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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회 교역자회 설교  

2018.04.12.(목)

 

제목 : 한 사람 

 

말씀 : 로마서 5장 17~19절

 

로마서 5장 [개역개정]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제 눈이 터졌습니다. 터키 여행 7박 9일 중, 잠자는 시간만 빼고, 7~9시간을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때 그때 주신 영적 감동을 스마트 폰 자판에 옮기느라, 눈을 혹사했더니, 눈이 터져버렸습니다.

 

하여, 한쪽 눈만 작동 가능하나, 그래서 일목요연하게 말씀을 전하게 될 줄 믿습니다.

 

A. 한 사람이 역사를 바꾼 예

 

터키 여행의 즐거움은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을 맛보는데 있지만, 그 백미는 그 땅을 일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무엇보다도 흥미롭습니다. 그래 사람입니다.

 

나는 터키에서, 

아타튀르크(Atatürk)-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3.12~1938.11.10)를 그 건국 역사에서 만났습니다. 터키를 민주공화국과 종교 자유국으로 세운,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 초대 대통령 아타트루크의 능묘엘 들렸습니다.

 

그는 선언했습니다. “나는 터키와 결혼했다.” 하여, 그는 나랏일에 전심전력한 탓에 가정을 지키지 못했으나, 이혼 후에는 독신을 고수했고, 권력 세습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녀를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허나, 아이들을 좋아해서 입양한 자녀를 키워냈습니다. 우리나라 세종대왕처럼 그는 국민들에게 터키 문자를 만들어 주었고, 터키의 국가 경제를 염려해 대통령 궁도 짓지 않고, 청렴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돈으로 깔보는 동남아시아에도, 터키의 아타튀르크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적잖습니다. 자국민의 경제 형편이 마음에 아려, 태국 땅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었다는, 사람이나 이념과 싸우지 않고 국민들의 헐벗음과 허기를 내모는 싸움만 싸웠다는, 태국의 국왕 故 푸미폰 아둔야뎃이 그런 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호 아저씨"라고 불리는, 독신으로 청렴 결백하게 살아 오늘의 통일 베트남을 역사의 유산으로 후대에 물려주고 간, 베트남 국민 영웅 故 호찌민 또한 역사를 세운 한 사람입니다.

 

故 아타튀르크, 故 푸미폰 아둔야뎃, 故 호찌민 등등,  이젠 멋지게 죽어 변절한 이유도 없는 영구 멘토를 모신, 나라와 국민들이 한 없이 부럽습니다.  

 

단 한 사람이 바꾼 세계사적 사건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캘리포니아 주정부 국무장관을 지낸 마치 퐁 유(March Fong Eu)는 그녀의 연설 중에 한 표, 한 사람이 이룬 위대한 몇 가지 일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습니다.

 

“1645년, 한 표가 올리버 크롬웰에게 영국 통치권을 안겨다 주었다. 1776년, 한 표 차이로 미국은 독일어 대신 영어를 국어로 제정했다. 1845년, 한 표 차이로 텍사스 주가 미합중국 영토가 되었다. 1876년, 한 표가 프랑스를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꾸어 놓았다. 1876년, 한 표 차이로 루더포드 해이스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1969년, 일리노이 주 각 소선거구에서 한 표의 향방만 바뀌었어도 존 F 케네디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단 한 사람이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역사 발전을 이뤘습니다. 

 

 B. 오늘 본문에도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한 사람이란, 한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대표로서의 한 사람입니다. 

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하나인 한 사람입니다. 

 

1. 한 사람 아담과 그 후예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이는 인류의 조상 아담을 가리키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아담의 범죄가 온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개인의 죄란 없습니다. 제사장 나라-거룩한 백성 이라는 그 언약 아래 있는 신앙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은 개인의 죄를 집합적인(공동의) 죄 (collective sin)로 셈합니다.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수7:1)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 개인의 죄가 집합적인 죄임을 증거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간의 죄입니다. 여호수아 7 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패한 연유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이 사건은 아간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신앙공동체-이스라엘의 범죄로 셈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셈법입니다.

 

한 인간의 기만적인 행위에 함 해 보자 팔 걷어 붙이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봅니다.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다.�또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A.링컨 -

 

하물며, 하늘에서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랴~.

 

그렇습니다. 모든 결과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과정이 정의로워야 정의입니다. 모든 결과는. 그날에 완성되기에 오늘도 그 과정일 뿐입니다.

 

아직 누가 이겼는지, 누가 성공한 자인지, 그 역사 앞에서 아무도 모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 되던 날 , 나는 터키 국민 영웅 아타튀르크 능묘를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부정을 덮어 줄 정권이 필요해서 국정원까지 동원해서 상대방을 음해 공작 했지만, 결국 그는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권력 세습을 안하려고, 자식까지 안 뒀다는데, 우리는 자신의 부정을 은폐하려고, 정권 연장 수단을 간계를 쓰는 권력자들을 너무 흔하게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한테 잘해주면 공범되어가는 줄 모르고

부정을 옹호해주는 이들이 우리 가운데도 있습니다.

 

터키 여행 투어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도벽이 있는 사람이 관광객으로 가장해서 일행 중에 끼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수법이 너무도 교묘해 한 팀된 이들을 흔적없이 턴다고 합니다. 한 사람 때문에 여행을 망치듯, 신앙공동체 또한 아간 한 사람 때문에 무너져내리게 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아담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나

아담만이 인류의 대표가 아니라는 데, 

복음이 있습니다.

 

어둠과 빛처럼 아담과 예수를 극명하게 바울은 대비해 놓고 있습니다.

 

2. 한 사람 예수와 작은 예수들

 

이제는 복음 예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5:17b 

 

한 분 예수지만, 한 개인의 선은 집합적인 선입니다. 공동체의 선입니다. 한 사람이 많은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b)

 

우리는 작은 예수입니다.

우리네 신앙 목표는 Christlikeness=예수 같음에 있습니다.

 

목사요, 사상가인 랄도 왈프 에머슨은 그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에서 이렇게 말했숩니다.

 

(전략)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일본원숭이는 고구마를 씻어 먹습니다. 1950년대 일본 미야자키현의 무인도에서 우연한 기회에 공원 관계자들이 고구마를 들고 가다가 엎었더니 원숭이들이 떼로 몰려 와 집어 먹었답니다. 그런데 다들 흙이 묻은 고구마를 모래와 흙과 같이 씹어 먹느라 곤혹을 치렀는데, 그 중 한 마리 18개월짜리 암컷 원숭이 이모(imo) 라는 이름을 가진 원숭이만이 모래와 흙이 묻는 고구마를 들고 물가로 가더니 고구마를 씻어 먹더라는 겁니다. 그 후에도 이모(imo)는 곡물도 물에 걸러먹었답니다. 

 

이모(imo)가 고구마를 물에 깨끗하게 씻어 먹는 것을 본 동료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씻어 먹은 행위를 따라하면서 대를 이어 일본원숭이들은 고구마를 씻어 먹고 있다는 겁니다.

 

원숭이 한 마리가 그 세상을 개화시켰습니다.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작금, 새 출발하는 우리 지방회와 교역자회는,

한 사람이자 전체인 우리 개개인으로 인해서, 죄의 종노릇할 건지 아니면 생명의 왕노릇할 건지기 결정될 그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운명공동체인 지방회의 평안과 발전은 한 사람인 당신 전체에게 달려 있다.

 

보다 공정한 행정과 투명한 재정 집행, 그리고 섬김의 리더십이 요청되는 시기에 우리는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새 틀을 짜야 합니다.

 

그래서 섬김의 리더십을 갖춘 작은 예수가 우리 신앙공동체의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청빈 그리고 자기 낮춤이 바로 그 목표요, 과제입니다.

 

오늘의 이스라엘은, 다비드 벤 구리온이 그 기초를 놓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이 그 어디엔가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뛰어난 성찰을 내뱉은 생 텍쥐페리는 실상 <<인간의 대지>>를 한 눈으로 내려다 보며 창공을 날았던 비행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통전적(通全的) 시각으로 사막의 생명력을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다비드 벤 구리온이 사막 네게브에 누워있기 때문입니다.

 

'사막에서 비전'을 발견한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다비드 벤 구리온은 이스라엘이 모세의 광야에서 '제사장 나라, 하나님의 백성' 된 징표로서의 성막. 그 성막의 자재가 된 사막을 이겨 낸 싯딤 나무로 상징 되는 앞서 가시는 신적 의지로 재건 될 네게브 사막을 통사적(通史的) 영감으로 재해석해 낸 선각자입니다.

 

벤 구리온에게 있어 성막 재건을 위한 조각목 싯딤 나무는 유다 광야에서 흘러 나오는 생명수 시원을 좇는 영적 촉수입니다. 그 뿌리는 영원에서 영원에 맞닿아 있습니다.

 

'사막의 비전'을 이룰 실제적 표상 싯딤 나무는 목질이 단단하고 가볍습니다.

 

다비드 벤 구리온은 이스라엘 재건이라는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사막을 이겨낸 싯딤 나무처럼 그 개척 의지가 매우 단단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그 사명을 약화시키려 들던 사리사욕은 거뜬히 타고 넘을만치 그는 몸을 가볍게 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초대 수상을 비롯 두 차례나 수상으로 재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후에는 네게브 사막의 농군으로 사막의 비전 완수를 위해 백의종군했습니다. 평민들과 동일한 주거 환경에서 농군답게 살다가 마지막 그 사막에 몸을 누였습니다. 한 그루 싯딤 나무가 되어, 사막에 성막을 재건했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거기 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전의 사람, 행동주의 정치학의 대부 싯딤 벤 구리온이 그 네게브에 누워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영원할 것은 역사 개척에는 단단하고, 사심은 가벼운 건국의 아버지를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작은 예수였습니다.

 

3. 섬김의 리더십을 구사하는 한 사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머리 둘 곳이 없으셨던 한 사람 예수!

 

한 사람 나사렛 예수의 <섬김으로서의 순종이>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신앙 교육의 목표 Christlikeness 예수 같음에 있다면 전체이자 하나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한 신앙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을 몸으로, 물질로, 맘으로 구현해 내야만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8:9)

 

종교와 국적을 불문하고, 위대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한결 같이 청빈했습니다. 그들은 종파가 달라도 부요하나 그 백성을 위해 가난하게 되신 예수 같음을 삶의 목표로 택해 살았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한 개인이나 전체인 우리 지방회 회원들은 그리스도의 가난을 택해야 합니다. 거기에 투명한 재정 집행, 공정한 행정이 가능해 집니다.

 

나는 지방회장을 하면서 오히려 부도가 났습니다. 지방회장을 하면 수입이 적잖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호주머니에 돈이 머물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이너스로 살았습니다. 자랑하려 드는 건 아니지만. 잊히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고 박경만 목사입니다. 그가 마지막 투병 생활을 할 때, 자신이 힘다해 도와주었던 이들이 자기를 외면하는 현실을 매우 섭섭해 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차 한잔 얻어먹은 적 없는 김성찬 목사가 장차 죽는 일밖에 없는 자신을 몇차례나 찾아 와, 호주머니를 다 털고 가는 것에 감동과 격려를 받았다며, 진심으로 고마워 했었습니다. 그 죽기 직전 성탄절에 박 목사가 내게 보내 온 진심어린 감사를 표한 육필 카드가 지금도 내 서랍 속에 있습니다. 

 

나만 터키에 다녀와 미안합니다. 

 

그래서 여행 내내 하루 종일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한숨도 자지 않고, 그 성지의 영감을 적어 페친들과 함께 나눠누리고자 페이스 북에 포스팅하느라 힘겨웠고, 덕분에 눈이 혹사를 당해 터졌지만, 맘은 행복했었습니다.

 

헌데 지금도 아쉽고, 속상한 것이 있습니다. 지난 2010년도에 내가 우리 지방회 전도부장으로 이스라엘 성지 여행을 추진하던 때의 일입니다. 성지에 시간적,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함께 가지 못했던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서, 매년 지방회비를 천만원 증액하여, 매년 5명 씩 성지를 보내드리자고 결의 했던 멋진 결의를, 그 누구 한 사람이 밟아버려서 추진되지 못한 점이 매우 분하고, 안타깝습니다.

 

제대로 시행했으면, 5*8=40 사십 명 가까운 목회자들이 성지를 다녀왔을 겁니다. 내년부터는 다시 그 결의를 살려내어 젊은 목회자들이 성경적 견문을 높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쇼펜하우어가 행복을 두 배로 늘이는 방법을 말하면서,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늘 자기 주변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적이 있음을 느낀다. 그들은 늘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쏟는다. 사람보다 물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사람은 다정하고 즐겁게 맞이 해 주는 친구로 가득찬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이익이나 행복을 자기 자신의 행복으로 여긴다. 

 

오늘, 건축 부채로 목회자 사례비도 없는 꿈이 있는 교회가 교역자회를 열어, 점심을 제공한다는 말에 가슴이 아픕니다. 이기적인 인간들은 힘되고 돈되는 지방회장이나 힘 있는 부서 부서장은 하려고 기를 쓰고 덤벼들지만, 봉사가 임무인 교역자 회장음 기피합니다. 

 

 양동춘 목사님께서는 장애인들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약한 교회를 이끄시면서도, 성도들의 헌신을 이끌어 내시며 다들 기피하는 시기에 어려운 교역자회 회장을 이태나 전심전력으로 섬겨 오셨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진짜 중진이십니다. 그 나눔교회의 나눔 쌀 한 부대 받지 않은 교역자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최선 다해 나눔의 모범을 양목사님과 배데스다 나눔교회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들 돈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 선생께서는 호주머니의 회개가 마지막이자, 참 회개다 라고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돈이 우상인 세상에서, 진정한 돈의 가치를 아는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그리고 신앙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의 진정한 존재 가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8:9)

 

위 말씀을 그 삶에서 이루는데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원한 가난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작금

이 귀한 풍조가 우리 서울중앙지방회에 일고 있습니다.

지난 해부터 우리 지방회 안에서 부요하나 가난한 자를 위해 가난한 자가 되는 일에 힘쓰는 <한 사람>을 통해, 그 가치를 맛 본 이들이, 가치 있는 도전을 받고, 자신들도 작은 예수 따라 사는, 한 사람이 되고자 결단하고 있음을 봅니다.

 

한 사람 곁에 또 한 사람

 

감사하게도, 이게 우리네 대세입니다.

부디, 대세를 거스리는 반역이 아니라, 대세에 몸과 마음과 물질을 싣는 순종으로 공명정대하고, 투명한 지방회, 섬김의 리더십이 살아 역사하는 교역자회가 되기 소망합니다.

 

그런 의인 10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니, 그런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롬5:18)는 새 역사의 <한 사람> 주인공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2018.04.12(목)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회 교역자회 예배 설교 / 장소 : 꿈이 있는 교회함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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