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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Turning Point: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3절 하반)
4절 (당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함께 하시고 나를 안위하심)
5절 (당신께서 내 원수 앞에 상을 베푸시고, 내 머리에 기름으로
6절 (나의 평생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호위함, 내가 영원히 주님의 집에 살고싶어)



1절과 6절, 2절과 5절, 3절과 4절이 아름답게 짝을 이루고 있다.

(참고로 창세기 1장에서 천지 창조시 첫째날(빛)과 넷째날(발광체), 둘째날(궁창과 물을 나누심)과 다섯째 날(새, 물고기), 셋째날(육지와 식물)과 여섯째날(짐승과 인간)이 짝을 이루고 있다. 즉 평행 구조이다)



4. 시제



이 시편의 시제를 살펴보면 한 동사(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동사, 완료형)만 과거이고 나머지는 모두 미완료형으로 뜻은 미래 혹은 현재임을 나타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없을 것입니다

푸른 초장에 그분이 저를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저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프리드먼(Noel Freedman)에 의하면 시편 23편을 모두 과거형으로 읽을 수 있으며, 모두 현재형으로 읽을 수 있으며, 모두 미래형으로 읽을 수 있다고 했다. (David Noel Freedman, “The Twenty-Third Psalm,” in Pottery, Poetry, Prophecy, Winona Lake, IN: Eisenbrauns, 1980, p. 301. “the tense system of the verbs, involving the alternation of imperfect and perfect forms, with no distinction of time or aspect.” )

필자는 이 시편을 하루 세번 암송하며 묵상(QT)하기를 바라는데, 하루가 시작될 때는 미래형으로, 대낮에는 현재형으로, 그리고 자기 전에는 과거형으로 읽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잠잘 때에도 주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서 좋은 꿈 꾸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5. 해설

시편 23편은 다윗은 하나님을 인도자, 보호자, 공급자, 동행자, 축복자, 구원자, 은혜, 사랑, 화평을 주시는 분으로서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을 목자의 모습으로(1-4절), 잔치를 베푸는 주인의 모습으로(5절),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6절)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치 출애굽할 때, 광야에서 지낼 때, 가나안 정착할 때, 사사시대를 지나 왕정시대에 살 때, 이런 역사적인 회상을 하며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되심을 고백하고 있다. 이 시편은 개인(경건훈련)이나 공동체(역사체험)의 신앙을 회고하고 고백하거나, 앞으로 갈 길을 온전히 의탁하며 나아갈 때 암송하는 시편으로 가장 애송하는 시편이며 이미 찬양작곡자들에 의해 수백 개의 노래로도 만들어져 있다.

찬송가 작가인 최봉춘 작사, 장수철 작곡으로 찬송가453장(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에 수록되어 있다. 442장에서는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항상 인도하시고” (D.A. Thrupp 작사, 1838년; W.B. Bradbury, 1859년 작곡), 430장에서는 “내 선한 목자 저 방초 동산에 그 양을 치는 곳 참 편한데, 나 어찌 목자와 양떼를 떠나서 위험한 곳으로 나갔던가”(C. Robinson 작사, Thuringian Folk Song)이 수록되어 있다. 436장(다정하신 목자 예수), 191장(양 아흔 아홉 마리는), 335장(양떼를 떠나서 길 잃어버린 나)등이 관련 찬송이다. 나운영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는 이미 일반인에게도 알려져 있는 곡이기도 하다. 개신교 CCM계에서도 최덕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시편 23편에 대해 곡을 많이 썼고, 이를 토대로, 'psalm 23'이라는 음반이 발매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묘사한 것이 다윗 이후

예언자들 사이에도 인용되고 있다.

이사야 40:11에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또 에스겔 34:10-31에서도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영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두리니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수양과 수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찐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찌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주님은 목자(Divine Shepherd)이시다는 고백은 “저는 주님의 양입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시 95:7),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3)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34:31)( 윤사무엘, 연중설교: 기도의 생활화, 서울: 보이스사, 1997, p. 40.) 양은 근시안을 가지고 있어 멀리 보지 못하고 자기 목자만 보고 따라간다. 또 양의 귀는 마치 안경 렌즈의 초점처럼 한 소리만 고정해서 듣기에 자기 목자의 음성만 듣는다.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들을 때는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양들은 뭉치는 것을 좋아해서 여러 마리 뭉치다 보면 사고가 나는 수가 있다. 이럴 때 염소가 가서 흩어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절대적이다.

목자는 양들이 지나갈 길을 미리 가보고 안전하면 오라고 한다. 위험한 길을 피하고 풀과 물이 있는 곳으로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한다. 양들은 그 길로만 따라가기에 양들이 지나간 자리에 길이 생긴다. 또 목자는 양들이 먹을 풀을 미리 맛을 보고, 마실 물을 먼저 마셔보고 안전한지 점검한 후 건강한 풀과 물임을 확인하면 그 다음 양들로 마시게 하며 먹게 한다. 풀을 뜯다가 휴식 시간이면 푸른 초장 위에 눕게 하며, 이때 목동은 파리떼, 악한 짐승, 적들의 공격을 항상 감시하며 양들을 보호한다. 혹 짐승의 공격을 받으면 선한 목자는 자기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양들의 목숨을 지킨다.

이런 정신으로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설 때 사울왕을 감동시키며

설득할 때 한 말이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삼상 17:34-35) 실로 다윗은 책임있는 진실된 목동이었다. 이



시편 23편은 바로 이런 목자 상을 하나님께 찾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풀밭과 잔잔한 물가는 건강식품이며 평화의 동산을 만든다(민

20:2-13, 신 33:8-9, 렘 9:9, 23:10, 욜 2:22, 1:19-20, 시 65:13)



이런 동산에서 건강한 음식으로 자라는 양은 영혼의 소생함을 받는다.

소생함의 뜻은 병약한 것이나 쇠약한 것을 건강하게 회복시켜 생명의 연장을

받는다는 말이다. 부흥, 회복, 구원, 형통과 관계되는 말이다. 목자는 양을

먹이고 마시우게 하고 쉬게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건강을 보살펴 주며, 병든 양은 치료해 주고 영양실조나 그밖에 쇠약해진

양들을 살펴서 회복시켜 주는 일에 성실하다.

예레미야는 애가를 통해 영혼의 소생을 기도했다 (애 1:11, 16). 시편

119편에서는 소성(새롭게 살게 하심)케 해 달라는 기도를 여러 번 한다.

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40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44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149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를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4 주는 나의 원한을 펴시고 나를 구속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56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크오니 주의 규례를 따라 나를 소성케 하소서

159 내가 주의 법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신 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75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가 나를 돕게

하소서



3절하반에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배의 핵심이다(창 4:26, 신 12:5, 10, 21).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예배의 자리로 인도함이 이 시편의 클라이막스이다.

다윗은 찬양과 예배를 사랑한 자이다. 좋은 양식을 먹고 아름다운 동산에서

주님과 함께 거할 때 우리 영혼이 소생함을 입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사 26:7)“내가 지혜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첩경으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란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잠 4:11-12)



4절-5절에서는 주님과 더 가까운 관계로 2인칭(당신)으로 바뀐다. 양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의 계곡을 지날 때가 있다. 짐승들의 공격, 낭떠러지, 혹은 구덩이에 빠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에도 목자가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 주님의 계속적인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님의 강한 손과 편 팔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듯이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모든 위험과 협박과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보호해 주심을 확신한다. 어떠한 해도 받지 않을 것이란다. 목자의 오른손에는 지팡이(staff)를 가지고 있으면서 양들이 가야할 방향을 지시하며, 목자가 있는 위치를 표시해 주며, 때로는 낭떠러지에 빠진 양을 구출하기도 한다. 또한 나쁜 풀들을 가려내고, 물가가 안전한지 점검하기도 한다. 왼손에는 막대기(rod)가 있는데 회초리처럼 생긴 것이 아니라 경찰의 곤봉처럼 생겼다. 그 끝에 날카롭게 장식되어 공격하는 짐승들을 쫓아내는데 긴요하게 사용된다. 허리춤에는 돌팔매를 차고 있다. 공격해 오는 짐승을 맞히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다윗은 이 돌팔매를 이용하여 골리앗의 이마에 돌을 명중시켰다.



5절에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잔치의 분위기이다. 역전승한 모습이다. 포로로

잡혀온 원수 앞에서 잔치가 열린다. 이는 목자와 양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즐겁고 윤택한 잔치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원수 앞에서 상을 차리는 모습은

원수를 이기고 승리하는 자축연을 베푸시는 모습이다. 상의 음식이 풍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