상대화되고, 중심이 해체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의 영향으로, 20세기 후반 들어 세상은 종교다원주의가 우아한 대안으로 자리했다. 물론 그 포스트모던한 시대도 저물어가고 있지만. 그런데 한국교회가 부흥운동의 역기능을 보완한다면서, 통성기도를 대신할 명상과 관상기도를 거론하고 있다. 이것은 종파를 뛰어 넘는 융합이다. 그래 이런 현상은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적 현상을 드러내 보이는 징표다. 적그리스도가 종파를, 종교를 통합할 날이 다가오는 징조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들의 눈길을 이 세상으로 돌리려는 ‘세속화’의 한 흐름이다.


우린 지금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오늘 만난 김 삼 목사님도 ‘진리와 사랑’에 대해 여러 말씀했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분이 그렇게 홀로 깊어진 것은, 멀리 미국 종교백화점에서 느낀 영적 충격 때문이었음에 틀림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저명한 이들 헨리 나우웬. C. S. 루이스, 리차드 포스터 등등의 인물들에 대한 그의 지근거리에서의 영적 검증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면서 그분은 한국교회의 영적 무지에 대해 통탄해 했다. 그 경계를 너무도 쉽게 넘나드는 영적 현실과 그는 당당히 대결하겠노라고 힘주어 말했다.


난 오래 전 어느 일면식도 없었던, 학문적 책임 있는 이와 한 방에서 유숙한 적이 있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피한다. 그러나 그는 종교다원주의적 해석을 은근히 나에게 내뱉었다. 지금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아마도 고린도전서 15장 28절을 근거로 든 것 같았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이 말씀은 종교다원주의자들이 구원의 유일한 길인 그리스도와 성육신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보편적 존재로서의 예수를 주장하는데 있어 인용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스도의 복종을 그들은 그들의 취향에 맞춰 해석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에게 편리한 부분만 따다 붙이면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우리는 추출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시 14편 1절 말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라는 말씀을 거두절미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말씀이 추출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상을 위해 성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한, 두 구절이나 장이나 권으로 되어 있지 않다. 무려 성경은 총 66권, 1,189장, 31,103절(번호 안 매긴 137절 별도)이나 된다. 제 취향에 맞는 특정한 말씀 한, 두 구절이 아니라, 성경이 통째로 말씀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난, 갓 귀국한 그 낯선 학자에게 대답해 줬다.

‘모든 길이 길 된 절망’의 시대가 이 시대라고.


오늘 우린 한국교회의 영적 세속화에 대한 염려를 나눴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세찬 세속주의적인 조류를 막아낼 길이 없을 거라는데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관상기도처럼, 우린 혼미한 영성적 흐름에 떠 밀려가고 있다며 자조(自嘲)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한일서 4장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