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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존감이 신앙에 미치는 영향과 치유방안

 

박 노권 (목원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얼마 전 한 교인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고백했으며 교회에서 많은 봉사와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여러 가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로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단지 자신의 신앙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이해하고 자신 안에 그러한 모습이 보여질수록 더욱더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 원인이 대부분 낮은 자존감에 뿌리를 둠을 볼 수가 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회심의 체험도 있고, 복음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잦은 죄책감과 우울증, 열등감 등의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성숙한 삶에 관한 책도 읽고, 부흥회에 참석도 해보고, 더 깊은 헌신을 위해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고 열심히 노력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들 내면에서 들리는 "좀 더 잘해봐, 아직 충분치 않아"라는 음성 때문에 영적인 좌절을 맛보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기독교인의 삶 속에서 무엇보다 낮은 자존감이 이와 같이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보이슨이 시도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의 삶에서 단지 명제적인 교리가 아니고, 실제의 삶에서 구원의 기쁨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글에서는 자존감에 대한 분석을 하고 낮은 자존감이 어떻게 신앙에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고,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 상담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자존감 개념의 기원

 

 

1970년대부터 기독교 상담학이 활발해 지면서 기독교 안에서 '자기사랑'이나 '자기존중'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자기사랑'이나 '자기존중'에 대한 것은 1940년대부터 일반 심리학에서 이미 중요한 주제가 되어있었고, 50년대와 60년대에 이르러 그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기독교 상담이나 돌봄 분야에 영향을 주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존감의 개념을 정리하기 위하여 먼저 이것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실존주의-인본주의 심리학의 영향을 살펴보고, 더 깊이 올라가서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성서적인 근거를 찾아보고자 한다.

 

실존주의-인본주의 상담방법은 참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철학적 관심에 강조 점을 두고 있다. 실존주의-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은 자유와 책임에서 도피할 수 없으며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책임과 함께 한다는 대전제를 갖고 있다. 마슬로우(A. Maslow)는 "사람들은 정치적 민주주의나 경제적 번영이 그 자체로는 가치 문제의 그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치가 자리잡을 곳은 인간의 내부와 자기 자신뿐, 그밖에는 아무 곳도 없다"고 말하며 개인의 중요성에 대한 실존주의의 영향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실존주의는 어느 사상보다 개인의 개별성과 주관성을 강조하며, 우리 모두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신이 가치와 의미의 창조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상은 인간을 더 이상 유전과 환경에 의해서 조정되는 생물학상의 기계가 아닌, 최소한 인간 스스로의 판단으로 선택의 자유와 절대 가치를 지니는 인격체로 보게 해 주었다.

 

이러한 실존주의-인본주의 심리학의 자아실현, 자기배려, 자기존중에 대한 주장은 더욱 효과적으로 기독교의 전통적인 이웃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중 하나인 로저스는 개인들을 "피상적이고 외적인 근거에서 바라볼 때 그들은 우선적으로 자아사랑의 희생자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치료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근거로 해서 "문제의 핵심적 원인은...그들이 그들 자신들을 경멸하고, 자신들을 무가치하고 사랑 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다른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인간 실존에서 심각한 문제는 '자기사랑'이 아니라 '자기혐오'이며, 사람이 자기사랑을 느끼면(자아가 사랑 받고 또 사랑받을만하다고 느끼면) 자동적으로 타인 사랑이 뒤따를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신학에서도 자기존중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인간 조건의 분석에 있어서 자기혐오나 자기존중의 상실 문제에 대해서는 심리학이 신학자들보다 더욱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자기존중에 대한 심리학의 통찰력이 오늘날 기독교 상담과 돌봄에서 말하는 자존감에 대해 많은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자존감의 철학적, 심리학적 배경은 인간의 자아를 그 존재의 근원에 놓고 있다. 또한 이 자아 자체가 선하고 사랑 받을 만하고 그러기에 무조건적 존중이 필요하다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인간은 그 본성 자체가 선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자존감의 근거에 대해 성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 동안 심리학의 영향으로 기독교 안에서 자존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기고 강조를 하게 되었지만, 이미 이것은 성서 안에서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있으며, 심리학적인 자존감 이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본다.

 

자존감의 근거에 대한 성서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갖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성서의 인간이해는 프로이드의 부정적 인간이해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서도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8:21),"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는 인간의 완악함과 죄성을 깊이 인식하면서도 "하나님의 형상"과 "구속"에 대한 교리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창1:27)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하지만 대부분 일치를 보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존재로의 지으심"과 "통치권의 위임"(창1:28을 근거)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비록 이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인간들을 찾아와서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실만큼 인간에게는 아직도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성서가 말하는 자존감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성서는 로저스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 안에 자기실현 가능성이 있고 본래적으로 선한 존재이기에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성이 죄로 인해 타락하고 병들어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가치 있게 여겨 사랑하시고 구속하시기에 존귀하다는 것이다.

 

성경 안에서 자존감의 근거를 제시하는 구절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29)를 들 수 있는데, 트로비쉬(W. Trobisch)는 "결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명령 없이 이웃만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내려지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여기에 자기사랑의 전제가 깔려있다고 말하고 있다. 더나아가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태도, 즉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 자존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하였은즉"(사43:4)이라는 성경 구절은 죄악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자신이 어떠한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성서적인 자존감은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가치감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과 그분 안에서 갖게 된 절대적인 가치감으로 평가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2. 낮은 자존감을 갖게 하는 요소들

 

 

낮은 자존감을 갖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증상들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칼슨의 경우 '죄책감'을 특별히 강조하고, 김중술도 다양한 증상들 즉, 허풍이나 과장, 남을 비판하는 것, 자기합리화, 완벽성, 수줍음과 소심함, 자기평가절하, 분노 등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증상들은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동원은 이런 증상들이 인간관계를 굴절시키고, 삶의 순순한 동기를 파괴하며, 육체적-정신적 질병을 초래하고, 그리고 참된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증상들을 갖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외적, 내적, 영적인 원인 등이 있을 수 있으나, 우선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아 이것을 내면화시킨 사람들이므로, 외부적인 요소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중요한 타인들의 영향

 

자존감에 영향을 주는 가장 커다란 요인은 바로 "중요한 타인들"(significant others)이다. 우리는 부모, 형제친척, 혹은 학교선생이나 친구 등 우리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아개념을 습득하게 된다. 그러나 자존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은 유아기에 어머니와 유아 사이에 형성되는 애착관계이다. 부모와 만족스런 정서적 관계를 형성한 유아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지각한다. 이들은 사회환경에 대하여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던 긍정적 감정의 경험을 토대로 사람이란 신뢰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또한 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감이라든가 자존감이 높을 뿐 아니라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부모의 완전주의적인 양육방식과 방치, 거절, 학대 등의 경험은 유아의 무의식 속에 깊이 기억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낮은 자존감을 갖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특히 역기능 가정은 자녀들의 자존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역기능 가정은 자녀들에게 그들의 감정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침으로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독특한 개인으로 자유롭게 성장하는 대신에 아이들을 미리 설정된 견고한 틀 안에 갇혀 살게 만들며, 서로 보살피는데 실패함으로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한다. 자녀들은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양육될 때 건강한 자존감을 발달시키게 되는데 정서적 양육이 크게 결여되어 있는 역기능 가정에서 개인의 건강한 자존감의 발전은 방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2) 사회적인 가치관

 

자아개념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사회적인 가치관"이다. 예를 들어 국제화 사회인 지금, 영어 실력과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더 큰 성공의 기회를 부여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컴퓨터나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한 사람보다 더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외모에 대한 여성의 가치관에 있어서도 많은 여성들이 '비만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대부분 TV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국내외의 늘씬한 모델과 배우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결과이다. 이와 같이 그 시대의 사회적인 가치관이 제시하는 기준들을 소유한 사람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3) 완전주의적 신앙

 

낮은 자존감의 뿌리 가운데 특히 신앙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완전주의 신앙'이다. 완전주의는 부모의 끊임없는 요구로 해서 소아기에 주로 형성되며, 완전주의적 신앙은 성인아이 목회자의 영향으로 올 수도 있다.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한 목회자가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 있을 때, 율법적이고 경직된 신앙관--"아직도 충분치 않아"라는 완전주의적 신앙--을 교인들에게 요구를 함으로, 이런 영향을 받는 교인들의 신앙이 완전주의적인 신앙이 될 수 있다. 그 원인이 부모의 양육태도에서 왔건 목회자에게서 왔건 간에 항상 더 높은 목표만을 제시하는 완전주의적인 신앙은 절망감을 심어주고,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유발시킴으로써 낮은 자존감을 형성하게끔 한다.

 

 

3. 낮은 자존감과 신앙과의 관계

 

 

이렇게 형성된 낮은 자존감은 삶의 순수한 동기를 파괴하며,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마비시키고 꿈을 파괴할 뿐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질병을 초래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존감은 신자의 참된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하나님을 위한 사역을 방해하는 부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것을 자신의 신앙심이 부족하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혹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율법적인 종교행위나 회개 등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정서적으로 안정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낮은 자존감이 어떻게 신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 관계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1)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하나님 인식

 

낮은 자존감이 신앙발달에 있어 영향을 주는 가장 큰 부분은 하나님을 왜곡되게 인식하는데 있다. 하나님 인식에 대한 오해는 어린 시절 부모의 양육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 이유는 부모가 하나님의 그림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씨맨즈 목사의 지적처럼, 부모로부터 받은 대우에 따라 성인아이의 하나님 상은 사랑이 많고 자비롭고 선하신 분, 믿을 수 있는 분, 거룩하고 공평하신 분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가 하면, 무관심하거나 잔인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분, 비판하고 불공평하신 분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새겨질 수 있다. 낮은 자존감이 그 인격 속에 형성되어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나, 자신을 받아준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들이 경험하는 죄의식을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온 정죄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자신의 낮은 자존감이 원인이 되어 스스로를 정죄하고 상하게 하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팀 슬레지는 아버지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인상에 영향을 주는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나의 관념이 아버지에 대한 관념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내 아버지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고 나를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삶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 정서들로 인하여 아버지는 나의 가치에 대해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다. 어떤 경우에 아버지는 나를 크게 칭찬했으며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하나님을 절대로 기쁘게 해드릴 수 없는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용납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수치심을 느꼈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2) 낮은 자존감과 완전주의 신앙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감의 근거를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으려 한다. 어떤 뛰어난 행적을 통해 인정을 받는다던가, 남들보다 성경의 규칙들을 더 잘 순종함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은 봉사와 철저하게 성경의 말씀들을 삶에 적용하려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정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 이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위협하므로, "좀더 열심히"라는 상향적인 신앙관을 가지게 된다. 이는 그 사람 안에 완전주의적인 신앙관을 형성해서 항상 자신이 도달할 목표 이상의 기준을 제시함으로 절망과 죄책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렇게 볼 때 낮은 자존감이 신앙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상 어린 시절 받은 상처에 대한 방어기제라고도 볼 수 있다. 정당한 정서적 요구가 계속적으로 좌절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적당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사고 속에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고의 왜곡을 익히게 된다. 에론 벡(Aaron Beck)은 이렇게 사회적 적응을 어렵게 만들며 마음에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감정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들을 "왜곡된 사고"로, 엘리스(Albert Ellis)는 "비합리적 사고"라고 부른다. 애론 벡에 의하면 사람들이 우울해진다거나 불안해지는 것은 대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고의 왜곡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우울하니까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하지만, 애론 벡은 비관적인 생각을 하니까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비난의 느낌과 사고의 왜곡으로 말미암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경직되어지고 완전주의자가 되어 계속적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결과를 되풀이하게 된다.

 

이처럼 낮은 자존감은 사고의 왜곡을 불러와 모든 사건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며, 결국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신앙생활도 강박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러한 강박적인 관념에 의한 신앙생활은 남들보다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열심히 하거나 봉사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들은 자유함이 없으며 "아직도 부족해"라는 완전주의적 신앙을 갖게 되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4. 자존감 회복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낮은 자존감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 있고 가치 있는 삶을 빼앗아 갈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거짓된 관계를 만들어 사람을 고립시킨다. 이러한 낮은 자존감은 그 뿌리가 깊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적 통찰력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전제하며, 심리학적인 접근방법이 자존감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심리학의 접근방식들

 

자존감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정신역동적 접근방법, 실존주의-인본주의적 접근방법, 행동주의적 방법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정신역동적 방법은 자존감의 문제를 과거 아동기와 성장과정에서 억압시켜 놓았던 무의식에 두고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는 문제의 발단이 어린 시절 애착관계와 자신을 양육해 주던 '중요한 타인'의 양육태도에 있다고 본다. 결국 양육과정에서 아이가 받는 부정적인 감정은 무의식 속에 묻혀 열등감을 형성한다. 이 무의식 속에 있던 열등감은 다른 사람에 의해 무시당하는 것 같으면 자아(ego)의 허락도 없이 무의식에서 나와 "너는 무능해", "너는 보잘 것 없어"라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다시 반복함으로 낮은 자존감을 형성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무의식 속에 어떠한 감정들이 억압되어 있는지 발견하기만 하면 문제는 저절로 치유되어진다고 생각하며, 정신역동적 접근은 이 무의식을 깨닫게 하는 것을 상담의 목표로 삼는다.

 

실존주의-인본주의 접근방법은 낮은 자존감의 문제를 과거의 무의식이 아닌 그 자신의 의지적인 결단과 현재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접근방법은 그 사람의 자기인식(self-awareness)을 확장시키고 자신의 제한성과 가능성을 충분히 그리고 바르게 깨달아 알면 자신을 결단할 수 있는 자유의 능력이 커지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식의 확장과 진정한 의미의 발견은 인간의 관계를 통해 발견되므로 이 접근방법은 상담자의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과 정확한 공감적 이해, 그리고 진실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접근은 인간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인정하려고 하며, 모든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상담자는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결단하고 자신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게 격려해주고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행동주의 접근방법은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여 그 행동이 바로 어려서부터 습성화된 자기 패배적인 행위에 근거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행동은 환경에 의해서 조절되고, 환경이 이 행동을 조절하여 일정한 행동을 습관화시키면, 습관화된 그 행동은 그 사람에게 하나의 습관화된 의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동주의적 접근은 문제 해결을 위해 비합리적인 생각들을 깨뜨리고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줌으로 자기 패배적인 정체성이 아닌 성공적인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 심리학적 접근의 한계

 

위의 세 가지 접근방법은 인간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율적인 인격형성에 다같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건전한 인간에 목표를 두고 건전한 인격을 갖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들을 어떻게 제거하며, 어떻게 새로운 출발을 하게 도울 수 있을까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인간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갖고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가치 문제와 삶의 방향과 삶의 목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등 영적인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약점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오든(Thomas Oden)은 오늘날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로저스 상담의 한계성을 지적한다. 인간의 가장 깊은 차원 즉 하나님 아래 있는 피조물이라는 한계를 보지 못하고 인간에게는 궁극적으로 자기성취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로저스는 믿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든은 무엇보다 타락한 인간을 새롭게 하기 위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와 구속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로저스의 무조건적 수용에 대해서도 그것은 유한한 인간 형제에 의한 제한적인 수용이라고 그 한계를 밝히고 있다. 동시에 매우 개인주의적인 로저스의 상담이론을 지적하면서 소외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려면, 그는 상당히 양육적이고 훈련적이고 지지적인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든은 인간본성의 한계--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참으로 자유할 수 없는 존재--와, 상담을 받아주는 상담자의 유한성을 지적하면서 일반상담의 한계를 말한다.

 

 

5. 자존감 회복을 위한 기독교 상담적 접근

 

 

낮은 자존감이란 문제를 만들어 낸 과거의 기억과 그 뿌리, 그리고 현재를 직시하고 결단하는 부분, 미래적으로 행동을 바로잡는 부분까지 일반심리학의 다양한 통찰력을 활용하는 것은 유익하다고 본다. 그러나, 더나아가 낮은 자존감을 치유하는 근원과 가능성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보면서, 자존감 회복을 위한 기독교 상담의 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본 글의 결론으로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자신을 이해하기: 낮은 자존감의 문제성을 직면하라.

 

보통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는 발견을 하게 되거나, 또는 지적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기 보다 부인하거나, 그렇게 지적한 대상에게 투사하여 화를 냄으로 그 상황을 회피하려 한다. 이와 같이 반응하는 이유는 변화에 대한 완고함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한 감정과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 약간은 긴장되고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성인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그런 가정과 분위기에 익숙하다. 이것은 대부분의 알콜 중독자의 자녀가 알콜 중독자와 결혼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증명이 된다. 또 어려서 부모 또는 중요한 타인에 의해 거절과 방치, 심한 훈계를 받으면서 자라난 사람은 그 내면에 "나는 이런 대우를 받기에 합당해"라는 자기 대화가 계속됨으로 자신을 계속 낮은 자존감에 머무르게 한다.

 

이때 상담자는 공감적인 이해와 따스함, 관심, 존중, 비밀 보장과 진지함을 통해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변화에 직면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문제성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상담자는 여러 가지 상담 기술을 이용하여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고 결단할 수 있게 해주지만, 궁극적으로 피상담자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낮은 자존감의 근본원인이라고 생각될만한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들을 직면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경험들을,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무의식에 영역에 있는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림으로 직면하고 그리고 자신이 손댈 수 없는 용서의 문제를 은혜의 하나님께 내놓을 때, 자신을 괴롭히는 무의식의 악영향을 차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자신을 수용하기: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단점, 능력과 한계를 파악하는 일인데, 이것은 타인과 비교함으로 발생하는 낮은 자존감의 폐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나의 말과 생각, 행동, 상상력, 느낌, 필요, 관계성 등--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되면 자신의 행동과 태도 가운데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고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사랑의 근원이다.

 

나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에 대한 기초는 나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이것이 올바른 자기평가이고 자존감의 근거이다. 자신을 인정할 때, 하나님이 주신 자질과 능력 안에서 자신의 노력을 자신의 능력에 비교하면서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자신을 칭찬할 수 있으며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 자신에게 완벽을 기대하지 않을 때 자신에 대해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을 보기: 자신의 자존감을 상향 조정하라.

 

사람의 심리구조는 자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맞추어, 스스로 그 예상에 맞도록 행동하는 성향이 있다. 밴두라(Albert Bandura)는 이것을 자기 이행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즉, "사람은 자기가 선정한 기대에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맞추어 간다"고 표현한다. 낮은 자존감을 갖은 사람은 자신을 "실패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함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게 되므로 자기 패배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상향 조절할 필요가 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신앙인들이 자기사랑에 실패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을 부인하도록 배워왔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의 죄악으로 느끼는 것에 있다. 참된 자기사랑은 자기도취("나는 나의 세계의 중심이다")와 순교정신("나는 필요 없는 고통도 겪을 것이다")을 벗어나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존재("나는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랑스럽고 소중하며 능력 있는 피조물이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높은 자존감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이제껏 자신의 내면에 흐르던 부정적인 자기묘사를 과감하게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잘 나타낸 성경 구절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사43:3)에서 보듯이, 천지를 지으시고 그 가운데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신의 가치에 합당한 것은 낮은 자존감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능력, 소속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인 것이며, 이 때 우리의 자존감은 높아질 수 있다.

 

 

4) 완전주의 성향의 탈피: 자신에게 현실적인 요구를 하라.

 

우리가 지닌 자존감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자신과 이상적인 자신을 비교하는데서 오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원하는 모습에 더 가까울수록 더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즉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파악하고 합당한 요구를 할 때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계속적으로 요구함으로 낮은 자존감을 형성케하는 것이 완전주의이다. 완전주의는 자신을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는 남들보다 낫기 때문에 이러이러 해야해"라고 자신에게 요구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요구가 자존감의 상실을 유발하는 이유는 실제로는 자신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적인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현실적이고 합당한 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때로 우리의 능력에 넘치는 일을 감당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신이 완전치 않으며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실수를 통해 앞으로 나갈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자신을 개방하기: 지원그룹을 활용하라.

 

최근 들어 교회 안에서 소그룹 운동이 강조되고 있는데, 낮은 자존감에 대한 상처를 치유함에 있어서도 소그룹 활동은 효과적이다. 특히 같은 종류의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함께 도움을 주고받는 지원그룹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원그룹은 1920년대 빌 윌슨에 의해 시작된 알콜중독자를 돕기 위한 모임(AA: Alcoholics Anonymous)을 시초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원그룹의 특징은 스스로를 돕는 그룹으로 회원은 안정감을 느끼고 사랑하는 분위기 안에서 서로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서로를 돕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감추어져 있던 정서적 고통을 만나고, 상처받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치유에 대한 소망, 용납,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함으로 치료를 경험하게 된다. 지원그룹 안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상처를 받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 치유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들은 자기 고백을 통해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보다 분명히 알게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그룹은 그룹원 간의 유대 관계를 형성해 주기 때문에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으며, 고백과 용서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통해 영적인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날 이혼, 가정폭력, 가출과 성적 혼돈 등으로 가정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역기능 가정이 늘어나며 성인아이의 증상으로 인해 낮은 자존감과 정서적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교회는 설교나 교육, 심방 뿐 아니라 개인적 상담을 통해, 사람들이 과거의 경험과 낮은 자존감을 형성케 했던 그들 안의 부정적 감정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자신을 수용함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성장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치유공동체로서 소그룹 또는 지원그룹의 활발한 운영을 통해서 따뜻하고 지지적인 관계를 만들어주어 낮은 자존감이 긍정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들이 삶 속에서 기쁨을 얻으며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런 방향에서 돕는 것이 앞으로 목회의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