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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3 : <기생충>

2020.02.16 09:19

관리자 조회 수:7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작품상 포함 4관왕이 되었다.
비영어권 영화 첫 작품상 수상작이란다.
축하한다.
허나, 백색 우월주의자들의 구미에 맞는 작품이었단 말이 아닐까?
지난 해, 나의 <기생충> 감상평을 다시 읽어본다.
행여, 내 시각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아님, 내가 정곡을 찔렀던 걸까?
어떤 관점에서 백호주의자에 못지 않은 오스카가 <기생충> 손을 들어줬을까?
그 속내가 궁금하다.
2020.02.10(월)

ㅠㅠ
<기생충> 보지 마라

언젠가 내가 그 누구에게 카카오톡 선물을 보냈더니, 그가 나에게 영화 관람권을 답례로 보내왔었다.

그래서 또 다른 그 누구에게 패스했는데, 다시 내게 돌아 왔다. 하여,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오다가, 문드러져 녹아버릴 것 같아, 간만에 영화관엘 갔다.

목포 산産인 내가 <목포 영웅>을 안 본다면, 일종의 연고 배반이라고 생각 되어 예고 된 시간에 맞추어 영화관엘 갔더니, 웬걸 인터넷 검색했던 영화관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시간대에 맞추어
<기생충>을 봤다.

한 마디로, 심히 불편했다.

서구인들이 한국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준 이유가 오리엔텔리즘(Orientalism)에 있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착한 부자
부자니까 착한 이들의
눈으로 본
영화 <기생충>은
자신들이 쌓은 부가 청부淸富였음을
식민지 출신 감독이
제대로 연출해 냈기 때문일 거다.

선善인 부자 숙주에 붙어 기생하는 사악한 가난뱅이들. 부자 서구와 가난한 동구나 제3세계를 선악 이분법으로 나눈 영상이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 모던 하지도 않다.

가난을 극복하는 지름길이
단지 기만과 술수와 음해 공작 뿐이라는
오해를
젊은이들에게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게,
이 영화가 지닌 위험성이다.

허나,
우리는 비록 가난했어도 청빈淸貧을 삶의 제일가는 덕목을 삼았었고, 돈을 정당하게 벌고자 했었고, 정당한 노동을 남다른 열심으로 밤낮 없이 해왔던 백의 민족이라는 자긍심에 찬물을 끼얹는 영화였다.

예술을 가장한
금상을 빙자한

예술이 될만한 역설(반전)도, 메타포도 없는 그냥 기생충이다.

그 허구가 우리네 도덕적 현실도 아니고,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각성제도 아니다.

불쾌했다.

자신들의
치부를 정당화해 준 영화에 대상을 안겨주며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을
오리엔탈리스트의
거드름이 오버랩 되어 왔다.

그 상은 거절했어야 했다.

밤샘 야근이 기본이었고, 여공들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얻지 못한 채, 양계장의 난용종 암탉처럼 공산품 생산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