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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9: 정선(旌善)에서

2013.08.05 01:51

김성찬 조회 수:833 추천:55





영혼일기 1379: 정선(旌善)에서

2013.08.05(월)

 

여긴,

정선

 

그 얼마나 내 가슴을 저미게 한 지명(地名)이었던가?

 

그 누가 그랬다.

광주?,! 그 지명이 호명되면 자기도 모르게 그 소리를 좇아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고. 80년대 이야기다.

정선?,!

내가 그랬다. 누군가에 의해 호명되던 ‘정선.’ 난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으나 그 호명에 내 몸은 미열을 앓았다. 

 

그랬다. 나는 정선을 곯고 있었고, 정선의 고립을 나는 앓고 있었다. 정선은 내 배였고, 내 몸이었다. 그랬음에 틀림없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정선 행(行)을 제의 받았을 때,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먼저 달아오르는 이변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주가 멀다하고 거듭 된 정선 행(行)도 불가능했을 거다. 안달 난 몸이 말하는 바, 나는 톡톡히 정선의 애처로움을 몸으로 앓아 왔음에 틀림없다.

 

예수께서도 빈 들 벳새다 광야에서 날이 저물도록 자신을 따르던 큰 무리를 민망히 여기셨다. 민망하다는 말은 성서 언어의 원의가 창자로 느낀다는 말이란다. 쉽게 말해 안쓰럽다는 말이다. 안이, 속이 쓰리다는 말이다. 가슴이 시리다는 말이다. 맘 서럽다는 말이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은 내게 민망하다.

아리랑은 허기진 민중의 배가 곯던 소리다. 곡소리다.

아리랑은 죽은 외아들의 시체를 성 밖에 내쳐야 하는 나인성 과부의 처량한 호곡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그 뜻도 의미도 없이 그저 흐느끼는 가락만으로도, 우리는 그 어떤 서사보다 더 깊고 진한 그 애환에 공명한다. 정선 아라리는 속이 쓰리고, 가슴 시리고, 맘 서러운 민중이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던 끈적끈적한 정한이 창조적으로 승화 된 가락이다. 삶의 응어리가 풀려나는 소리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에 왔다. 힘겨운 생의 수레를 가까스로 한 바퀴 돌리고 난, 해질녘

정선은 해질녘이다.

 

해질녘 사람들인 막장 인생들이 폐광으로 인해 외려 회색 도회지로 유배 되어버려 황무지가 된 이 땅에, 이젠 한탕을 노리는 눈이 퀭한 승냥이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며 들어 선 국책사업장 국격 카지노는 이 땅에 신(新) 아리랑을 선사했다. 술국에 밥 한 덩어리씩 야참으로 떠먹고 다시 막장으로 향하던 백야(白夜)의  탄부들의 사랑채, 그 목로주점이 사라진 자리에 도회지 막장 골목길에 도사렸던 전당포가 작금 국립 투기 막장 정선 땅에서 철자 하나 바꾼 전당사 집단을 이루고 있다. 차고 온 시계, 타고 온 차, 한탕에 먼 눈깔까지 저당 잡아 준다는 전당사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정선은 저당 잡힌 민중의 양지다. 고려 왕조 패망이 험산 준령보다 더 높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벽이었던 고려의 유신(儒臣) 일곱 분(七賢)의 망조(亡朝)의 한이 서려 아라리의 고향이 되었던 정선이, 이제는 국가가 양산한 이판사판 노름판 막장 인생들의 장탄식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난 금년 여름에 우연찮게 두 번이나 정선 땅을 밟았다. 

 

한번은 사북읍 사북리, High 1 리조트에,

오늘은 신동면 조동리, 속 꽉 찬 별장을 통째로 얻어서.

 

연거푸 나를 거저 부른 정선은, 나처럼 정선도 나를 앓아왔나 보다.

동병상련.

끌린다는 말은 동질이라는 말이다.

 

한 여름인데도 선선하다.

해발 1천 미터를 넘나드는 고원에 세워진 까닭에 하이원 리조트는, 한 더위 속에서도 평균 기온이 25도를 넘지 않는단다. 하여 쾌적하고, 공기는 티 없이 맑다. 눈 아래 굽이친 산하가 꿈틀댄다.

 

한 여름 밤

High1 호수광장에서 리조트 고객들을 위해 펼치는 음악 분수와 불꽃 페스티벌이 워터스크린에 화사하게 펼쳐졌다. 루머너스( luminous ), 즉 1) 야광의 2) 어둠에서 빛나는 3) 화려한 색의 뜻을 지닌 아라비안나이트 풍광을 자랑하는 빛의 궁전을 배경으로 보기 드문 현란한 인공 기예가 여름밤을 환히 밝힌다. 애수에 찬 대부The Godfather의 주제가로 시작되는 멀티미디어 쇼가 펼쳐졌다. 그래 여긴 밤의 황제가 지배하는 땅이다. 무자비한 살육과 기만의 땅이다. 사북이 아닌가? 정선은 무자비한 땅이었다. 지금도 무자비한 땅이다. 무자비한 착취, 살육, 강탈의 땅이다.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 낸 저 불꽃.

그러나 그 유혹은 기만이다. 빈 몸으로 돌려보낼 고객을 미혹하는 호객행위다.

 

저건,

해묵은 정선의 한(恨)이 폭발하는 가슴의 천불이다.

가슴의 천불에 더한 불을 지르며 환호작약하는 철부지 군중들은 정선을 모른다.

알 수가 없다. 성전 뜰만 밟고 지나간 순례자처럼.

 

밝아 온 아침,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저 고랭지 채소 밭은 땅에서는 발을 붙이고 살 길이 없는 농투성이들이, 위의 위로, 하늘의 하늘로 치고 올라가 생존의 터전을 마련한 게토(ghetto)의 마천루다. 하늘은 자비하셔서 하늘의 땅에서도 무와 배추가 무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그 품을 내어주셨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정선은 피할 길이 있는 형벌의 땅이다.

전후좌우 산산산산이다. 

그 누구는 소싯적 동서남북 맨 산이 싫어 기차를 밀고 이 땅을 탈출했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레 늘어 놓고 있지만, 그 영민함을 뽐내고 있지만, ㅋ 

 

도움의 산.

거기 산(山)이 있기에,

정선은 어제처럼 오늘도 살아 있다.

 

강원 랜드 그 카지노에서 다 털리고, 폭포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멜로디 도로가 있다. 시속 60~80 km 정도를 유지하면, 그 와중에도 일상의 속도를 유지하려 애를 쓰면,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 그~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 대요 ♫

라는 멜로디가 차륜(車輪)에 밟힌다.

 

절묘한 계략이다. 사탄도 안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이 다 죽어가는 인생도 구원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거기 산(山)이 있기에,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이 있기에,

정선 땅도, 정선 땅에 발을 내딛었던 나그네도

 

이 하늘 아래에서

다들,

한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