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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9 : 정인이

2021.01.15 15:06

관리자 조회 수:13

정인이 소식을 어젯밤에서야 접했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내 지식과 경험, 오감을 너머 육감 아니 영감까지
총동원했으나.
왜? 그랬는지,
전혀 알 길이 없어서 밤을 지새웠다.
 
미스터리극이다.
입양 조건에 합한 복음주의자, 허물 없는 영아, 거듭된 죽음에 이르게 한 구타, 정서적 방임
그런 영아를 그런 양부모가
왜?
그 복선과 반전이 초유의 미스터리극이다.
왜?
단지 천진무구하게 방실대는 영아의 미소 탓?
웃었다고도 때려 죽인 뫼르소?
아니다, 모르겠다. 알 길이 없다.
 
그래, 답이 있다.
그들이 사람이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
 
너무 나이브한 일반화가 아닌가?
알 수 없다. 도시.
 
그리고
사람인 그들이,
아니 사람인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진실 하나,
 
시간의 본질이란, 드러나지 않는 복심이란 없음을,
시간의 본질이란, 인내요, 희생이요, 헌신이요, 사랑임을 알지 못한
우리들에게,
오늘 2021.01.05(화)도 안 나는 무감정 상태(apathetic) 상태에 빠져 있는 ,
나도 그 일원인 이 정서 박탈된 세상에,
 
16개월 짜리 영아 정인이가
271일 간 꼼짝 없이 어미에게 맞아 죽어가며,
멍투성이가 되어 일깨워 준 시간의 본질을 곱씹어 보고 있다.
.
 
육아는 시간의 본질을 아는 데에 있다.
입양은 더더욱 시간의 본질을 깊이 인내하며, 알아가는 데 있다.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시간의 본질을 알라.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세월을 아끼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7).”
 
이 말씀 적용이 너무 상투적인가?
매사에 설교로만 응대하여 드는,
사람이, 바로 내가?
 
2021.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