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6: 체력이 인격
2019.04.29 07:48
오후에, 살가운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져 잠들었던가 보다. 새 날인가 싶었는데, 밤 10시 27분이다.
인간 구성 요소 중, 플라톤의 이원론에 영향을 받은 전통적인 영육 이분설에서는 <육은 영의 감옥>이라고 했다.
문득 지난 주초에 후배 목사에게 들었던 리포트가 떠올랐다.
아버님(원로 목사)께서 급격하게 달라지셨어요. 손자녀까지 포함된 단톡방에다가 시도때도 없이 불편한 감정을 공개적으로 쏟아내고 계셔요.
그 아들 목사만이 아니라, 나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나, 성자 중의 성자라고 존경을 받던 어르신께서, 어쩌다가 그리 되셨을까?
남에게 언짢은 소리 한 마디 내뱉아 본 적이 없던, 고매한 인격을 소유한 분이라 여김을 받았던 어른께서.
그랬다. 참는 게 아니라, 눌렸던 감정들이 육신이 허물어지면서, 삐져 나오고 있는 거다.
참는다는 말은 인격적 자기 수양의 힘이 뒷받침 된 자기 통제 능력이다. 그러나 눌린다는 것은 저항할 힘이 없는 불가항력적 수용 상태를 말하는 거다.
참았던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눌려 살아왔다가 이제 육신이 균열 조짐을 보이자, 눌렸던 분한 감정들이 서서히 그 육신이 허물어지는 틈으로 삐져 나오고 있는 거다. 그만큼 육의 건강이 전인 건강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는 거다.
정신력으로 버틴다는 말은, 육체적인 힘이 뒷받침 될 때 가능하다는 말이다. 영력 운운 하는 것도, 육체적 힘이 받쳐 줘야만 그 힘을 지속할 수 있다. 과연 육은 영의, 혼의 감옥이다. 아니, 육은 영과 혼의 배후다. 아니다. 육과 영과 혼은 일체다.
자다가 일어나, 이런 봉창 뚫는 소리를
나는 지금 내뱉고 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이 있지만,
체력이 인격이라는 말도 가하다.
한나절을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체력이 심히 염려 된다. 내 안에 눌렸던 감정들이 서서히 삐져 나올 기미가 보인다. 참을 인격이 본디 없는 내가 육신마저 균열되면, 그 어떤 눌렸던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삐져 나올까?
공포가 따로 없다.
재수 없으면 200년을 산다는데.
동물 국회의 난장판을 관전하며, 참지도, 눌리지도 않는 저 짐승 같이 노골적인 자기 감정 표출을 서슴지 않는 국개의원들은, 적어도 치매에는 걸리지 않을 것 같아서, 부럽다.
취중 진담이라는 말이 있듯이
취침 중 진담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늙기도 서럽거든,
공포덩이 육신이 되어 간다니,
ㅠㅠ
산뜻하게 마감하게
해주소서,
제발, 주여 !!
2019.04.26(금)
오후 10시 50분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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