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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횃불회 목회자 세미나

 

권해생 교수

설교자를 위한 베드로전서 이해 1

 

좋은 성경 강의는 복음이 과연 복음임을 드러내 보여주는 강의다. 오늘 베드로전서를 강의해 준 권해생 교수의 강의는 좋은 강의였다.

 

바울 서신과 공동 서신(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의 차이

 

바울 서신-바울의 중생은 성령의 역사(딛3:5)

 

공동 서신-말씀으로 중생(약1:8;벧전1:23)

 

제일 늦게 기록된 요한 서신이 두 입장을 집대성 했다.

요한 복음-물과 성령(요3:5)

요한일서-하나님의 씨(말씀) (요일3:9)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생명의 말씀이 역사한다.

 

성령(바울)과 말씀(베드로)의 전통이 하나 되어야 한다.

 

베드로전서의 핵심 주제

 

하나, 우리는 나그네(1장1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벧전1:1)

 

‘나그네’는 세속적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베드로전서(이라 본서)에서 말하는 ‘나그네’의 의미는 ‘돌아갈 집이 따로 있는 사람’이라는 말에 더한 방점이 찍힌 사람이다. 

 

παρεπίδημος (벧전 1:1; 2:11; 히 11:13) - 나그네

παροικία (벧전 1:17) - 거류민 생활 – 나그네 생활

πάροικος (벧전 2:11) - 거류민

ξένος (히 11:13; 벧전 4:12) - 외국인

 

1 Clement - “The church of God that sojourns(παροικέω) at Rome to the church of God that sojourns at Corinth”(로마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고린도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Polycarp's letter to the Philippians - “Polycarp and the elders with him to the church of God that sojourns(παροικέω) at Philippi”(폴리갑과 장로들은 빌립보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The Epistles of Dionysius of Corinth - “to the church that sojourns(παροικέω) at Gortyna, together with the other perishes(παροικία) of Crete”(고티나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교회에게, 그리고 그레데의 나그네 교구들에게)

 

본서가 말하는 ‘나그네’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세상 사람들과 사는 방식이 다르다. 품고 있는 가치관과 문화가 다르다. 시간, 재정 사용,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영어로 Stranger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 낯선 자 라는 말이다. 세상이 낯설어 하는 사람, 세상이 낯선 사람이다. 

 

다른 하나, 하여 본서의 ‘나그네’는 이 세상이 당연히 불편하고, 힘들다. 본서가 말하는 ‘나그네’는 다르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고 살아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땅은 내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게 쉽지 않은, 돌아 갈 집이 따로 있는 사람, 으로서 우린 ‘나그네’다.

 

둘, 우리는 ‘선택 받은 자’(1:2)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1:2a)

 

성부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성자 예수님의 피뿌린 순종과 성령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신, 삼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전적 사랑으로 우리(나)는 ‘선택 받은 자’이다.

 

나그네,지만, 선택 받은 자인 우리는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다. 

 

마트에 가서 계산대를 통과한 후 카터에 실린 물건은 내가 돈을 지불하고 산 것이기에 내가 끝까지 지킨다. 그 아들의 피 값으로 사신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그날까지 끝까지 지키신다.

 

셋, ‘나그네’요 동시에 ‘선택 받은 자’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은혜와 평강을 힘입어 살아야 한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1:2b)

 

베드로와 바울은 그 서신서 모두에 ‘은혜와 평강’을 비는 인사로 시작한다.

 

인삿말이 나라와 민족 별로 다르다.

 

로마인은 카이레인(χαιρειν;당신에게 기쁨이 있기를)이라고 인사한다. 유대인은 샬롬(שלום;평안)을 빈다. 그러나 베드로와바울 사도는 서신서에서 은혜와 평강을 비는 인삿말을 교회와 성도들에게 건네고 있다.

 

은혜가 있어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은혜가 있어야 평안이 있기 때문이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본서에 나타난 ‘은혜’

1:10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벧전1:10)

 

1:1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나타날 영원한 구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1:13)

 

2:19 아름다우나(헬;은혜) 고난 중에 인내할 수 있는 것도 은혜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2:19)

 

4:10 은사가 은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5:5 겸손한 자가 받을 상도 은혜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5:12 하나님의 참된 은혜를 증거하기 위해 베드로 사도는 본서를 썼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벧전5:12)

 

본서는 은혜의 서신, 은혜의 신학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은혜와 평강이 보통으로 있어서는 안 되고, 더욱 많을지어다, 라고 베드로 사고는 권면하고 있다.

 

왜 베드로 사도는 유독 은혜를 강조했을까? 그 이유는 그만이 주께로부터 받은 3가지

선물 때문이다.

 

1.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가장 친밀하게 대해 주셨기 때문이다. 늘 그를 데리고 다니셨다. 변화산, 겟세마네 동산 등등.

2.그 은혜로 배신에 대한 용서를 받았기에.(요21:)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다.

3.반석이라는 직분을 그가 얻었기에,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주께서 예루살렘, 사마리아, 이방(땅끝) 교회를 세우셨다.

 

톨스토이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사도 바울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믿음으로

사도 베드로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은혜로

 

넷, 거듭남(1:3~12)

베드로 사도가 밝힌 거듭남의 비밀

 

1.거듭남의 근거

아버자 하나님의 <긍휼>, 아들 예수님의 <부활>, 성령님의 <말씀>

 

긍휼-헤세드(히),엘레오스(헬) 불쌍히 여기심. 수도사들의 한 가지 기도 “주 예수님 자비(헤세드)를 베푸소서”

 

2.거듭남의 목적

거듭남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은 <산소망>(3절), <유업>(4절), 그리고 <구원>(5절)이다

 

죽은 소망-이 세상에서 시작하여 이 세상에서 끝나는, 이 세상의 소망

 

산소망=유업=구원

 

유업이란, 원의가 ‘제비를 뽑다’는 의미. 여호수아 정복 전쟁 시 땅 분배에서 유래. 약속의 땅 영원한 예표. 신약에서는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곧 영생임

 

3.거듭남의 증거

‘확실함’(δοκίμιον)은 영어로 말하면, genuineness을 뜻하는데, ‘확실하고 진정한 믿음’을 의미한다(7절). 그래서 믿음의 확실함은 믿음의 진정성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원래 ‘시험’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시련을 통해 믿음의 확실함이 드러난다.

 

(설교자를 위한 베드로전서 이해 1)

 

2019.04.29(월) 서울횃불회 목회자 세미나 강의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