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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따끈따끈한 보고섭니다.


우리 여섯 명의 목회자는 오늘(2월 27일), 수락산 자락 장암예향교회에서 번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산자락 인적 드문 산골 교회당에서 쥔장은 수련을 넘어 시간과의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살벌한 도시 목회에 찌든 우리네는 모처럼 그 전원교회당에서 무사한 맘으로 말씀 안의 안식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역동적이고, 화통하고, 자기희생적인 쥔장 정승일 목사님의 환대를 받으며 화롯불에 도란도란 둘러 앉아 맛난 군고구마 내음에 흠씬 취했었습니다.


거기다 더해 감사하게도, 정승갑 목사님이 등장한 것입니다.

서울 동북지역에 개척한 이후, 오늘까지, 만 8년여 외부 출입을 끊고 말씀만 대면하여 살아 온 영혼이 말씀 공동 묵상 모임에 납시었습니다.


개척 첫해, 그 일 년 동안 무려 성경 25회독을 해 냈고, 그 후 쉼 없이 말씀을 붙들며 살아 낸 세월을 그는 자평하기를 95%의 만족한 영적 삶을 살아냈다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갑자기 그 맛나던 군고구마가 맛을 잃더군요. 그 후, 성경 쓰기, 영어 성경 읽고 쓰기 등등. 하여, 영어 성경을 7번 읽어 냈고, 지금은 매일 영어 성경을 2-3시간씩 매일 들으며 말씀에 말씀을 다져 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개척한 바로 이 장암예향교회 앞을 하루에도 수차례 씩 오가면서도, 리모델링 한 교회당에 오늘 처음 방문했다며, 교회를 이곳저곳 둘러보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며, 승일목사가 과연 제 형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했기에 그가 자신의 8년여의 목회 생활을 스스로 95점이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겠나 싶어졌습니다.


그 도인(道人: ?) 정승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중앙성결교회 부목으로 시무 할 때, 10여 차례에 걸쳐 목회자 세미나를 책임 맡아 진행을 해 왔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10차례 세미나에 한 번도 빼지 않고 참석하는 모범생(?)들이 있더라면서, 그 때 말은 못했지만 그들에게 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한번 이상은 오지 마시오. 한번 들었으면 한 10년을 자신이 그 뭔가 영적 탐구를 해내어서 일가를 이루어야 되지 않겠소? 라고. 아마 그런 경험이 반면교사가 되어 그가 고시 공부하듯 독하게 말씀을 파고들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행여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그가 너무 외골수적인 인사가 아닌가 의문을 품을 이들이 계실지 모르나, 그는 당당히 군목으로, 규모 있는 교회의 부목사로 빛나는 영적 전투를 낭만적으로 치러 낸 건강한 목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개인의 신상에 대해 장황한 글을 서두에 올리는 것은 바로 그 말씀에 올인하고 있는 귀한 동역자를 오늘 우리 주님께서 우리 말씀공동묵상의 자리에 인도해 주신 것이 감사해서, 감사하며 내 스스로 각성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서두를 엽니다. 본의 아니게 자신을 노출시키게 된 정승갑목사님께 널리 양해를 구하며,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공동묵상 프로토콜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말씀에 대해 ‘듣는 지식’만 있는 이 땅의 크리스찬들에게 말씀을 일대일로 대면하게 하고자 성경 통독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정목사님 말씀처럼, 우리네 목회자들 또한 그 성도들의 귀에 달콤한 말씀만 편집해 선포함으로, 정작 말씀과 맞닥뜨리는 거룩한 자기 성찰에 실패해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가서를 듣습니다.

먼저, 우리 여섯 사람은 말씀을 한 장 씩 돌아가며 교독을 했습니다.


정*일 - 7장 6절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남자) 결국 내 눈이 변하니 세상이 화려해 진 것이 아닐까요? 포도원을 허는 여우처럼 모든 것에 불만인 사람과는 달리, 그 사랑이 나를 즐겁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성봉 목사님처럼 한손엔 성경 다른 한손을 정다이 주님의 손을 붙잡는 포즈로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오*흥 - 고교시절 보수적 교횔 다녔지요. 남녀간의 좌석 배정도 3m 이상아 되어야 했구요. 고 1 때 아가서를 처음 대했었습니다. 육감적으로 대했지만, 오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 그 예수를 이렇게 오늘 사랑할 수 있을까 의문이 내 안에 듭니다.


이*우 - 집에서 아가서를 몇 번 읽어 보고 왔습니다. 2장 6-7, 3장 5절, 8장 3-4절 말씀에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라”로 끝이 납니다. 이 내용의 종합이 5장 8절 “예루살렘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인 것 같습니다. 6장 13절 “돌아오고 돌아오라” 5장 16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라는 말씀이, 사랑하는 이에게 팔을 내어 주는 아름다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흥 - 지금도 아내에게 팔을 내 줍니까?


이*우 - 아~뇨, 팔이 저려서 ㅋ ㅋ

        6장 3절, 7장 10절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아직도 날 사랑해서 병이 나는 분이 계시는 구나. 이런 감격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흥 - 이스라엘에서는 아가서를 30세 이상의 성인들에게만 읽을 수 있게 했다는 거 아닙니까? 저도 결혼 후에야 그 의미를 다소 이해할 수 있었어요.


김*찬 - 이 나이에는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정*갑 - 수도원 역사를 좀 읽어 봤는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수도원에 대해 보는 눈과 하나님과 복음을 보는 눈과 성령을 드러나게 한 유일무이한 교황이었다고 적혀 있더군요. 수도원의 제일가는 목적이 하나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사는 것이라고.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과의 그 무엇이 방해할 수도 깨뜨릴 수도 없는 불꽃 튀는 것이 별로 잘 안 보이는 감질 맛 나는 언발란스 속에서도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 해야 하는데도, 그 아름다움만 기억하는 사랑놀이. 나와 하나님과의 밀고 당기는 실랑이. 하나님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는 투정만 부리고 있지 않은지, 그 애틋한 사랑의 현실을 즐기지도 못하고......


김*찬 - 그것이 말라기서의 투정입니다. 내가 할 만큼 했는데, 당신에게 사랑을 바칠 만큼 바쳤는데, 아까 정*일 목사님 말씀처럼 편지로만, 립 서비스하는 차원에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우리는 투정이나 부리고 있지 않은지. 내가 할 만큼 했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 4백년간이나 얼굴을 돌려 버리신 것이 아닌지?


정*갑 - 사사기에도 그런 예가 있지요. 사사기서 2장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우는 자들)에 나타난 사건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을 헐라 명하셨는데도 그들이 불순종하다가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그 이족들을 그 땅에서 쫓아 내지 않으시고, 되려 그들 옆구리의 가시 되게 하심)에 탄식하여 소리 높여 운 것 말입니다.  그래서, 40, 80년 어둠의 시대가 반복되는 것 말입니다.

  

오*흥 - 우리 부부는 매주일 믿음의 글들을 정성스럽게 적어서 통에 넣어 주일 예배시에 성도들에게 한 장씩 뽑아 가라고 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세심한 정성과 수고만치 그들이 그런 선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겁니다. 이런 그들의 심드렁한 반응을 대하면서, 우리가 수고하고 되려 우리가 시험에 들 뻔 했지요. 그래서, 아내와 다짐했지요. 우리의 사랑의 수고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에 반응하지 말자 라고 말입니다.


김*찬 - 누가 사랑 받는 이고 누가 사랑하는 이인가에 대해 정*갑 목사님께서 남자, 솔로몬이 ‘lover'이고 여자, 술람미 여인이 ’be loverd'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본서에서 저는 그 사랑 받고 있다는(be loved) 술람미 여인이 보다 더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1장 7절 하반절은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 내가 창녀처럼 훤한 대낮에 ‘얼굴 가린 자 같이 되랴“라고 반문하지만, 3장 2-4절까지에 보면 그가 성안으로 들어가 순찰하는 자에게 창녀처럼 그의 자취를 좇고 있음을 봅니다. 창녀같이 물 불 안 가리는 불같은 열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다가가는 사랑이 술람미 여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사랑의 자세라 여겨집니다. 그동안 ’lover‘인 주님께서  ’be loved‘인 나를 사랑해 주셔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수동태에서, 수동능동태로 의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가장 큰 계명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저는 이 술람미 여인의 솔로몬 사랑에서 그 모범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그 여자의 당당함, 자신감입니다. 2장 1절은 여자의 고백입니다. 나는 샤론의 수선화, 골짜기에 핀 나리 꽃이라오. 바로 이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녀는 피부가 검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당당합니다. 1장 5절에 내가 검어서 예쁘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흰 나리 꽃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런 당당한 마음, 그 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건강한 자아(마음)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네 마음을 다하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마음입니다. 병든 마음, 죄 된 마음으로는 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갑 - 고전 12장에는 더 좋은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하면서 13장에 사랑의 은사를 말합니다. 그러나 다시 14장에서는 사랑을 추구하되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라고 다시 말합니다. 무슨 일이든 자의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사랑자체가 하게, 되게, 되어지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목회하다 보면 내가 성도들에게 베푼 사랑에 그들이 감동 먹을 것 같은데, 전혀 안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랑에 그들이 이르도록 인내하며 앞장 서 나아가는 것이 목회라 여겨집니다.

 

오*흥 - 2장 16절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이 말씀이 아가서의 결론인 것 같습니다.


아멘.


이*우 - 나는 6장 3절 같은데요.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아멘

정*일 - 둘 다 똑같은 내용이네요. ㅎ ㅎ   


박*권 - 요시점에 한 말씀 드리자면, 8장 6절, 이 여자의 지독한 사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바로 이 죽음 같이 강한 지독한 사랑을 살아 내는 경지가 바로 신과의 합일 체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과연 이런 체험을 해 봤나? 17살 첫사랑 이후, 인간 이성에 대한 그 어떤 사랑의 경험도 이런 죽음같이 강한 사랑이진 못했습니다. 이 아가서가 말하는 지독한 사랑의 감이라도 잡아 보신 분 나와 보세요.


아내 들으면 섭섭하겠네, 그려 / 상관 없어요 ㅋㅋ


정*갑 - 그 동기나 원동력, 실천, 결론 등등 하나님을 위해 수고한 수고가 모두 그 사랑 아닐까요. 아내에게 쓰라면 몇 자 쓸거리도 없는 사랑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목회적 사투가 바로 그 지독한 사랑이 아닐까 싶네요.


정*일 - 우리의 그 어떤 상상력도 자기 경험을 벗어 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랑에 대해 풍부하지 못해서 그 지독한 사랑이 무엇이진 말 할 수 없네요. 삶도, 신앙도 더 풍성한 체험으로 이어졌으면......


박*권 - 은성[殷盛]하다 라는 표현을 시인 곽재구씨가 그 시어로 차용했는데, 그 뜻은 번화하고 풍성하다 라는 뜻이지요. 포구에 배가 꽉 들어 차 불빛이 풍요로운이라는 의미지요. 은성한 포구 - 풍요로움이 가슴 가득한.  과연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은성한 관계인가?


아픈 은성한 고백 한마디 늘어놓자면,

제가 남양주 2층 상가에서 첫 개척 목회를 시작했던 시기, 하루는 쌀이 떨어져 울면서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한테라도 전화 한통 올리면 당장의 필요를 채울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 밤을 꼬박 새우며 소위 철야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곤궁한 기운데 눈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리던 중, 어느 순간 내 코에서 향내가 발하는 신비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백합 향에 취해 나 죽어도 좋아, 라는 탄성처럼 내 안에서 풍겨나던 그 향내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솔로몬이 숱한 여인네 중 오직 술람미 여인만을 사랑한 그 지독한 사랑의 관계가 신과의 합일의 경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찬 -내가 검어서 예쁜 그 사랑이 하나님께서 자신을(그 아들을), 나같은 죄인을 위해 버리신 지독한 사랑이겠지요.


정*갑 - 야고보 사도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센디에고까지 4백여 킬로미터를 걸어 가 선교했다고 합니다. 그 거룩한 순례의 길을 요즘에 가톨릭 신자들이 순례한다는데, 40-50일가량 걸린답니다. 근데, 바로 그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가는 도상의 곳곳에 남창과 여창이 득실댄다는 겁니다. 그 거룩함 속에서도 문란한 인간의 성이 판치는 것인 인간 세상이라는 거죠.


김*찬 - 오늘 아가서를 개인에 적용해 봅시다.


이*우 - 사랑하면 같이 있어야 한다. 관상기도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이지요. 그 친밀한 교제를 위해 헨리 나우ㅜ엔은 영성 수업을 하루 1시간 하루고 합니다. 관상기도는 하루에 20분씩 두 번 침묵 골방기도를 요구합니다. 배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정*갑 - 저에게 사람들이 그렇게 성경을 많이 읽으니 도사가 되겠네 라고 말하지만 봐도 봐도 똑같습디다. 단지, 한 가지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면 더 순수해 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더 강해집디다.(이 성경을 읽어 어떻게 설교를 더 잘 할까가 아니라)

한 예로, 하나님을 바라라 그 도우심의 얼굴을 구하라 라는 말씀을 어느 순간 문자적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처음에는 어렴풋이 그려지다 점점 그 하나님의 얼굴이 보다 더 세밀하게 새겨지는 신비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 반복적인 통독을 통해 목회 근본이 새로워지고, 올바르게 정립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제 설교가 재미가 없는가 봐요. 그들이 저에게 종종 설교를 재밌게 해 달라고 합니다.


박*권 - 목회신학을 제 정립해야 합니다. 토목공학적 목회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성을 구체화하는 영성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오*흥 - 교회를 건축하고, 뭔가 바꿔 보려고 어떤 목회연구소를 3년여 다녔는데, 정말 목회하기가 식은 죽 먹기더군요. 그곳에서 일정 회비만 내면 모든 공 예배 설교에서부터 각종 절기 행사 자료 및 특별 프로그램 일체를 공급해 주는 겁니다. 야, 살만하다. 목회할만하다 라고 생각했지요. 근데 3년이 지난 어느 날, 제 아내가 당신 설교 이젠 정말 더 이상 못 듣겠어 그러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돌이켜 보니 목회는 쉬워졌는데, 내가 죽었더라구요. 그리고 그간 교인 삼분지 일이 나가 버린 것입니다. 지방회 서기 일 한다고, 주일 오후 예배를 지켜 본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큰 일 났다 싶어 부회장에 오르는 걸 포기하고 말았지요. 프로그램은 잘 돌아가고 교회가 뭐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결국 영적 힘을 잃었던 겁니다.


정*갑 - 저는 타인의 설교 집을 전에는 설교를 위해 봤는데, 이제는 독서를 위해 봅니다. 온갖 유명 인사들의 설교를 읽고 들으면서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들은 강단에 서기만 하면 줄줄 예수 보따리가 가 나오는데 나는 안 나오는가? 결국 목회는 내 책임이라 여기고 쪽방에서 8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중앙성결교회 부목으로 시무 할 때, 10여 차례에 걸쳐 목회자 세미나를 책임 맡아 진행을 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10차례 세미나에 한 번도 빼지 않고 참석하는 모범생(?)들이 있더란 말입니다. 그 때 말은 못했지만 그들에게 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번 이상은 오지 마시오. 한번 들었으면 한 10년을 자신이 그 뭔가 영적 탐구를 해내어서 일가를 이루어야 되지 않겠소? 라고.

그래서, 저는 개척목회 심방할 성도도 없는 자유함 속에 말씀만을 붙들고 그 자유함을 홀로 만끽하며 보냈습니다. 스스로 자평하자면 95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권 - 23년 된 우리교회 개척 맴버인 한 아무개집사가 교회를 떠날 것처럼 망설이고 있습니다. 저는 맘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교회. 나는 파송 받은 사역자. 철저한 기도로 그녀와 내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 방황하는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데, 내 마음이 순결해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갑 - 제가 신학교를 간 이유는 전국대회 장원만 하던 내 붓글씨 재능을 할 일 없는 목회 현장에서도 계발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은사체험도 하면서 좋은 목사 되겠다는 서원에 이르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회 방식이 보다 더 다양해지고, 인정되어졌으면 합니다.


김*찬 - 오늘 아가서는 하나님의 열심이란 말을 무색하게 하는, 술람미(우리) 여인의 솔로몬(주님)에 대한 사랑을 봅니다. 하나닝의 우리 인간을 향한 열심보다 더한 우리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열심 말이죠. 건강한 자아, 불굴의 열정으로 주님을 좇는 술람미 같은 우리들이 되길 기원해 봅시다.


기도합시다. 

이*우 -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깊어지길

오*흥 - 하나님의 목적이 될 수 있는 삶이되길

김*찬 - 하나님을 당당히, 열정적으로 사랑하기를

정*갑 -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옵시고, 내 부족함을 보지 않고 십자가의 의를 바라보게 하시고  

박*권 - 우리의 적라라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정*일 - 아버지를 뜨겁게 타인, 가족, 교인을 사랑하도록 은혜 베푸시길


기도 후, 맛난 철판 오리 먹고

이*우님에게 사랑의 성금 전달하고

다시, 꽃 피는 봄 사월에 번개하기로 하고

뿌듯한 감격을 안고 하산하다.

쌩큐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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