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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과 새예루살렘 - 그 일색(一色)과 일치(一致)

2008.05.01 10:35

김성찬 조회 수:3168 추천:65

그제(4월 29일(화)), 오랜만에 모교 서울신학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제가 학위를 받은 뉴욕신학교(NYTS)에서 전 서울신대 총장이신 한영태 박사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기 때문입니

다. 대강당에서 감사예배로 드린 그 학위수여식은 성대하고 진지했습니다. Dr. Dale Irvin(President of NYTS), Dr.

Lester Ruiz(Vice President), 그리고 산파역을 담당한 미쉘교수님을 반갑게 만나 따뜻한 정을 주고 받았습니다.

 

학위수여 감사예배 후, 이신건 박사와 그 연구실에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어린이 신학에 대한 성찰이 신선했습니다.여성, 민중에는 관심이 지나칠 정도인데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

다며 씁쓸해 했습니다. 그래서, 잘 포장해서 널리 선전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그건, 어린아이적 태도가 아

니라고 하더군요. 어린아이는 자기자랑을 일삼지 않는다면서. 학문적 침잠과 학문적 태도가 일치해야 한다는 그의 한

마디에 학자적 양심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듣게된 교회사학자 데일 어빈의 설교는 역시,

우리의 근시안적 안목을 확장해 주는 거시적 전망을 펼쳐보여 주었습니다.

 

간단하게 제가 새롭게 인식한 사실들과 제 나름대로의 통찰을 정리해 봅니다. 설교 요약문이 아닙니다.

(원어 설교 전문을 입수했습니다. 차후에, 전문을 원어로 이 홈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벨탑의 교훈 ,창세기 11장 1-9절

 

1. 웨슬리

웨슬리가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선언하게된 연유는, 그가 영국국교에 의해 탄압받던 노방전도자였다는 사실이 중

요한 한 요인입니다. 영국을 넘어 온 세계로, 그의 선교적 전망이 그 경계선을 넘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라는 성서적 디아스포라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핍박없는 디아스포라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는 상황

화 신학에로의 초청을 받았던 것입니다.  

 

2. city 바벨 

그 글로벌시티 다문화, 다원, 다중언어를 구사하는 하늘로 치솟는 오만의 탑.

바벨은 자신의 오만을 자신있게 표현하는 도시였다. 서울도. 자신의 오만을 자신있게 표현하는 오늘 우리 한국 교회의

종탑도. 도시권력의 종탑. 랜드마크? 그래서 해븐마크가 되지 못한 것 아닐까? 

바벨은 도시권력의 프로토타입.

 

바벨탑의 언어혼잡은 형벌이 아니라 인간을 바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치료의 채찍이다.

 

3. 새예루살렘 

문화의 다양성은 하나님의 치료의 채찍.

새 예루살렘을 세우시는 과정에서 공동의 언어와 문화로서의 성서와 그 마당으로서의 교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과 벽을 넘어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새예루살렘.

 

단상(斷想)

 

1980년대  중반,

저는 한국 기독교교육학회의 일원 중 한사람으로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JNCC 멤버들이 주축이된 일본 기독교 신학자들과 함께 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세미나의 주제가 '창조질서의 보전'이었습니다.

그 80년대에는 너무도 생경한 주제였었지요. 

 

일본 열도 최남단 후쿠오카에서 개최된,

그 2박 3일간의 세미나는 인류에게 불어닥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각성을 갖게 한

인상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간은,

그 세미나 개회예배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민족적 원한과 갈등의 골이 깊은 일본인들과 함께 불렀던 찬송시간이었습니다.

이중언어로 부른 한 목소리의 찬송 '사랑하는 주님 앞에'는

새예루살렘의 찬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주예수 본을 받아 모든사람 내몸같이 환란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경계선을 넘어 그 일치의 복음을 가지고 다문화적 상황으로 넘어가라.

일본도 나의 교구였습니다.

하여, 세계도 나의 교구입니다.

 

억양따라, 피부색따라, 차종따라, 아파트평수따라 끼리끼리의 문화만을 즐기는

폐쇄적 배타주의, 배금주의에 물든 단일민족적 사고에서 벗어 나,

일색一色 아닌 일치一致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일색一色 바벨탑을 무너뜨리시고

다중언어, 다문화적 치유로

형벌이 아닌 바르게하시려는 주의 교훈따라.

내 말만이 아닌 이웃의 신음에도 귀를 기우리는

새예루살렘의 일치一致를

 

오늘,

가슴에 아로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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