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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 3:8-9 슬픈 소망의 인내

2011.02.11 07:48

김성찬 조회 수:820 추천:36

벧후 3:8-9 슬픈 소망의 인내

2011.02.11(Fri.)

슬픈 소망의 인내


벧후 3:8-9/찬송/98(통) 90(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8-9절)


시편기자는 고백합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 임이니이다(시90편4절).” 베드로 사도는 이 말씀을 기억해내라고 촉구합니다. 사람은 시간을 시간으로 측정합니다. 주의 강림을 기다리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더디 오심에 낙망해 마지않았습니다. 하여 소망의 인내를 저버린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의 강림을 기롱하는 자들의 유혹이 도처에 천방지축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영원으로 측정하십니다. 하루가 천년같이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의 유한한 안목 때문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어서 주의 강림이 더딘 이유로 하나님의 슬픈 소망의 인내를 언급합니다. 진정한 소망의 인내는 사람 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슬픈 소망의 인내는 주님의 몫입니다. 여기서 ‘더디다’(브라뒤네이)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망설이다, 질질 끌다, 늦추다’ 라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주의 강림을 질질 끌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8-9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모든 자가 구원 받는다는 보편구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신다(딤전2:4)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거절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그 소망의 인내는, 슬픈 소망의 인내입니다.


묵상/ 주님의 슬픈 소망의 인내에 대해 묵상하기.
적용/ 내 소망의 인내는 얼마나 견고한지? 내 삶의 고난과 역경 속에 주님의 슬픈 소망의 인내 적용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