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6: 시/죽어간다는 건
2022.08.11 16:58
4596
게릴라 전을 펼치는 국토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이는 통증을 좇아
X-ray로 찍고 CT로 뒤지고 MRI로 샅샅이 훑는다
숨긴 죄가 깨알같이 드러나고 있다
두 벌 옷을 지닌 죄, 오 리만 가준 죄, 왼뺨을 돌려대지 않은 죄, 속옷만 벗어준 죄, 왼손이 알게한 죄, 일곱 번 만 용서한 죄, 소돔이 더 견디기 쉬운 죄, 끝자리에 앉지 않았던 죄,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둔 죄,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지 않은 죄,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본 죄, 자신만 구원한 죄,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죄 ∞
죄로 죽는 인생이 죽어간다는 건
옷깃만, 바람만 스쳐도 소스라치는 전신 다발성 통증같이
온몸 구석구석 숨겨놨던 죄악들이 검버섯으로 피어난다는 거
집중 폭우에 수압을 견디지 못한 맨홀 터지듯 욕설이 터져 나오고,
분별 없이 살아온 죄로 오폐수 못 가리는 추악상을 드러내게 된다는 거
더 있으니 MRI로도 적발하지 못한 은밀한 죄의식이니
죽는다는 건, 죽어간다는 건
드러난 죄들이 온몸을 헤집고 다닌다는 거
드러나지 않는 죄의식에 질식사 한다는 거
죄로 죽는 인생이 죽어간다는 건
여전히 통증이 게릴라전을 펴고 있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잡았다 싶으면 자리를 옮겨 똬리를 틀고 있다
여죄로 범벅된 내 몸뚱어리가 성한 곳이 없다
2022.08.1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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