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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한 성장이냐? 고른 확장이냐?

2007.11.19 08:17

김성찬 조회 수:3109 추천:75

한국교회의 성장을 재는 잣대는 기적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결교회의 부흥을 가늠하는  척도 역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적은 우연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 기적에는 배후가 있기 때문이다. 배후. 그렇다. 기적에는 배후가 있다. 그러나 정녕 기적에만 배후가 있는 것일까? 아니다. 마술 또한 배후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현란한 마술에 탄성을 보내면서도 그것을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눈속임이기 때문이다. 눈속임이 배후인 마술은 기적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기적은 눈속임도 허구도 아니다. 필연이며 사실이다. 진짜다. 단 한가지 아는 것은 내가 이전에 눈 먼 자였으나 지금은 보는 것, 그것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요, 해서 기적이듯 말이다.

  투명한 배후가 있는 한국 교회의 황홀한 기적. 그 배후란 전능하신 하나님의 긍휼이었다.  긍휼.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긍휼. 그 누구라도 그분께 불쌍히 여기심을 받기만 하면 일어나던 극적인 삶의 변화, 그 환희. 그렇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우리 교단의 근 100여년의 금자탑은 하늘 아버지의 긍휼을 힘입은 결과였다. 우는 자의 위로요, 없는 자의 풍성이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을 자의 생명 되신 예수. 그 긍휼의 산물이었다.

  이제 선교 1세기를 넘어 선교 2세기로 향하는 우리 한국교회. 그 21세기에 걸맞게 우리는 더한 기적을 맛보며 살아갔으면 한다. 그러나 이런 소망이 꽃피고 열매 맺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청되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의 적절한 목표 재정립이다.
  
  더한 성장이냐? 고른 확장이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성장과 확장의 균형을 이루는데 있다고. 누가복음 13장은 그 명백한 증거가 된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같은 성장을 이룩하는데도 있지만, 누룩처럼 '전부'를 부풀게 하는 확장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다. 이 성장과 확장은 동시적일 수도 있고, 시차가 있는 순차적일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위만 바라보고 자라나는 성장 지향적인 부흥을 이루어왔다. 해서, 천만을 넘는 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교회 성장 세미나에 보다 더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될 것은, 모든 생명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바람결에 실린 민들레 홀씨는 성장을 멈춘 생명체의 자기 확장 본능이다. 해서, 들꽃 한 송이가 나중에는 온 천지를 뒤덮고 만다. 이것이 성장의 완성인 확장이다. 다시 말해 민들레 홀씨의 땅끝까지는 성장과 확장의 적절한 자기 통제가 이룬 참 기적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끝간데 없는 성장에만 유일한 가치가 부여되는 왜곡된 하나님 나라 건설은 그래서 부실할 수밖에 없다. 아니 스스로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허수(虛數)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닐까? 허수(虛數)란 거짓이란 말이다. 부풀리고 속이려고만 든다. 해서 어쩌면 우리 한국교회의 성장은 가짜일 수도 있다. 기적이 아니라 마술인지도 모른다. 가슴 아픈 지적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전부'를 부풀게 하는 누룩에 주목해 봐야만 한다. 가루 서 말 속에 넣은 누룩을 말이다. 한 줌 누룩으로도 서 말 가루를 전부 부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이다. 더 이상 수적 부흥이 없다고 한탄해 하거나, 편법을 강구해서는 안 된다. 그 천만(千萬)이 과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얼마만큼이나 건설해 놓았단 말인가? 바닷물이 그 선도를 유지하는 것은 단 2.5%의 염도 때문이 아닌가?

  이제는 확장이다. 고른 확장. 서 말 되는 이 세상을 한 줌 누룩같이 은밀한 영적 감화력으로 우리 누룩 세상을 만들어 버리자는 것이다. 흩어짐을 면하자고 바벨탑만을 쌓을 것이 아니라, 이젠 자진해서 이 세상을 향한 디아스포라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교회 담장을 헐어 이웃들의 주차장이 되게 하듯, 예루살렘 교회는 반드시 해체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역사다. 진리다. 우리가 그동안 거저 받은 하나님의 긍휼을 담장 너머 이웃들에게 선사해야만 한다. 여기에 무슨 좌절이 있고, 무슨 기발한 정책이 필요하며, 더한 가시적 건물이 필요하겠는가 말이다. 늦지 않았다. 지나친 자의적 해석인지 몰라도 성경에도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의 성장에 이어 누룩의 확장 순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된 한국교회. 우리 주님께서도 부자(성장) 청년에게 네 가진 것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확장) 했지, 빈털털이에게 요구하신 적은 없으셨다. 우는 자의 위로요, 없는 자의 풍성이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을 자의 생명되신 예수에 충만한 이 땅의 영적 부자 교회여! 우리 넉넉한 목회자여! 충만한 성도여! 받은 바 된 긍휼, 하늘의 위로와 풍성과 고침과 생명을 우는 자와 함께 나누자! 이 기적을 선사하자!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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