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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4장 3-14, 종말론적 신앙이란(주일 설교)

2011.03.14 08:33

김성찬 조회 수:1335 추천:54

마 24장 3-14, 종말론적 신앙이란

2011.03.13 주일

(여기 실린 설교문은 김나리 자매가 설교 시간에 넷북으로 받아 적은 설교 내용입니다. 참 기특해서 가감없이 실어 봅니다. 여러분들도 어제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억나고, 깨달아졌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설교문 원본은 '영혼일기 681 종말신앙이란?' 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 김성찬 목사님

마태복음 24장 3-14절

 

종말론적 신앙이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물음에 답하신다. 세상 끝날 에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수난을 예고하시고,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런 그들의 마음에는 맘에 들지 않는 말씀을 하셨으나. 제자들은 궁금했다. 세상 끝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그 때 사람들이 너희를 미혹케할꺼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할 것이다. 오늘 날에도 사람들을 미혹케 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난다.

현재 중동 지역에 불이 붙고 있다. 항상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수난들. 우리가 영적으로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곳곳에 기근과 재난이 있을 것이다.


엊그제, 3월 11일 오후 4시 46분에 규모 8.8의 초대형 강진과 지진해일인 쓰나 미가 일본 동북지역을 강타하였다. 일본 열도가 공포에 빠져들었다. 현실은 항상 상상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무시무시한 공포 .. 수천 명이 사망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되고 있다.
이 지진은 1900년대 이후로 발생한 초강력 재앙이다. 인간이 어떻게 대비를 하든, 완전히 안전할 수 없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이 준비하는 것 이상의 사태를 몰고 온다. 우리 땅에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우리 안에도 충분히 그런 일이 가능하다.


종말은 무엇인가? 종말의 때는 어떤 것이 일어나는가? 종말이 재난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이렇게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재난의 시작, 경고를 주님께서 바라셨는데,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신앙 고백으로 살아야 하나, 종말론적 신앙고백이란?
요즘 예수 믿는 것이 많이 탄압과 핍박을 받고 있다. 요즘은 안티 크리스천이 너무나도 많다. 무릎 꿇고 기도했다고, 교회에 굴복한 정치라고 확대 해석하는 안티 크리스천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미 사람은 예수 말고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생각을 만연하게 하고 있다.

 

말씀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자. 종말 신앙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말씀에 주시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4장 25절. 우리는 말씀을 주시하지 않는다, 말씀에 너무 무지하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말씀을 무시한다. 계시록에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계시록 16장 17절 말씀에서.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하나님의 은혜에 거역한 자들에게 주는


히브리서 12장 26절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계시록 16장 19절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계시록 14장 8절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큰 성 바벨론의 무너짐은, 하나님의 기억하심의 결과이다. 사탄에 굴복하는 의지의 문제. 사탄에 굴복하는 징조이다. 하나님 뜻에 살지 않고 내 뜻대로 사는 것.

 

시편 16편 1-2절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말씀을 피하지 말고 말씀에 주목하자. 말씀을 주시하는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할 줄로 믿는다.

 

말씀의 경고를 주시하자.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민감한 영으로 세상 사람들의 파멸을 대비해줘야 한다. 말씀을 주시하는 신앙의 사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종말의 징조, 재난의 시작이 되면 사람들이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다.


종말 신앙이란,

첫째로 말씀 주시,
두 번째로 현실 외면하지 않기 (존재하는 모든 것 사랑하기)

마태복음 22장 35절 누가복음 10장 25절

율법사가 시험하여 묻는다, 율법 중 어느 계명이 큰 계명인가?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며 둘째도 그와 같으니 동시에 내 이웃을 내 자신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의 큰 계명이다.

 

마태복음 25장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성경 구약 39권을 예수님께서 딱 두 마디로 정의하신 것이다.

 

요한 계시록을 묵상하면서, 이것이 내일 일어난 일이라고만 착각하고 살았다는.. 오늘을 외면하면 안된다. 내일은 오늘을 해설해주고 있다. 오늘 없이 내일은 없다. 그 무서운 쓰나미가 어제 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무서운 사태가 우리 안에서 발생한 것이다. 오늘도 모르는 내가 내일의 묵시를 파헤치려 했다는 것은 참으로 허망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며 돌아본다, 서정애로의 의도적인 불신

현실적인 리얼리즘을 내 것 삼아 내 아픔을 토로하고, 대변해주고, 와 반대로 서정애는 리얼리즘과 무관해보이는 것 , 문학주의를 뜻함. 세상이 변하던 말던, 나는 아름다운 서정만 노래한다. 라는 의미이다.

현실 정책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서정으로만 노래했다. 그들과 차별화되면 거룩한 것인 줄 착각했다 , 그들 안에서 나를 두고 생각해아 한다.

 

심판은 저들만의 것이고, 나와 무관한 것이다. 요한 계시록의 재앙과 경고는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왔다. 노아의 방주에 안주해 있는 선택받은 존재인 마냥...그렇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고, 내가 간과했던 부분이었다. 현실과 무관한 신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현실을 외면치 말라 라고 하신다. 존재하는 것을 모두 사랑해라. 누구나 우리의 신자가 되어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자. (이것이야말로 종말신앙)


종말론적 신앙이란 ?

* 첫 번째, 말씀 주시

* 두 번째, 현실 외면치 말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

* 세 번째, 준비하고 있기

미 지질 조사국에 데이비드 애플이 말한다. 우리는 사상 최대의 지진을 목격했다. 이런 재앙을 대비할 수 있는 국민은 일본뿐이다. 일본 사람들의 침착성을 배워야 한다. 항상 다음 지진을 대비하여 왔다. 마태복음 24장 36절부터, 두 사람이 함께 밭에 있다가 , 맷돌을 갈다가, 한사람은 가고 한사람은 남겠네.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깨어있어라 , 바로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이다. 너희가 생각지도 않을 때에 인자가 올 것이다. 우리는 주께 붙어 있어야 한다. 언제 어느 때나, 항시 준비된 자세로. 말씀으로 붙어있고, 기도로, 사랑으로 붙어 있어라. 사랑은 전염성이 있다. 항상 쌍방적이다. (상대가 있다는 말)

 

사람이 개선되고, 개혁되고, 잘 되는 비결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방향을 바꾸는 것. 고집 부리지 말고.

종말론적 신앙의 이 세 가지를 지키려면 내 고집을 버리고, 진리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여서 내 안에서 날마다 새 일을 하시기 원하시는 주님을 항상 믿고 의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