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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아이들

2012.02.18 00:24

그루터기 조회 수:3312 추천:69

선유도아이들

            -사랑의 인사 

 

지금

선유도는

바람과

눈 속에 갇혔습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와 눈보라를 일으킵니다.

뽀얀 눈보라 속에

망주봉이 희미합니다.

 

눈이 온 아침

 그러다가 눈이 잠시 멎고 하늘이 맑아지면

하얀 눈을 함빡 뒤집어 쓴 망주봉이 슬몃 고개를 내밉니다.

그것도 잠시 또 눈 구름이 뽀얗게 몰려오고 눈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삽시간에 모든 길들이 하얗게 지워지고 집들도 눈 속으로 사라집니다.

섬에 눈이 오면

제일 먼저 망주봉이 하얘집니다.

그다음에 길들이 하얗게 지워지고

그다음엔 집들이 하얘집니다.

갯벌만 검게 남습니다.

바람 없이 섬에 눈이 오면

바다에 내려앉은 눈송이들은 물거품처럼 가볍게 사라지기도 하고

이따금씩 이는 잔물결에 살짝 부서지기도 합니다.

바다는 검은 빛을 띤 채 술렁입니다.

어떨 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바람이 잡니다.

또 어떨 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섬에서의 바람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집을 나서려는데 또 눈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밤새 내린 눈을 쓸어내고 남편이 길을 내주었는데 금새 또 길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남편이 넉가래를 들고 앞장서 길을 냅니다.

길을 내주는 그의 등이 듬직합니다.

그가 앞장서고 그가 낸 눈길을 내가 걷습니다.

눈은 뽀얗게 쏟아지고 그가 낸 길을 내가 가는데 내 뒤로는 길이 지워집니다.

하늘이 잔뜩 흐린 것을 보니 아직 눈이 한참을 더 올 모양입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늘, 선유도 초,중학교에 졸업식이 있는 날입니다.

초등학생 두 명, 중학생 다섯 명이 졸업을 합니다.

졸업식이 열리는 음악실에 들어서니

학부형들과 시상할 내빈들이 자리를 잡았고

졸업생들은 앞자리에, 재학생들은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올해는 몇 해 졸업식을 알리는 프랭카드 대신 하얀 스크린이 내려져 있습니다.

특별한 졸업식을 기획했다니 기대가 됩니다.

국민의례가 있고나서 졸업장 수여와 상장 수여가 있습니다.

일곱 명의 졸업생이 번갈아 나가 상을 받습니다.

상을 못 받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한 아이가 여러 개의 상을 받기도 합니다.

여기저기서 킥킥 웃는 소리도 들립니다.

중학교 졸업생 다섯 명 모두에게 동문회장의 장학금 전달이 있고나서 프로젝트를 켭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영상으로 듣습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퍽이나 긴장하신 표정이 역력합니다.

육지에 출장 중이신 교감 선생님의 말씀도 영상으로 봅니다.

교감 선생님도 카메라가 어색한 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학생들이 하나씩 졸업하는 선배들에게 인사합니다.

밝게 웃으며 소현이가 인사합니다.

'안녕! 언니, 오빠!!'로 시작합니다.

'언니, 오빠들과 헤어진다니 너무 아쉬워'

소현이는 중학교 졸업하는 언니들과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 공부했으니 정이 많이 들었을 겁니다.

초등학생 때는 복식(3복식) 수업을 했으니 학년이 달라도 같은 교실에서 공부도했을 겁니다.

초등학교 졸업 때와는 달리 이제는 정말 헤어지게 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언니들은 육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갈 것이니.

'언니들과 함께 했던 운동회, 여행, 견학, 가을 음악회.... 모두 즐거웠어'

재학생들의 인사가 끝난 다음 졸업생들이 인사합니다.

'안녕!' 눈웃음이 예쁜 유정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합니다.

'너희들이 있어서 학교 생활이 즐거웠어'

'눈이 온 날 학교 뒷편 비탈길에서 썰매를 타던 일, 운동회 날의 사물놀이, 플릇 사중주, 무주 스키장에서의 멋진 경험, 해수욕장에서의 신나는 물놀이..... 너무 즐거웠어'

그리고

'선생님, 고맙습니다.'

유정이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 시작합니다.

'철없던 우리를 많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가에 물기가 어립니다.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납니다.

유정이가 눈물을 참고 있습니다.

이어서 박양규 선생님의 사랑의 인사

'얘들아, 안녕!' 선생님이 손을 흔듭니다.

'지영아, 너의 당당한 모습이 예뻐'

'유정아, 유정이는 예쁜 얼굴처럼 고운 말을 썼으면 좋겠어.'

'지민아, 지민이의 노랫소리가 많이 그리울거야'

'승찬아, 승찬이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창준아, 창준이는 밥 조금만 먹고. 사랑해'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너희들을 위해서 기도할게. 사랑해'

선생님들의 사랑의 인사가 이어집니다.

 

내 사랑하는

 오늘 아침 사도는 로마서 마지막 장에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면서 문안합니다.

'나의 보호자인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뵈뵈'

'기꺼이 목이라도 내어놓을 수 있는 나의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

'아시아에서 처음 맺은 열매,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주 안에서 사랑하는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마리아,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

사도는 친히 이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이들은 사도의 보호자로, 동역자로

자기의 목이라도 대신 내놓을 만한 사람들입니다.

많이 수고하고, 함께 갇혀

고난을 당하던 사람들입니다.

어머니와 같은 사람으로 회상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는 자신과 함께 일했던 동역자들의 수고를 잊지 않고

이들에게 빛나는 훈장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서 사랑의 인사를 합니다.

 

사랑의 인사

 감사와 눈물이 있었던 졸업식을 끝내고 나오니

그때까지도 눈이 뽀얗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어지럽던 발자국들을 하얗게 지우고

이제 졸업을 하고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선유도아이들의 무한한 미래를 열어주듯

하늘 아버지께서 크고 하얀 도화지를 펼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사랑의 인사를 보냅니다.

主.內.平.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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