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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4:베드로후서 권해생

2019.10.27 20:44

관리자 조회 수:85

설교자를 위한 베드로후서 이해

권해생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역자의 무기: 말씀+기도/ 손홍민 선수가 유능한 이유 양발 자유자재 슛팅

 

[성경 해석 시 Tip]

1) 성경 외 자료를 통해서

●로마서의 배경 예: 거기서 그는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다. 아굴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 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다. 바울은 그들을 찾아갔는데

 

배경설명

: 행18:1~2 “글라우디오가(칙령)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다수의 유대교와 소수의 이방 유대교가 있었다. 추방 후 돌아와서 이방 유대교와 돌아온 유대교와의 주도권 충돌이 발생한다.

. 그도 전임황제들과 마찬가지로 제국내의 소수민족들에게 일정 정도의 자유를 허락하는 포용정책을 폈다. 

  

유대인들은 로마나 알렉산드리아에서 비교적 자유를 누렸고 특히 신앙과 관습의 유지에는 거의 애로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천하를 어지럽히는 염병, 즉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전하는 이들로 인하여 유대인 공동체뿐 아니라 유대인과 로마인, 유대인과 헬라인 간의 갈등과 충돌을 심하게 일으켰던 것이다. 황제는 첫 단계로 충돌을 자제할 것을 권하다 여의치 않으니 집회를 금지하게 되고 그마저 별무효과이니 아주 추방명령을 내리게 된 것이다. 

  

로마의 사가 수에토리우스는 “이 추방령은 크레스투스에 의해 촉발된 유대인들의 계속되는 소란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크레스투스를 크리스투스의 오자(誤字)로 보면 추방령의 원인이 기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성경에서 다른 성경을 보고 안다.

예) 영적 전쟁 강조하는 성경: 에베소서 2장과 사도행전을 같이 봐야한다.

 이유: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이해 할 수 있다. 아데비신전이 유행하면서 주술문화(점치고 무당 부르는 것이 일상, 귀신이 능력이 강하게 나타남) 이 성행했다.

 

 

3) 거울보기-> 성경 본문 자체에 교회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예: 베드로후서

고후: 1:3절부터 바울이 특이한 말 언급->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11절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이 고난 당하는 이유를 설명(거울보기 의 예)

1) 고난 받는 사람을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  2) 9절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는 인사 하자 마자 자기가 고난 당하는 이유를 변호하고 있을 정도로 마음이 매우 급했다. 바울의 복음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바울이 떠난 사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사도바울이 정말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가 있어야지? 걸핏하면 매 맞고 쫓겨나고 잘 때 없어 노숙하고 강도 만나고 돈 뺏기고 옷 빼기니 맨날 고생만 하는데 우리가 그의 말씀을 배울 필요가 있겠냐? 하고 고린도교인들을 의심하게 하게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몸도 건강하고 사업이 잘 되던지 사람에게 환대를 받던지 해야지.. 이런 사람이 복음 전하고 말씀 전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교인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  

1. 베드로후서의 배경과 기록 목적

: 베드로후서 수신자들에게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는 거짓 교사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고, 최후의 심판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현재를 즐기고 이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가르쳤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가르침이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를 깨우치고 바른 가르침을 알려주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2. 베드로후서의 구조

(1)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약속1: 12~21)

(2)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2:1~22)

(3)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약속/ 강조

3. 베드로후서 핵심 주제

(1)하나님의 선물

; 서론 부분에서 베드로는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어떠한 선물을 받은 자인지를 설명한다. 성도는 그 선물을 따라 믿고 열매 맺는 자라는 것을 밝히 선언한다.  기적을 보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요11:45-46)

1 보배로운 믿음: (1: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

2 생명과 경건에 속한 능력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1:3)  

성령으로 나의 몸의 행실을 죽인다. 어떻게? 기도해야지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해서도 아닌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생명과 경건의 능력이란 경건한 삶을 능력으로 주셨다. 내 힘이 아니므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3 약속을 받음: 새 하늘과 새 땅(예수님이 재림함으로 주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1:4)

신성한 성품: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된다

-> 덕(도덕적으로 선한 삶)- 지식(하나님과 아들을 더 알아가는 것)- 절제 - 인내(시련 속에서 참는 것)-경건(하나님과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형제우애- 사랑

 

(2) 사도의 유언

13~14절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몸을 장막이라 비유하며 임박한 죽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베드로후서는 죽음을 직감한 베드로가 성도들을 향하여 쓴 유언과 같은 편지이다. 본문에는 ‘생각나게 하다’라는 말이 계속 등장한다.

11.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2.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3.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벧후 1장)

14.  

1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6.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7.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베드로,야고보,요한이 그의(예수님) 능력과 강림(재림)하심을 보았다. 라는 것을 간증함.  

1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간증하면서 유언을 남겨야 한다.

2 말씀으로 유언을 남긴다.

16.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17.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벧후 1: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 유언을 힘 쓴다. 즉 믿음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주는데 힘쓴다

➔ 내가 믿음을 따라 경건한 삶을 사는 것에 힘써야 한다.

Jonathan Syndrome 기독교 교육학 믿음이 3대를 넘어가기 힘들다.

삿18: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 설명 ★

디모데후서 3:14-4:5

여러분 혹시 요나단 신드롬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요나단 신드롬이란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는 일에 실패해서 영적인 대가 끊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이요 다윗의 진정한 친구였던 요나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손자 요나단을 말합니다.

요나단 신드롬은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 우상 숭배의 진원이 되어 자신과 가문과 민족을 무너지게 만든 슬픈 역사를 보고 파이디온 선교회 대표이신 양승헌 목사님께서 만드신 용어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어떤 인물입니까? 구약의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세의 가문이 요나단의 대에 와서 영적 암흑의 리더로 등장합니다. 일개 단 지파의 사설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위한 제사를 주관하는 사제로 전락했습니다. 인디펜던트 선데이지는 "영국이 앞으로 40년 후에는 기독교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바로 요나단 신드롬의 영향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영국 이야기,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요 저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본문은 4.3,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이 심각한 질병은 오늘날 많은 가정과 교회와 사회 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이 신드롬에서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성경공부를 지겨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식상하고 교회를 시시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유아부에서 고등부까지 다음 세대의 출석률이 장년 예배 출석률의 절반이 넘는 교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도를 하려고 아파트 문을 두드리면 문을 안 열어줍니다. 이제는 교회주일학교가 더 이상 전도의 통로가 아닙니다. 심하게 말하면 지금 교회주일학교는 믿는 자녀들을 돌보는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교육은 그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침몰하는 배와 같습니다.

 

"주일학교는 현대인들이 시간을 투자하면서 기대할 만한, 수준 높은 교육과 활동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어떤 연구소는 말했습니다 (조지바나 연구원).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까지 말합니다.

"가정 생활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주일학교는 골동품이 되어가고 있다"(로버트린, 릴리 재단)

학생들은 말합니다. "그저 선생님은 애기하고 우리는 앉아 있는다" (브라이언  초교 3년)

이것이 현실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교사주일에 그 동안 수고하신 선생님들의 노고에 찬물을 끼 얹는 것 같지만 그래도 현실은 현실입니다.

 

요즘은 여러분 세대처럼 핍박을 받으며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세상의 문화와 오락이 더 흥미롭고 호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교인들 자녀들도 다 나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30년 후에는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1000명이면 2030년 후에 500명으로 줄어든다는 계산입니다.

 

특단의 조치와 노력이 없는 한 30년 뒤, 한국교회의 성도 수는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을 예고해 주는 이 급박한 현실 상황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요나단 신드롬에 대한 확실한 치료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울 건강하고 자격 있는 훌륭한 교사와 지도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교사의 근본을 부모로 보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영향력 있고 중요한 교사는 바로 가정의 부모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유다에 이르는 가계의 정통성은 바로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게 됩니다. 아버지의 권한과 역할과 기능이 얼마나 중요하고 막중한지를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삭의 장남 에서는 장자의 축복권을 가볍게 생각하다가 정작 아버지가 동생 야곱에게 축복을 내리자 땅을 치며 통곡하였지만 이미 아버지로부터 주어진 축복을 되돌릴 길이 없었습니다.

구약성경 히브리인들의 관점에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였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는 자녀들을 주의 말씀과 교훈으로 양육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모든 기독교교육은 가장 기본적으로 부모님을 통해서 가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신 목적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에서 기독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잘 안 됩니다.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교회에게만 떠맡깁니다.

그러나 온전한 신앙교육은 교회교육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반쪽 짜리 신앙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교회에만 맡기시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가정 모두의 책임 하에 두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 시간 교육으로 하나님의 세대로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세상의 학교교육을 위해서도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과 열정을 쏟아야 하는데, 고작 한 두 시간으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신앙인격과 삶의 지혜를 겸비한 하나님의 세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 선생님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을 통해 서는 온전한 의미의 인격과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식과 정보를 얻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는 교육은 가정과 교회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가 이 사역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정과 인내를 가지고 희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교육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정에서도 동일한 헌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정은 교회에서 배운 것을 훈련하고 실천하는 장입니다.

"제자 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기 위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모든 족속에게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기 때문입니다."(딤후 3.16,17)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모든 삶을 인도해 줍니다. 진리로 비추어 줍니다.

 여기서 "알았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알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전인격적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삶을 인도하는 유일한 길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성경지식은 우리를 온전케 할 수 없지만, 성경만이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성경의 주제는 구원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참 생명과 참 소망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성경만이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울 분들은 여러분에게 맡겨진 세대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믿음의 주를 의지하도록 지도하고 교훈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사된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유능하고 훌륭한 교사는 역시 예수님이십니다. 3년 6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주님은 12제자를 택하시고, 그들과 동거하시고, 가르치시고, 모범을 보여주시고, 그대로 하도록 시키시고, 그것을 평가해주시고, 다시금 보내셔서 당신이 하시던 일을 계속하도록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양육해서 그들로 하여금 또 다른 제자를 양육하게 하시고, 양육된 자들은 또 다른 사람을 양육하게 하셔서 당신이 하셨던 제자 삼는 사역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만드는 영적인 재 생산의 삶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사역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 일을 위해 사셨으며, 마침내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저와 여러분이 계속하기를 원하십니다. 부탁, 아니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

가르침의 사역은 존귀한 것입니다. 특별히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는 일은 가장 흠모할 만한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는 사역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미래가 거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영혼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하다고 고백하면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주의 이름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세대로 세워지는 것에는 왜 관심이 없는 것입니까?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는데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앞에서 언급한 단 지파의 사설 제사장으로 우상 숭배에 앞장섰던 모세의 후손 요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삼상 2.12-17에 의하면 그들은 망나니였습니다. 불량자였습니다. 제사장의 아들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환을 시켜서 자기들 제사장 몫의 고기를 주님께 제사 드리기도 전에 강제로 가져왔습니다. 삶기도 전에 힘으로 빼앗아 왔습니다.

성경은 엘리 제사장 아들들이 하나님의 예배를 멸시하는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그들의 아버지 엘리는 아들들을 훈계할 때도 미혼적이었습니다.

(22-25절에 보면) 엘리 제사장은 매우 늙었는데 아들들은 계속해서 악행하며 심지어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죄까지 범했습니다.

엘리는 아들들에게 타이릅니다. 그들의 악행을 모든 백성에게서 들었지만 단지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다고만 말하지 따끔하게 야단치지 않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때는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경(32-34절)은 그 가정의 비극적인 종말을 보여줍니다.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은 한 날에 죽을 것이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패배와 하나님의 궤를 빼앗김과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서 죽습니다.

이것이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지 못한 가정의 결국입니다.

반대로 예수님 이후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는데 성공한 대표적인 예는 바울과 디모데입니다. 그들은 초대교회에서 가장 유능한 지도자였습니다. 디모데는 젊고 훌륭한 지도자로 후에 바울의 뒤를 잊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디모데는 "거짓 없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먼저 가정에서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 의해서 거짓 없는 믿음을 지닌 하나님의 세대로 세워졌습니다(딤후 1.5).

그리고 우리는 딤후 2.2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초대교회의 지도력을 지닌 하나님의 세대로 세웠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은 다음 세대인 디모데를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세대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울 것을 명령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 세대인 충성된 사람들을 하나님의 세대로 세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충성된 사람들은 다음 세대인 또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세대로 세웠습니다.

그 결과 다음 세대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세대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3) 그리스도의 재림

8절 첫 번 째 반론: 하나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절 예수님은 한 명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시기를 원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

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절 예수님은 예고 없이 갑자기 오신다. 그러므로 깨어서 재림을 준비하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심판한 3가지 예를 들면서

1.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2.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3.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4) 거짓 교사들

- 베드로후서에 나오는 거짓 교사들은 한마디로 “종말론적 회의론”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으며, 최후 심판을 부정한다.

① 성경을 사람의 작품으로 본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벧후1:20~21)

 

②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는다.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4)

 

③ 그들은 심판을 믿지 않는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2장 거짓 선지자들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