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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4: 세사르 바예호-일용할 양식

2022.07.30 18:43

관리자 조회 수:28

4574

 

페루산 애플 망고는 달달하지 않다. 미각을 잃은 혓바닥 같다. 찐 단맛에 혹했던 사람들은 속았다고 아우성이란다. 그래, 애플 망고는 맛이 없다. 쌉싸래하기까지 하다. 

  

어제 날아든 두 개의 택배는 모두 페루 산이다. 애플 망고 캔이 하나였고, 페루 안데스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의 시집이 다른 하나였다. 

 

<죽은 종>, <죽은 형에게>, <검은 전령으로> 연이어진다. 시집 제목도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이다.  

 

애플 망고는 그 효능이 대단하다. 바예호는 진정한 시혼을 지닌 영혼이다. 상실한 미각을 회복시켜 주리라 믿는다.

 

나는 신이/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아주 아픈 날. 태어난, 시인 바예호가 선사하는 그리고 여기 내 마음의 오븐에서 갓 구워낸 빵 조각이

 

2022.07.28(목)

 

일용할 양식/세사르 바예호

 

아침은 마시는 것*, 묘지의

젖은 흙은 사랑하는 이의 피 냄새

겨울 도시... 마차는 날카롭게 길을

건넌다. 계속된 굶주림을

겪은 마음이 끌고 가듯.

 

문이란 문은 모두 두드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안부를 묻고 싶다. 그리고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고

모두에게 갓 구운 빵 조각을 주고 싶다.

한 줄기 강렬한 빛이

십자가에 박힌 못을 빼내어

거룩한 두 손이

부자들의 포도밭에서 먹을 것을 꺼내오면 좋으련만.

 

아침에는 제발 눈이 떠지지 말기를!

주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내 몸의 뼈 주인은 내가 아니다.

어쩌면, 훔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이에게 할당된 것을

빼앗은 건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 대신에 다른 가난한 이가 이 커피를 마시련만.

나는 못된 도둑...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이 차가운 시간, 땅이

인간의 먼지로 변하는 서글픈 시간.

문이란 문은 모두 두드려

누구에게든 용서를 빌고 싶다.

그리고 여기 내 마음의 오븐에서 갓 구워낸

빵 조각을 건네주고 싶다.

 

* 안데스 산촌의 겨울 아침은 이슬과 서리로 시작한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아침을 마시며 산다. 

 

<일용할 양식> 전문,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