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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 힘써 목회해서

2009.09.01 21:10

김성찬 조회 수:3293 추천:62

영혼일기 373: 힘써 목회해서
2009.09.019(화)


10년 전 옛 파일을 뒤적여 본다.
불효자가 운 간병일기, 『어머니 나의 어머니』다.


2000년 5월 25일 목요일


벌써 이틀 째, 어머니는 밤을 꼬빡 새셨단다. 어머니의 형편보다 내 입장을 고려해서 어머니를 서둘러 집으로 모신 나의 우둔한 행위에 대한 징벌인가 보다. 아니면 오매불망 그리던 이모님들이 오신다니까, 설레어 잠을 못 이루신 걸까?



2000년 5월 26일 금요일


압해도 이모님이 올라 오셨다. 이모님의 자부인 큰 형수, 아들 신환이 형, 딸 신숙이 까지. 둘째 아들 신형이 형이 압해도 이모님을 모시고 저 멀리 남쪽 섬 압해도에서 불원천리하고 올라 오셨다. 그리고 경인 지역에 사는 이모님의 딸, 신자 누나와 동생 신화도 병문안을 왔다. 그리고 암태도 송곡리 이모님과 이모부님도 오셨다. 이모님들은 어머니와 사촌들인데 연배가 거의 비슷하시다. 두 분 다, 사력을 다해 올라오신 것이다. 압해도 이모님은 심장이 심히 안 좋으셔서 거의 거동을 못하시는 분이시고, 송곡 이모님은 한마디로 종합병동이시다. 젊어서부터 워낙 병치레를 심하게 하신 분이신데, 대 수술을 무려 세 차례나 젊은 시절에 받으셔서 항상 오늘, 내일 하시던 분이다.

그런데 뜻밖에 어머님이 시한부 인생임을 선고 받았다는 통보를 받으시고는, 죽기 전에 얼굴 한번 보시겠다고 이렇게 힘든 모험을 감행하신 것이다. 한평생 믿음 안에서 애환을 서로 나눈 자매들의 사랑과 우정이 아니고는 상상키 힘든 먼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어머님이 제일로 건강하셨고, 좀 자유스러워지면 속히 내려가시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셨던 어머니는, 겨우 이렇게 자신의 병상에서, 그리던 자매 분들과 눈물의 해후를 하시게 된 것이다. 그 병약하시다는 이모님들의 얼굴은 오히려 건강해 뵈는 구릿빛인데 우리 어머니의 얼굴은 심히도 창백하다. 병색이 완연하다. 몹쓸 병. 심히 안타깝고,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10년은 충분히 더 사실 수 있으셨을 텐데. 부디 이 하루가 당신들에게는 천년이 되길 빈다.



2000년 5월 27일 토요일


신자 누나 자형과 신봉이가 왔다. 해서, 압해도 이모님 자녀들이 우리 집에 다 모였다. 신안군 압해면에서, 광주에서, 대전에서, 부천에서, 인천에서. 외가로 육촌인데도 우리 집과 압해도 이모님 네 하고는 한 형제나 다름없다. 어머니와 이모님이 각별하시니까, 자연히 우리도 그렇게 된 것이지만, 이모님 뿐 만 아니라 작고하신 이모부님 또한 우리를 자신의 자식들인 양 대하셨다. 우리는 가을철만 되면 이모부님께서 산 넘고 물 건너 한 짐 등 짐 져 날라 주시던 그 각별한 고구마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번 어머님의 병환 중에도 신자 누나를 비롯한 형제들이 몇 차례나 교대로 찾아 왔었다.

한번은 누구나 온다. 그러나 이 바쁜 세상에 한 번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몇 차례나 찾아 와, 시간 계산도 하지 않고 서둘러 가라고 해도,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가만히 한나절이나 어머니 곁을 지키고 앉아 있는 모습 속에, 나는 그들이 두 어르신을 한 어머니로 여기고 있음을 감지하곤 혼자 감격해 마지않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받은 숱한 병문안 중, 아무 예고도 없이 조용히 찾아 와, 한 나절 이상 아무 말도 없이 어머님 곁을 지키다 말없이 떠나곤 하던 신자 누나의 문안이 젤로 인상적이었다. 우린 이런 형제자매사이다. 예수가 맺어 준 이 피보다 진한 형제애. 그렇다 우리 두 가정은 적어도 그런 사이다. 이 매정한 세상에 얼마나 복된 일인지.

  

“납실아, 구월아, 니들 예수님 봤냐?”


마음이 한 바다처럼 넓고, 재담에 능하신 우리 압해도 이모님께서 이런 옛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 어린 시절.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도창리에서 세분이 함께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세 분은 서로서로 사촌지간이었으나 제일 맏언니이신 압해도 이모님이, 둘째 우리 어머님과 막내 송곡 이모님을 골탕 먹였다는 재미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다.

“납실아, 구월아, 니들 예수님 봤냐?”

“아니, 못 봤어.”

“나는 봤는디. 보여 주까?”
"아니 예수님을 봤다고?“

”그래 봤다니까. 몇 번이나 봤다고.“
”그럼 우리도 볼 수 있어?“

“그럼, 그럼 볼 수 있지.”
“어떻게?”


“예수님 보여 줄 테니까 얼른 누워 봐.”


그렇게 뒷동산 잔디밭에 천진난만한 두 동생들을 눕혀 놓고는,


“이것 꼭 물고 눈 감고 있어 봐. 그러면 예수님이 보일 꺼야.”


영근 잔디 씨알이 촘촘히 까맣게 들어박힌 풀잎 줄기를 한 입 가득 거꾸로, 씨알이 박힌 쪽을 입안으로 넣어, 그 줄기를 이빨로 질근 물게 한 다음,   


“예수님 보이지?”

“------.”

“보일 텐디, 안 보여?”

“------.”

“더 꽉 물어 봐, 이젠 보이지?”
“------.”
“더, 더 꽉꽉 물어야 돼, 보이지 이제?”
“------.”


눈을 찔끔 감은 채로 한 입 풀잎 씨알머리 부분을 꽉 문 채, 고개 짓만으로 예수님이 안 보인다고 도리질치는 동생들. 까만 잔디 씨알머리 부분을 위 아랫니로 그 줄기가 끊어질 만큼 꽈-악 깨물며, 예수님 보기를 간절히 바라던 동생들의 순진무구한 예수 소망을 부추기던 맏언니 압해도 이모님이, 한참 동안을 그렇게 동생들 감질나게 놀려 대다가, 느닷없이 동생들이 예수대망으로 꽉 물고 있던 그 풀줄기 밑 둥을 확 잡아 채버리자, 일순 동생들 입안에 한 입 가득 차던 까만 잔디 씨알들.


퉤, 퉤, 퉤, 퉤.

까르르, 까르르.

여덟 살 햇병아리 시절, 복음의 씨암탉 순교자 고 문준경 전도사님이 세운 신안군 암태면 도창리 도창리 성결교회 주일학교에서, ♫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 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 날~ 사랑하신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 목청 높여 불러댔던 예수 사랑하심. 그 충만했던 예수 사랑을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신, 백발 노인네 분들이 잠시, 예수 사랑 가득했던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애틋한 신심을 다시 나누고 계신다.

예수님 보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었던 그 섬마을 어린 소녀들은, 그 순수한 신앙고백을  끝까지 고이 간직하여 한 분은 전도사로 두 분은 권사로, 평생을 그 섬마을 뒷동산에서 한 입 가득 채웠던 씨알 예수를 가는 곳마다 합심하여 뿌려 오셨다. 자매요, 신앙의 동지로 살아오신 영적 삼총사 분들. 그 믿음의 용사들이 이 밤, 예고된 슬픈 별리 앞에 다시 찬송으로 함께 위로를 삼고 있다.


♫ 내 주는 자비 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


2000년 5월 23일 주일


늘 예배는 어머니의 애절한 찬송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


우리는 다 같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나는 병상의 어머님께 행여 있을지 모를 죄의식에서 벗어나시라고, 이제 하늘 상 받을 일 밖에 남지 않으셨다고, 아름다운 일만 기억하시라고, 이모님들은 오늘 내려가시지만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으시라고, 사랑하는 이들의 전송을 받으며 먼저 가는 것도 축복일 수도 있다고, 모두들 어머니의 마지막 길이 평안한 길이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감히 나는 당부했다.


여든 여섯 되신 큰 이모님께서도 오셨다. 예삿일이 아니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면서,


“우리 납실이가 나 데리고 암태 간다고 했는디, 이젠 다 틀려 부렀는가 비다. 틀려 부렀는가 비어.” 탄식하시며 통곡 하신다.

“살아라, 살아. 니 엄마 살려라이, 살려.”

눈물이 바다를 이룬다.


“양자 넘아, 양자 넘아. 너 사정 내가 알고, 내 사정 니가 아는디---,” 

니가 먼저 가버리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 압해도 이모님의 탄식이다. 독일 누나의 아명이, 일본식 이름 요꼬, 양자다. 사내였으면 한 인물 하셨을 압해도 이모님의 한(恨) 또한 남 못지않다. 그저 양반 집안이라고 신랑은 보지도 않고 딸을 줬던 시절. 양에 차지 않는 신랑을 만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이 살아 왔던 억울한 한 생. 그 깊은 서로의 한을 토해 내며 살았을 두 여인의 슬픈 별리. 그렇게 당신들은 내려 가셨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도, 함께 해 줄 수도 없는 죽음. 이젠 어머니 당신은 정말 혼자 가셔야만 하는가 보다.




오늘, 2009년 09년 01일 화요일.


그 압해도 이모님께서 이제 우리와 슬픈 별리를 앞두고 계신다. 부평 딸 신화네 집에 계신다. 오늘 이모님을 뵙고 왔다. 이제 여든여덟이시다. 깊은 잠이 잦아지고, 의식이 가물가물해 지신다며 아들 같은 김 목사를 보고 싶다하셔서 오늘 이모님께 다녀왔다.

헤어져 돌아서려는 나에게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유언인 양 이렇게 당부하셨다.

“힘써 목회해서 …….”
한 구절 이상을 이어가셨는데 뒷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 첫 마디,
“힘써 목회해서 …….”

“힘써.”
“힘써”라는 말만 가슴에 와 박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린 환청을 들었다. 그 환청은 책망하시는 성령의 은총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그 환청의 발화자가 누구냐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신경이 극도로 한 때 예민해졌었다. 그런데 그 환청의 발화자가 ‘힘써’ 살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발하신 성령의 책망하시는 은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여 우린 그 차 안에서 함께 기도했다.
“힘써 성령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을 지켜 행하겠다, 아니 행할 힘을 주시라”고 나직이 고백했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왕상 2:2).” 2007년 7월 25일(화) 어머님 하관 예배 시에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에게 준 유언이 선포되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대장부가 아니다. 

내 불통은 여전히 거기에서 연유한다.
두 분 어머님은 나에게 여전히 눈물로 아니 죽음으로 간구하고 계신다.

"성찬아, 잘 가라 이~."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 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열왕기상서 2장 1-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