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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미련한 불가항력적 은혜

2008.04.28 09:18

김성찬 조회 수:3356 추천:68

그제(4월 26일(토)) 오전, 남양주시 화도읍 묵현리 420-7 예닮교회 입당감사예배 및 임직예식엘 다녀왔습니다.
넉넉하게 시간을 내어 출발했었는데,
주말 경춘가도의 상습정체를 피할 요량으로, 정도를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었다가 그만 낭패를 보고 말았습니다.
인간 네이게이션이라 자처하던 양동춘 명인의 길 예측은 기실 기상청 일기예보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구리시를 눈앞에 둔 신내동에서만 50여분을 허비했습니다.2km도 채 안된 거리를 말입니다.
목적지의 10분의 1도 진행하지 못한, 그 외통 마의 정체구간을 기진맥진한 상태로 벗어나 경춘가도로 접어든 시각이 오전 11시. 그 예식 개회시간이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제가 몬 그 차에 그 예식의 설교자인 지방회장이 동승한 것입니다.
날아 갈 수도 없어, 목적을 이룰 묘안이 따로 없었습니다. 하여, 축사하실 분, 축도하실 분과 순서를 바꿔달라고 긴급 전통을 날렸으나, 응답은 그래도 기다리겠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막막해진 우리는 갑작스레 설교를 맡는다는 것은 매일, 수 십 년을 설교해 온 목회자들도 부담스러운 일이여서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의 오해였습니다. 그분들이 설교를 대행해 주지 않은 진정한 이유는, 설교자의 권위란 그가 담당한 예식을 잠시 늦추는 것보다 더 우선이라는 선배목사님의 사려 깊은 배려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젠, 늦고, 늦더라도 우리만이 선언해야할 예식이 우릴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큰 길, 정도는 역시 正道정도였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묶어 쓸 수 없듯, 바쁠수록 큰 길로 출입해야 할 이유를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달리고 달려, 갓길로도 달려 거의 20분 만에 묵현리에 당도했습니다.

 

불가항력적 은혜

 

다행히 20여분 늦게 시직 된 예배에서 설교자 전현석 지방회장은 첫마디를 이렇게 땠습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로 우리는 정체와 지체를 반복했습니다."

 

논밭 한 가운데 우뚝 선 교회당은 노을처럼 우아했습니다.
순서가 지나면서, 내 눈에 차 들어오는 것은 60세 중반 접어 든 노사역자의 ‘미련함’이었습니다.
이제는 노후대책을 세워 나아가야 할 나이에 미련하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내면서까지 성전을 지어 바친 그 전도의 미련함(고전 1:21)이 눈부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이제 후임자를 구해야겠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짓듯, 3개월이면 완공이 가능했던 작은 교회당을 3년여 동안 힘겹게 지어 온 구원선의 키를 젊은 사역자에게 넘기겠다는 것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불가항력적 은혜

 

이런 시류역행적 뉴스를 접하면서, 저는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계산속 없는 노인네 임용준 목사님의 이 전도의 미

련한 헌신과 고백은, 인간의 지은 마음이 아니라 ‘불가항력적 은혜’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순간, 우매해 보이

던 그 노인네가 부러웠습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를 입은 그 노인네가 말입니다. 아니, 그 전도의 미련한 불가항력적 은

혜가 말입니다.

나에게도…….

그러나, 부끄럽게도 활짝 가슴을 열지는 못했습니다.
나도, 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성전은 나 여호와의 눈과 마음이 머무르는 처소(왕상 9:3)라고 명명하시던 주의 말씀처럼,
그 불가항력적 은혜를 입은 그 노인네 목사는 여호와의 눈과 마음으로 그 허허벌판에 전도의 미련한 종탑을 세웠던 가 봅니다. 

 

광고시간에 하객들의 축하박수에도 눈물이 앞을 가려 고개조차 들지 못하시던, 더 늙은 사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울며, 벧세메스로 올라가던 소는 두 마리였다지요? 늙은 목사와 더 늙은 그 아내. 온몸으로 감내한 전도의 미련한 이 불가항력적 은혜를 그녀는 바르르 떨며 친히 몸으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몸으로 오신 주님처럼.

 

그 신의 은총으로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고(요엘2:28).”
요엘의 묵시가 해석 되어졌습니다.
그 노인네들이 이룬 꾼 꿈을 보면서, 말씀 그 약속의 엄정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네들은 신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신이 부어지지 않고는 어떻게 그 산꼭대기에다가 120년간이나 방주를 홀로 지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신이 부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허허 벌판에 구원의 방주를 지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 전도의 미련한 이 불가항력적 은혜는 그 신통함 안에서는 감당치 못할 사명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불가항력적인 은혜는 그 신의 힘의 능력으로 이루는 은혜였습니다.
은총, 은총, 그의 은총이었습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스가랴4:6)."

 

가장 큰 꿈!

 

그리고, 그 늙은이들이 이룬 꿈,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큰 꿈까지도 읽혀졌습니다.
새 성전에 입당하면서, 이내, 후임자를 물색하는 그네들의 전도의 미련한 불가항력적 꿈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것. 그리고 그 집의 문지기로 만족한 것.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23편 6절).”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편 84편 10절).“

(Surely goodness and love wi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Better is one day in your courts than a thousand elsewhere; I would rather be a door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dwell in the tents of the wicked.)

 

모든 영광 오직 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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