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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아이들

2012.10.23 23:33

그루터기 조회 수:992 추천:82

새순과 그루터기

 

지금

선유도는

맑은 가을 밤

바람에 쓸린 마알간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나왔습니다.

달빛이

맑은 명주 천처럼 부드럽게 흐릅니다.

그 달빛 사이로 천천히 구름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바람도 한 자락

감나무 잎을 건들며 지나갑니다.

 

아이들- 새순

추석 전 날

선유도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옵니다.

섬 집에서 추석을 보내기 위해

벌써 자식을 두셋씩 거느린 가장도 있습니다.

올해도 짝 없이 홀로 온 노총각도 있고

남친을 데리고 온 화사한 숙녀도 있습니다.

목사님도 있고

선교사 지망생도 있습니다.

선생님도 있고

임용고시 준비 중인 기간제 교사도 있습니다.

의사도 있고

병원 사무직원도 있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샐러리맨도 있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엔지니어도 있습니다.

카수도 있고

피아노 선생님도 있습니다.

고등학생도 있고

대학생도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있고

옷가게 점원도 있습니다.

학원 원장님이 있고

학원생도 있습니다.

쌍둥이도 있고

외아들, 외딸도 있습니다.

외할머니 집에 온 아이도 있고

친할머니 집에 온 아이도 있습니다.

목사님 드리려고 선물을 들고 온 아이도 있고

목사님에게서 용돈을 받는 아이도 있습니다.

섬 집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있고

육지로 나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아주기

올해는 추석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선유도교회가 젊어졌습니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 울음소리, 웃음소리 가득한 예배를 드립니다.

가족별로 애찬식을 합니다.

엄마와 딸이

아버지와 아들이 떡을 떼어 서로의 입에 넣어줍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촌 형이 사촌 동생에게 떡을 떼어 입에 넣어줍니다.

너무 많이 넣어주어서 볼이 미어터지게 생겼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하하 웃었습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립니다.

서로 축복하며 안아줍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도 있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멋쩍어서 얼굴이 붉어진 아이도 있고

엄마를 꼭 껴안은 아이도 있습니다.

행복이 충분한 사람이 있고

조금 쓸쓸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어머니의 거친 손을 가만히 잡는 며느리도 있고

친정어머니의 굽은 허리가 마음 아픈 딸도 있습니다.

혼자 된 딸이 애달픈 친정어머니가 있고

집 나간 며느리 때문에 가슴에 멍이 든 시어머니도 있습니다.

손자, 손녀가 기쁨인 할머니가 있고

손자, 손녀가 눈물인 할머니도 있습니다.

가족이 의자 세 개가 넘치도록 온 사람도 있고

홀로 族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그 날 우리 딸을 다른 집사님에게 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다른 권사님의 품을 빌렸습니다.

오늘 만큼은 서로 서로 안아줍니다.

가까이에 앉은 사람은 안아줍니다.

조금 멀리 앉은 사람은 손을 잡아줍니다.

더 멀리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눈인사를 합니다.

아이들의 歸鄕을 함께 즐거워합니다.

아~ 참, '꽃게잡이 폴포츠' 들어보셨나요?

스타킹에 나왔던 그 '꽃폴'이 우리 선유도아이랍니다.

 

엄마들-그루터기

저녁에는 엄마들이 음식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습니다.

예배를 마친 다음 모두 펼쳐놓고 둘러앉았습니다.

그리고 신나게 먹었지요.

엄마들의 송편 솜씨를 감상하면서.

모이면 옛날, 옛날 이야기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전깃불이 없던 시절의 어두컴컴한 뒷간 이야기

그 뒷간 한 쪽 벽에 걸려있던 길쭉한 대바구니(竹棺 )

그것이 棺이었다는 말에 혼비백산했던 일

가난해서 고구마로 점심을 때우던 핍절한 이야기

그 시절의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섬엔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짓습니다.

겨울 초입이 되면 우리 집도 고구마가 넘쳐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힘이 장사인 그 누구 이야기

그 날도 녹슬지 않은 힘을 증명이라도 하듯 복사기 옮기는 일에 한 몫 단단히 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학생 수가 많아서(?) 운동회도 할 만 했었다는 이야기

뒷 섬들을 오가며 통학생을 실어나르던 통학선 이야기

통학선이 없어지고 학교 운동장에 합숙소가 지어졌습니다.

지금은 그 합숙소도 학생이 없어서 선생님들이 쓰고 있습니다.

섬에 오면 목사님이 항상 그 자리에 계셔서 든든하다는 이야기

대학 다닐 때

섬 집에 다니러 왔다가 목사님 집에 들러 가면 주셨었다는 하얀 봉투

그 봉투 안의 용돈이 궁금해 운동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두근거리며 봉투을 열어 보았다는 이야기

사모님이 쓴 시를 슬쩍 이름만 바꿔 국어 숙제로 냈었다는

시를 잘 썼다고 선생님께서 반친구들 앞에서 읽으라고 해서 후덜덜 떨며 읽었다는 이야기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옛날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그날 밤, 엄마들의 얼굴은 웃음꽃이 활짝 폈습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앞에 있으면 마음이 순순해지나 봅니다.

아이들을 보는 엄마들의 눈빛이 부드럽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오늘 밤처럼

그 날 밤에도 달이 나와 있었습니다.

天地間에

온통 달빛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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