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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주일) 예배 자료  

 

주님의 위로와 보호하심이 넘치길 기도드립니다.

피치 못해, 성전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모든 성도님들께 드립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찬송 : 276장 510장(새) 하나님의 진리 등대

 

하나님의 진리 등대 길이 길이 빛나니 우리들도 등대 되어 주의 사랑 비추세

죄의 밤은 깊어가고 성난 물결 설렌다 어디 불빛 없는가고 찾는 무리 많구나

너의 등불 돋우어라 거친 바다 비춰라 빛을 찾아 헤매는 이 생명선에 건져라 

 

후  렴: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물에 빠져 헤매는 이 건져 내어 살리세

 

성경 : 마가복음 3장 1~6절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말씀/ 진리와 비진리 사이에서- 규칙보다 더 중요한 것  

 

지난 목요일 동사무소에 가서 마스크를 받아왔습니다. 서울시가 65세 이상 된 시민들에게 마스크 5매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공지를 보고, 아내와 함께 동사무소엘 다녀왔습니다. 마침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께서 “마스크로 감염 최소화 가능하다,” "나도 모르게 확진자 접촉 가능..마스크 한 장 위력 대단"하다는 사실을 실례를 들어 강조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 내용은, "광주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일행 세 명과 한 시간 이상 같은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지만 모두 마스크를 꼼꼼히 착용해 추가 감염이 없었고, 수원의 한 교회에서는 확진자 세 명이 여러 번에 걸쳐 교회를 방문했지만 교회의 강력한 마스크 조치로 9천여 명의 교인 중 추가 감염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례였습니다. 덧붙여 그는 최근 지역감염 확진자가 줄어든 상황에 대해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확산세에 있지만, 국내는 안정세에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하고,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 국민들께서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준수해주신 덕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Mask for Safety!!입니다. 

 

저도 이젠 마스크 쓰는 게, 몸에 밴듯하다. 안 쓰면 허전하기 까지 한 걸 보면, 체질화 되어 가는 가 봅니다. 늘 잔기침으로 봄을 앓던 아내가 마스크 덕에 봄을 잘 보냈다고도 했습니다. 덕분에. 우리 모두 마스크 한 장이 새롭던 시절이, 과거가 아니라 추억이 됐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 케어. 질병본부.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이, 위세가 되도록 만들어 준,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뜨끔한 기사도 대합니다.  

 

강남의 어느 큰 교회 부목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에서 지난 7월 10일 자로 발령된 총리의 지시, 교회 내에서의 안전규칙 강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는 총리의 지시를 교회 탄압이라고 단정하고 그 지시를 거부하며 교회 내 소모임을 계속해 나아갈 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자신이 총리 지시 거부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잡혀가든, 벌금을 물든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간 큰 부목사가 총리 지시 거부했던 바로 다음 주일, 그 소속 교회에 확진자가 공예배에 참석했다 하여, 그 교회가 오는 28일까지 교회 폐쇄 명령을 받았다는, 씁쓸한 기사를 대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큰 교회 <간 큰>부목사가 코로나19 관련 총리 지시를 거부하며, 잡아가든, 벌금을부과하든, 자기는 소모임을 강행하겠다고 호언했다. 헌데, 정작 확진자 경유로 오는 28일까지, 그 교회 폐쇄했다는 간 졸아든 보도를 듣는다. -총리 지시보다 무서운 게 코로나19구나-  <비진리를 진리연>하다가, 한국교회가 놀림을 받고 있다. 간 좀 줄이자, 간. 버림받기 전에. 

 

이상과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놨더니, 두어 시간 후에 이런 글이 뉴욕에서 메신저로 들어왔습니다.

 

ㅇㅇㅇㅇㅇㅇㅇ

warning from NY

 

목사님, 건강하게 계시니 다행입니다. "간 큰 부목사의 기사"를 읽고 문자를 보냅니다. 아직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또한 mutation을 하고, 감염되어 아픈사람들의 사연은 아주 무섭게 아프고, 살아 남은 사람들 중에는 바이러스가 attack한 장기들의 손상이 아주 심하다고 합니다. 죽은 분들의 증상도 장기들을 모두 손실하고, 노인분들에게는 delusion, 넘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었다는 과학자들의 연구 발표입니다. 

 

저도 사랑하는 저의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넘어지셨는데... 평소에 신장이 약하셨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용케도 신장을 망가 뜨려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신지 일주일 만에 평소에 그리워 하시던 예수님 품안으로 떠나셨습니다. Holy Saturday 새벽에...

 

한국은 잘 처리했다고 방심하는 분들 (간 큰사람들)이 있는것 같은데 절대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Airborne 으로 전염되기 때문에... 

 

이곳 PC(USA)와 성공회는 계속해서 Internet Stream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학회 Conference meetings 모두 cancel 입니다. 계속해서 Stay safe and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ㅇㅇㅇㅇㅇㅇㅇ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 사태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나의 친지 가족 중이 이런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받고 보니, 많이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그리고 적잖이 힘들고, 헷갈리는 것은, 우리 한국교회가 각기 다른 목소리를 진리인 양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리 수호 운운하며, 사실은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

 

오늘 본문 마가복음 3장 1~6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안식일, 한 손 마른 사람 치유’에 관한 기사입니다.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서, 같은 공관복음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마 12:9-14; 눅 6:6-11)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성경 본문을 다같이 읽어 봅시다.

 

마가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이 본문 말씀에서 설교 제목을 ‘진리와 비진리 사이에서- 규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뽑아냈습니다.  

 

어떤 사람을 치유하는 일은 바리새인들의 견해에 의하면 일종의 의술적 구제행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안식일에는 오직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허용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14절에 의하면, 에수님께서 안식일에 등 굽은 여자를 고쳐주시자, 회당장이 이렇게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눅13:1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13:15,16).”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8).”

 

옳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완전한 율법을 그 피와 몸으로 다 이루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사랑인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피를 믿는 우리의 믿음에 율법의 완성인 그 사랑의 대속, 즉 완전한 구원이 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율법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영 죽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값없이 그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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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안식일 회당에서 한 손 마른 병자 앞에 예수님이 서시자, 사람들이 예수를 율법 폐기자로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예의 주시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한 저의를 아시고, 탄식하시고, 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병들어, 죽어가는 자에게 흘러가는 것을, 유대인들이 그들의 전통 안식일 규례로 막아서는 우매함이, 진리이신 예수님 눈에는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일개 규칙을 진리연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행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교리, 교권주의자의 교활함에 분노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여,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바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임을, 상처를 입은 생명을 돕지 않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은 것임을, 그 규칙주의자들에게 몸소 일깨워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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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설파하십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막3:4).”

 

유대교 교사들은 대체로, 어떤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에는 안식일에 자비를 베푸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이 경우에 그 사람의 생명은 위태롭지 않았으므로, 그 바리새인의 그 반발(3:6)은, 과격하기는 하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율법의 완성자아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사람의 필요가 안식일 규칙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2: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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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후에, 박해와 죽음을 불사하고, 구세주 예수께서는 당당하게 그 사랑의 복음을 몸으로 의연하게 결행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막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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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예배당에서) 주일 성수를 하지 않아도 좋은 게 아닙니다.

 

불붙은 장작이 혼자 잘 탈 수 없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일이 개인 신앙의 성장이나, 교회 부흥이나, 성도의 교제나, 복음 전파의 효율성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구별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로서 상호지지 격려하는데 있어서 최선입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122:1).”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이상과 같은 고백으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주의 전에서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 전염병이 만연한 사태 속에서, 우리는 성전을 사모하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신앙인의 의무를 ‘보다 더 지혜로운 방식’으로 행해야 마땅합니다. 이 일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비진리에 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 비본질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고 있는 이들도 사랑하시며, 자연 만물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날카로운 시점에,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사도의 이 권면을 깊이 새겨듣고,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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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다음 말씀을 정독하면서, 그 뜻을 깊이 묵상하고, 실천합시다.

베드로후서 1장 4~11절입니다.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아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상식)을, 지식(상식) 위에 절제를

그 <절제>를

인내로, 말씀 앞에 서서 기도로 사는 경건 생활로, 하여, 

이웃 사랑을, 그 사랑을 완성하라 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크리스천들이  

복음적으로 관통하는, 성령의 주문은, ‘절제’입니다.

성령께서 공급해주시는 그 인내로 완성할 수 있는 ‘절제’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입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5:22~2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