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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9: 방글라데시 후기 서경배

2019.07.18 09:09

관리자 조회 수:27

[오래된 기행문]

 

 몇일 전 비자 갱신을 위해 한국에 오신 방글라데시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잊혀져가던 방글라데시에서의 기억들이 다시 소환되고 있음을 느꼈다. 사실 방글라데시 선교 여행 직후에 여행의 소감을 남기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선교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된 듯, 방글라에시에서의 기억들은 짙은 안개에 쌓여 쉽게 걷히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선교사님과 재회하고, 한결 가벼워진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방글라데시의 기억이 고유한 빛과 색깔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방글라데시 선교 여행은 정말 우연에서 출발했다. 어느 부분에서도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 없었다. 선교사님과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선교비를 후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더 조이 유니온’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활동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시작은 가벼운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어쩌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보다도 더 가벼운 마음, 솔직히 비행기 타고 가볍게 휴가를 가는 듯한 얄팍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함께 동행하는 목사님들과 후원하는 ‘더 조이 유니온’ 임원들의 진지함에서 부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보내는 이들의 헌신과 분주함에 힘입어 점점 내 마음도 짧은 선교 여행을 위한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날아가도 시간이 줄지 않는 대신 체력이 고갈되는 게, 본초자오선을 거슬러 여행을 한다는 것처럼 피곤한 일은 없는 것 같다. 태국까지의 비행과 8시간의 기다림 그리고 다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까지, 어깨에 두른 백 팩보다 더 무거운 피곤을 어깨에 메고 도착한 방글라데시와의 첫 대면은 당황스러움 자체였다. 이미그레이션 과정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까다롭웠다.

 

 그렇게 힘겨운 과정을 마치고 첫발을 내딛게 된 방글라데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었다. 흡사 시골 장터와 다름없는 생경한 느낌의 공항 주차장을 빠져 나오자, 구겨진 자동차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엉킨 도로는 고온다습한 공기만큼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수도 다카에서 선교지까지 8시간 동안 우리는 도로 위에서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차선이 있다는 것, 넘지 말아야 할 선과 누군가를 멈추게 하는 신호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안전장치인지를 방글라데시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 나는 눈으로 확인하는 모든 광경을 의심했다. 복잡하게 엉킨 도로와 열악한 숙식 환경, 그리고 라마단을 지키며 까칠해진 무슬림 운전기사까지 흑백 무성 영화를 보는 듯한 난해함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지만 이 난해한 상황 속에서 뜻밖의 장면이 있었다면, 이 모든 상황에서 친절함을 잃지 않고 고고하게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님들의 헌신이었다. 총회 파송 선교사님들이 어느 지역의 선교사님들보다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각자의 은사와 재능을 따라 팀으로 사역하고 있었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분들이 분명할텐데, 그 힘겨운 과정들을 동행하면서 끝까지 지혜롭고 친절하며 열정적이셨던 선교사님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분들의 지혜와 친절함에 격려와 도전을 받아 마지막까지 방글라데시 선교 사역을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방글라데시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이 있다면 바울의 열정을 닮은 선교사님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목회의 현장에서 복잡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과감없이 감정을 드러내곤 했던 내 자신에게 잔잔하지만 따끔한 교훈이 되었다. 

 

 그렇게 복잡하고 긴 여정을 거쳐 도착한 선교지에서, 우리는 태풍이 훓고 지나간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낯설은 곳에서 손에 익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고국에서 값비싼 댓가를 지불한 성도들의 마음을 대신하고자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였다. 그 덕분에 게으른 현지인들까지 힘을 더해 낡은 교회의 주방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작업에 동참 했다. 그리고 어설프지만 부지런한 움직임들을 통해 선교지의 더 많은 필요들이 채워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잊을 수 없는 현지인 목사님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교회와 사택도 태풍에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그는 자기 교회에도 도움을 줄 것을 선교사님에게 집요하게 요구했다. 난처한 선교사님들이 거듭 자제할 것을 요구하자 마침내 우리에게 직접 협상을 시도해 왔다. 그는 망고나무에 올라 다 익지 않은 열매를 따서 채를 썰어 소금을 뿌려 건냈다. 먹을 것이 별로 없는 그곳에서 좋은 간식거리라고 한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서 처음으로 경험한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결국 우리는 후에 회의를 거쳐 그 교회 주방도 고쳐주기로 했다. 역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열정을 통해 소유하고 갈망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가 열정의 방향만 제대로 찾으면 그 땅의 잃어버린 영혼들이 천국이라는 보화를 발견하게 되리라 기대가 되었다.   

 

 방글라데시 선교 여행의 후기를 묻는 분들이 건내는 첫 번째 물음은 어김없이 “진짜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인가?”라는 것이다. 나 또한 방글라데시에서 선교사님들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 그랬다. “과연 그럴까요?” 뜻밖에 되돌아 온 의문에는 회의적이란 속뜻이 담겨져 있었다. 그들은 그냥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일종의 체념이다. 체념과 행복이 어느 면에서 닮은꼴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해석과는 행복한 삶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말투에는 언제나 짜증이 묻어나고 눈빛에는 여유가 없었다. 길가에 쌓인 새까만 쓰레기 더미를 뒤적이는 초라한 그들의 모습에서는 절망감이 읽혀졌다. 달리는 기차의 지붕 위에 걸터앉은 이들의 위태로운 모습이 무질서와 위험에 노출된 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감동 없는 움직임 속에서 어떤 기대나 소망도 읽을 수 없었다. ‘행복지수 1위’라는 말보다 ‘체념지수 1위’라는 말이 훨씬 더 어울리는 광경들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님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그 단단한 체념의 벽을 부수고, 부드럽고 순한 살과 같은 꿈을 심어주는 사역이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방글라데시 선교 여행을 통해 느낀 진짜 행복은 소유의 힘과 나눔의 기쁨이었다. 우리는 가진 것을 나눔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꼈고,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낯선 환경에서 평생에 해보지 못한 수고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나눌 수 있는 기쁨이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소유가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선교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새삼스레 느꼈다. ‘더 조이 유니온’이 그런 힘과 기쁨을 소유하고 나누는 모임이 아닌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 더 풍성해지고, 강해진 힘이 경계를 부수고 울타리를 넘어 방글라데시까지 미친 것이라고 믿는다. 

 

 더하여 나는 방글라데시에 도착하는 순간 일상에서 잃어버렸던 감사를 발견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다 감사하고 감사한 것이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지만, 불만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어김없이 스마트폰 사진첩에서 방글라데시 사진을 뒤적인다. 그러면 금새 감사가 돌아온다. 어쩌면 선교 여행을 통해 개인적으로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귀한 섬김의 시간에 동참하게 하신 하나님과 더 조이 유니온 그리고 힘겨운 일주일을 동행하며 땀과 수고를 같이 나눈 선교팀 목사님들에게도 다시금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