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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만 땅(滿-tank)

2009.06.30 22:57

김성찬 조회 수:3344 추천:68

영혼일기 330: 만 땅(滿-tank)
2009.06.30(화)


먼데 후배한테서 아침나절 문자가 날아들었다. 점심 가능하냐고? 그렇잖아도 오늘부터 1박2일로 있을 예정이었던 순교지 순례 일정이 장맛비 예고에 돌연 전복되는 바람에 속이 뒤집어져있던 난 그 후배의 탐문에 응했다. 사실 난 이미 마음만은 먼데로 홀로 떠나있었다. 오늘 꼭두새벽부터 나는 오늘부터 며칠간 먼데 기도원엘 다녀올까 궁리 중이었다. 어디가 좋을까 궁리궁리 끝에 나는 사람들 득실거리는 기도원보다는 오롯이 내안에서 빛나던 홍천 사랑이네 별장엘 며칠 다녀와야겠다고 맘을 먹고 있었다. 하여 친구 황 장로에게 방이 비어 있느냐 전활 넣으려던 참에 그 후배한테 문자가 날아든 것이다.

그동안 나는 공사(公私) 간에 너무 분주했다. 하여 허허로운 영적 심사를 달래기 위한 영적 충전이 이 시점에서 나에게 꼭 필요하다 느껴왔다. 그래서 나는 그 한 대안으로 고 문준경 전도사님 순교 유적지를 다녀오는 한 주간으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기상이변(?)에 대한 그 누군가의 심상이변으로 인해 그 공동의 결의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우리는 일시적인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래선지 이 아침이 결코 상쾌하지 않았다. 뭔가 충족되지 않고는 해소될 수 없는 허전함이 내 심령에 밀려왔다. 그러던 차에 그 후배의 은밀한 유혹이 있었다. 하여 나는 나처럼 그 전복된 스케줄로 적잖이 허전할 또 다른 후배에게 사랑이네 별장 행을 권유했다. 그래서 우리는 셋이서 홍천으로 향했다.

그 사랑채 형편을 알아보려고 황 장로에게 전활 넣었더니, 자기도 지금 홍천으로 가는 중이라는 반가운 응답을 난 접수했다. 어서 오라며, 뭘 먹고 싶냐 묻고 또 물었다. 시장에 들려 갈 텐데 김 목사 좋아하는 음식 사가지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 후배네 동네를 휘돌아 홍천으로 향했다. 

다소 먼 길이었지만, 그 누군가의 말대로 극점(極點) 양구엘 가는 셈치고 내달린 홍천은 오늘따라 지척(咫尺)이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라는 말이 틀림없는 진리였다. 매끄러운 유영이 감미로운 경춘가도 양수리 구역 드라이브는 늘 내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살가운 친구들과 함께 애틋한 우정이 반겨주는 마음의 고향 길을 거침없이 질주해가는 쾌속 드라이브는 그동안 풍진에 물든 명리를 한 바람에 날려버리는 듯 했다.   

한 농사를 짓는 농군(?) 된 황 장로네 경지(耕地)는 갖은 경작물로 만발했다. 그 3천 평 정도 되는 경지엔 상추, 아욱, 씀바귀, 호박, 수박, 참외, 토마토, 감자, 고구마, 고추, 팥, 녹두, 땅콩, 머루, 포도, 배 등등. 이름도 모를 농산물들로 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선 말 그대로 한 농사를 그네들은 짓고 있었다.

우린 그 밭의 상큼한 채소를 밥상에 올렸다. 황 장로가 장봐 온 삼겹살 구이를 곁들여 맛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 사방이 확 트인, 들꽃 만발한 너른 대청마루에 앉아 가슴 따뜻한 이들과 나누는 식탁정담은 대낮 만찬의 맛을 더했다. 그 식객이 생각났다. 그를 보쌈 해 오지 않은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 얼마나 좋아 할 텐데. 스트레스도 팍팍 저 대지에 날려 버리고, 그랬을 텐데. 그랬다. 

우린 적절한 땀을 그분들과 함께 흘렸다. 음식물 찌꺼기를 버릴 구덕을 파느라 두 후배들이 그 돌짝 밭에서 땀깨나 흘렸다. 한식경 후, 한여름 손님맞이 구덕이 완성되었다. 황 장로는 그 자진 울력에 감읍해 하는 듯 했다. 단순 노동의 희열은 정신노동의 희열에 못지않은 것 같다. 우린 일순 상쾌해졌다. 몸말은 혼의 말 이상의 힘이 있다. 그 단순한 노동이라는 의사소통 방식은 천 마디 교언영색(巧言令色)보다 더 진솔하고, 산뜻하다. 그 담백한 힘은 담백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 그 노동으로 흘리는 사실적 진정성은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 무언의 노동은 우리를 한결 친근케 했다.

견공 ‘사랑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사랑채의 재롱둥이 ‘사랑이’가 **를 얼마 전 열 마리나 낳았단다. 그 넓은 마당이 그 견공 일가로 꽉 찬 느낌이었다. 오늘은 그 **들을 동네방네 분양하는 날이란다. 그런데 황 장로는 그 견공의 종족 보호 본능에 대한 놀라운 일화를 우리에게 들려줬다. 사랑이가 무려 열 마리나 되는 **를 낳은 이틀 후, 그 보금자리를 자진해서 옮기더란다. 넓고, 편한 제 집을 놔두고 좁고, 불편한 컨테이너 박스 옆구리에 둥지를 틀었단다. 그곳이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그리곤 핏덩이 같은 제 **들을 한 마리씩 물어 새 보금자리로 옮기더란다. 그렇게 열 마리를 다 물어다 놓고 난 후, 다시 세 마리만 원래 제 집에 물어다 놓고는 그 세 마리 **는 완전히 외면해 버리더란다. 옛적에 우리 부모들이 아들만 공부를 시킨 것처럼, 사랑이는 자신이 감당할 만한 일곱 **들만 챙긴 후, 나머지 **들은 종족 보호 본능으로 내다 버려 버린 것이다. 그런 경험이 전무한 황 장로 부부는 어미에게 버림받는 **들에게 우유를 사다먹였단다. 그런데 그 광경을 멀찍이서 바라다보고 있던 어미 사랑이가 살그머니 다가와 제 **들을 돌려 달라고 사정하는 바람에 행여 물어 죽여 버릴 지도 모르지만, 제 ** 제 어미에게 맡기자는 생각에 그 **들은 넘겨주었는데, 다행이 그 세 마리까지 그 어미 사랑이가 보살핀 결과 오늘 건강한 10마리의 **를 얻게 되었노라 황 장로는 득의만면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 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황 장로네 고구마 밭에 들렸다. 1천 2백여 평이나 된단다. 수박과 참외와 땅콩도 한 켠에 적잖이 심어 놨다. 황 장로는 작년에는 2천여 평의 밭에 고구마를 심었단다. 그 밭에서 생산한 고구마를 친지와 이웃에게 선사하느라 택배비만 5백 만 원 이상이 들었단다. 우리 집에도 그 땅에서 수확한 고구마를 두 박스나 택배로 보내줬다. 황 장로는 수확 철이 되면 그 언제라도 이곳에 들려 맘껏 고구마를 캐가라고 말했다. 우린 이 가을, 가실하러 우린 그 밭에 들릴 것이다. 수박과 참외도 서리하러 급 발진할 것이다. 우린 광의의 목회적 위안을 이 골짜기에서 누리게 될 것이다. 마른번개가 치겠지. 준비된 자의 몫이겠지.

성공한 사람이란 여행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사람이란다. 그런데 여행에는 세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돈과 시간과 건강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충족되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스님들은 뭐하고 살까? 남들 분주하게 일하는 시기에 한가로운 고속 질주를 만끽하는 우리네 형편이 송구스러워 괜스레 스님들을 들먹이며 우리는 자위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린 시간이 넉넉한 행운아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그런데 오늘 황 장로는 내 차에 오일을
만땅(滿←일본어 tan<tank) 으로 채워줬다. 돈도 되는 하루였다. 그리고 적어도 운전할 만한 힘과 건강도 있으니, 그 성공한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여행’을 위한 삼대요소가 충족된 하루다.  

노동의 땀을 흘렸다고 우린 홍천온천으로 향했다. 시설은 열악했으나 온천수는 그 물감(感)이 아주 매끄러웠다. 

그러나 저녁을 함께 먹을 시간이 우리에게 없었다. 우리는 이 밤 우울증에 시달리며, 부부간의 갈등 속에 신음하는 그 어떤 이를 위해 시간을 내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여 우린 그 별미 홍천 화로구이를 정중히 사양하고 되돌아섰다. 그래 우린 한량이 아니었다. 우린 밤낮 없는 영적 불침번임에 틀림없다.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우리에게는 시간이란 없다. 우린 여행할 수 없는 숙명을 타고 난 자들이다. 하룻밤만 자고 가라는 친구의 당부를 뒤로하고 돌아서며 한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장로들은 좋겠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니까. 그 하룻밤에 새벽이 없으니. 이 저녁 시간에 예고 없는 심방도 없으니.” 이래저래 황 장로는 우리의 부러움과 자랑의 대상이었다. 전혀 우리의 시기심을 유발시키지 않는, 그의 여유가 우리에게 힘이 되는, 정말 오래된 친구였다.

참 몸이 개운했다.
푸성귀며, 통나무만한 호박이며 한 가득 안고,
우리는 그 수확의 계절의 신속한 도래를 학수고대하며,
다시 목회 현장으로 롤백했다.

엥꼬
(엔코: 떨어짐, 바닥(남))
날 뻔 했던 심신에,
그 온정으로 참된 안식을,
만땅(
滿←일본어tan<tank : '가득', '가득 채움', '가득 참') 채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