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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회의 분열사

2008.03.17 08:23

윤사무엘 조회 수:1639 추천:60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사

                                                      윤사무엘 목사 (감람산장로교회)

1. 바른 교회관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미국장로교(P.C.U.S.A.)규례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1) 교회는 하나님이 만민 중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여 그들로 무한하신 은혜와 지혜를 나타내신다. 이 무리가 하나님의 집(딤전 3:15)이요, 그리스도의 몸(엡 1:23)이며, 성령의 전(고전 3:16)이다. 이 무리는 과거, 현재, 미래에 있는 성도들인데, 이를 가리켜 거룩한 공회 곧 교회라 한다.
     교회는 두 가지로 구별하여 보이지 않는 교회와 보이는 교회라 한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만 아시는 교회요, 보이는 교회는 온 세계에 산재한 교회이다.
     지교회는 예수를 믿는 무리와 그 자녀들이 저희의 원하는 대로 일정한 장소에서 성경의 교훈에 따라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결하게 생활하며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활동한다. 이를 지교회라 하며 당회가 있는 교회를 조직교회라 하고, 당회가 없는 교회를 미조직 교회라 한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 정치편 2장 7-9조)
  2)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공동체이다. 이 교회는 성령의 역사 아래서 예배와 그외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데 그 존재의 목적을 두어야 한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 성부, 성자, 성령되신 하나님의 은총 앞에 경건한 응답으로써 영광과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한다.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례되어야 할 것이며 여기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역사와 사회 속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부름받았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 소명은 교회 공동체 구성원에게 각각 구별된 분야를 섬기도록 하셨으며, 특히 목사에게는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와 성례전의 집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특수한 임무가 부여되었으며, 당회는 모든 회중들을 대표하여 예배의 준비와 질서를 맡아 수행해야 한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4편 예배와 예식, 1장)
  3)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의 머리가 되신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이요, 사실 근거가 없는 말이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권리 침범이다. (웨스트민스터 25:6)
     -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Christ is the Head of the Church).
     - 그리스도는 교회를 존재하게 하신다 (Christ calls the Church into being).
     - 그리스도는 교회에게 믿음과 생활을 주신다 (Christ gives the Church its
                                                                faith and life).
     - 그리스도는 교회의 권위이다 (Christ is the Church's authority).

  4)  교회의 큰 목적 (규례서 Book of Order  G-1.0200)
        1910년 북미 연합장로교회에서 규정하였고 1983년 미국장로교가 채택한 교회의 큰
        목적 (Great End of the Church)은
         가. 인류 구원을 위한 복음 선포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for the
                                              salvation of human kind)
         나. 하나님 자녀들의 안식처, 양육, 영적 친교  (the shelter, nurture, and
                                        spiritual fellowship of the children of God)
             다. 거룩한 예배의 유지 (the maintenance of divine worship)
             라. 진리보존 (the preservation of the truth)
             마. 사회정의의 구현 (the promotion of social righteousness)
             사.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전파 (the exhibition of the Kingdom of Heaven
                                                to the world)
   5)  교회의 사명
             가. 예배:말씀의 선포와 성례전 집행 (Word and Sacrament)
                   요 4:23-24      
                   고전 11:23-26
             나. 교육:가르치는 교역의 사명을 바로해야 교회는 튼튼히 설 수 있다
                   교회는 성령의 학교이며, 성경말씀을 배우는 곳이다.  
                    신 6:6-7,  마 28:19, 딤전 4:6, 13,  딤후 4:2    
             다. 선교: 현재 미국장로교는 전도(Mission & Evangelism)를 가장 강조함.
                  특히 소수인종교회의 성장목표를 2010까지 20% 증가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마가 16:15-16, 마태 28:19, 행 1:8
   6) 교회정치의 역사적 원리 (G-1.0400)
             가. 몇 개의 다른 회중이 집단적으로 모여 하나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룬다
                (one Church of Christ).
             나. 교회의 상회나 상회 대표가 하회를 치리하거나 그 안에서 발생하는
                 논쟁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다. 같은 방법으로 전체 교회의 대표가 각 부분과 연합된 전체 분야를 다스리며
                 결정해야 한다.
             라. 다수가 다스려야 한다.
             마. 상소문제가 생기면 하회에서 상회로 상정되어 전체 교회의 공동의 지혜와
                 연합된 의사로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원친과 절차를 위해서는 사도들의 모범과 초대교회의 관례가 권위로서
             인정된다.
             각 치리회 (당회, 노회, 대회, 총회)는 감독적(supervisory)이며 그 고유의                          (original) 책임들을 가진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부르심에 따라 ‘개혁했고 또 항상 개혁하는 교회’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교회개혁운동 표어)이어야 한다. (G-2.0200)


2.  초대교회의 갈등과 선교적 협력
   1) 헬라파 유대인 성도들과 히브리파 성도들의 갈등 (행 6:1) -
      이유: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
      해결: 집사 일곱을 세워서 구제와 전도를 하게 하였다
   2) 디아스포라 교회 (행 1:8,  8:1)
      이유: 스데반 집사의 순교 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빌립, 베드로), 아소도(옛 블레셋 땅), 다메섹(아나니아) 모든 땅
           으로 흩어졌다
      결과: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함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3) 예루살렘 교회 - 사도들을 중심한 유대인 선교 센터
       안디옥 교회 -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이방인 선교를 위한 중심지
       바울이 설립한 교회 - 소아시아(갈리디아, 에베소), 마게도니아(빌립보), 아가야 (고린도)

3. 미국장로교의 분열과 통합
    1683년 미대륙에 도착한 아일랜드 프란시스 마케미 (1658-1708)는 아메리카의 장로파의 아버지이다. 그는 1706년 필라델피아의 중회를 조직하고 1717년에는 식민지의 대회가 개최되었다. 1729년 대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신앙의 기준으로 채택하였다.
    대각성 운동은 데오도어 프레링스하우젠이 1726년 뉴저지주의 네덜란드 개혁파의 회중에게 행한 설교에서 발단이 되었다. 그의 영향으로 장로파 목사인 길버트 데빈트와 윌리엄 테빈트의 아들에게 점화되어 그들은 중부 식민지의 소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사이에서 불을 뿜는 듯한 신앙부흥의 전도자가 되었다. 조나단 에드워즈(1703-58)의 1714년 설교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있는 죄인”의 영향은 뉴잉글랜드지방에 회개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칼빈주의 신학을 지지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이성능력을 가지나 전적 타락 때문에 도덕 능력 또는 도덕에의 지향이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의 저서 ‘의지의 자유’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중시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하나님의 곁으로 끌어들여 인간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번에는 인간을 하나님 봉사에로 끌어들인다고 기록하였다.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하고 좋은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프린스턴, 킹(콜롬비아), 함프덴, 시드니 등의 대학이 설립되었다.
    1) 캠벌랜드 교회 분열 -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뜨거운 신앙과 복음주의적 열정을 가지고 있던 평신도를 성직자로 임명한 일로 켄터키 대회에서 비난을 받자 분리하여 나갔다.
    2) 노예제도 찬성(남장로교)과 반대(북장로교) - 남북전쟁 당시
    3) 1958년: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와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가 통합되어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로 되다
    4) 1983년:  남장로교와 북장로교가 통합되어 Presbyterian Church in U.S.A.가 설립되다.
자유주의 편에 속한 북장로교와 보수적인 남장로교의 교세가 매년 줄어들자 자구책으로 통합을 제안하게 되었고 마침내 아틀란타 총회에서 통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문제, 동성애자 안수금지 문제, 낙태 문제 등으로 교단내에 갈등이 있다.
   미국교회의 분열이유는 (1) 윤리적 분열  (2) 경제적 분열  (3) 지역적 분열  (4) 문화적 분열  (5) 정치적 분열  (6) 인종차별의 분열 등이 생기면서 뿌리가 깊어져 분열되는 아픔을 당해왔다.  미국내 300개 교파가 있으나, 이단계통은 3000여개에 달한다. 계속 세계 각처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가져온 타종교로 인해 뉴에이지, 종교통합이 앞으로도 가속화 될 전망이다.

  4. 한국장로교의 설립
     1) 1907년 9월 17일에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 노회” (獨老會) 가 조직되어 초대 노회장에 사무엘 마펫(마포삼열) 목사를 선출하였다. 이 노회는 네 장로교 선교회 (미국 남장로교, 북장로교, 호주 장로교, 캐나다 장로교) 총회에서 인준되었다. 세계 교회와 유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국 장로교 연합 공의회에게 독노회의 조직을 통지하고 명부에 기입하도록 요청을 하였다. 이 노회에서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7명을 목사로 안수하였다. 서경조, 한석진, 양전백, 방기창, 길선주, 이기풍, 송인서. 이때 교세는 선교사가 32명, 한국인 목사 7명, 장로 33명, 학습교인이 21,482명, 일반 교인이 69,098명, 세례교인이 17,890명이었다. 조직교회가 38개, 미조직교회가 984개, 각급 학교가 402개, 1906년 헌금총계가 94,227원 (당시 미화 47,113달러) 였다.
    2) 총회조직: 1912년 9월 1일 평양여자성경학원에서, 총대 221명이 모여 예수교장로회조선총회 가 조직되었다. 초대 총회장에 호레이스 언더우드(원두우) 목사가 선출되었다. 중국의 산동성 내양(萊陽)에 선교사 파송(박봉로, 사병순, 김영훈)을 결의하다. 매년 추수감사일은 외국 전도를 위하여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기로 결의하다.  일본선교를 위해 감리교 대회와 협의하여 ‘연합예수교회’로 통칭하여 동경에 그 사무실을 두기로 하였다.

  5. 갈등과 분열
      1) 1934년과 35년 아빙돈 주석 번역사건으로 말미암은 자유주의(비평학 수용)와 보수주의(축자영감설) 갈등, 교회에서 여자의 지위에 관한 논의, 성령을 빙자하는 신비주의적 이단 출현으로 교회내 갈등이 증폭됨
      2) 해방후 세 번의 중요한 분열
      일제 신사참배의 찬반이 교회의 분열의 씨앗으로 남게 되었다. 총회의 신사참배 가결 후 한국의 모든 교회들은 강제로 통합되어 일본 기독교 교단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후 신사참배 문제 후유증으로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다같이 분열되었다. 장로교회는 교회의 쇄신을 주장하는 고신측(1952년)과 신학의 자유를 주장하는 기장측이 분립되었다. 가슴아픈 일은 장로교회의 분열이 6.25 사변 전부터 시작되어 사변 중에 분열이 구체화되었다는 사실이다.
       1946년 6월 장로교 총회에서 총회 직영 신학교로 승인되자 출옥 성도 한상동과 주남선은 보수적인 장로교 신학을 표방하였다. 그것은 이들이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옥종에 있었던 1940년 조선신학교가 설립된 이후 이러한 신학교 설립을 위해 계속 기도하다가 해방이 되자 설립하였다. 1951년 5월 21일 부산 중앙교회에서 열린 장로교 총회는 고려파 대표를 총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자, 이에 고려파는 따로 노회를 조직하여 경남법통노회라 하고 이듬해 1952년 9월 고신측 제1회 총회를 진주 성남교회에서 개최하고 독립총회를 가졌다.
       한편 1952년 4월 29일 대구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37회 총회는 성경에는 비록 오류가 있지만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김재준을 성경무오설을 부인한다고 하여 교회에서 제명처분 하기로 가결했으며, 조선 신학교 졸업생은 교회의 교역자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1952년 9월 17일 조선신학교를 옹호하는 35명의 목사와 12명의 장로가 모여 호헌대회를 열고 총회의 위와 같은 결의에 대해 불법이라고 항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각 지방교회와 노회는 분열의 진통을 겪게 되었다. 교회의 재산권 때문에 곳곳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듬해 1953년 제38회 총회는 김재준목사의 파면을 결의하였다. 기장측은 총회에서 물러나 6월 10일 조선신학교 강당에서 목사 26명과 장로 26명이 모여 새로운 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1954년에 분파된 교회의 이름을 한국기독교장로회라고 칭하였다.
      3) 총회파가 합동과 통합의 분열, 1959년
        세계기독교연합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가입 문제를 놓고 신학적인 입장과 견해 차이로 장로교 교단들의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1948년 김관식은 장로교의 대표로 파송을 받아 감리교회의 변홍규와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WCC 에 참석했다. 그 후 진보적인 기장측은 여기에 적극 가담하여 KNCC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보수적인 고려파는 일찍부터 교회연합운동에 반대하였다. 1951년 22명의 기독교인 국회위원들이 WCC를 용공적인 기관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후 총회의 많은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이에 동조를 하였다.
         총회파 장로교회는 1954년 미국 Evanstons에서 열리는 WCC에 3명의 대표를 파견하였는데, WCC 의 신학적 입장이 용납할 만한 것이 못된다면 한국장로교회가 WCC를 탈퇴한다는 조건하에 파송하였다. 김현정의 보고를 듣고 총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연구 위원회를 구성하고 WCC 가 교회의 교제와 협력을 도모하는 기관으로 존속한다면 계속 회원으로 남기로 의결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와 나아가서는 세계 복음주의 협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와 관계를 맺고 있는 보수주의 목사들은 WCC를 신뢰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유는 국제 기독교 연합회 (ICCC) 의 회장인 근본주의자 맥킨타이어의 영향이 컸다. 이에 박형룡 박사는 1958년 신학지남에 발표한 글을 통해 WCC에 반대하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에 1959년 9월 28일 대전에서 열린 44회 총회에서 WCC 참여파와 반대파들 간의 치열한 공방으로 파장이 되었다. 이날 회의에서 경기노회의 총대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두고 의견이 나뉘어져 회의를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총회장 노진현 목사는 증경 총회장들이 수습을 위하여 제의해 주기를 청원하였다. 그리하여 11월 23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속개하기로 하고 정회하자는 증경 총회장들의 제안이 채택되어졌다.  이러한 결정이 불만을 가진 회원들은 이튿날 9월 29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전필순 목사의 사회로 단독 속회를 열어 통합측(연동측) 총회가 되어 버렸다. 연동교회에서 속회를 가졌던 통합특은 새문안교회에서 한경직목사의 사회로 통합 총회를 다시 열었다. 한편 11월 23일에 승동교회에서 총회장 노진현목사의 사회로 총회 속회를 개회하였을 때  합동측(승동측)이 탄생되었다.
      4) 1978년 이후 합동측 내의 분열

   6. 교단 분열의 장점과 약점
      한국감리교의 분열이 주로 교회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 하는 교권 싸움 때문이라면, 장로교의 분열은 보다 경건과 신학을 명분으로 내세워 일어난 분열이 대부분이었다. 통합측 재산을 노회와 총회에서 관리하는데, 다른 장로교 교단에서는 지역교회의 재산권을 개교회가 관장하고 있어 합동측은 쉽게 교단이 분열되었다.
      1) 이유 - 신학노선(자유, 보수), 보수정통논쟁, 세속화, 물량주의, 교권주의 (감독 정치제도와 회중 교회 정치제도의 중간 노선), 재산권문제, 신학교문제
      2) 약점 - 장로교의 분열은 한국선교를 한 미국 장로교의 신학노선 혼선(보수와 자유)과 분열의 영향을 받았다. 또 민족을 사랑하는 교인들과 선교사의 제국주의적인 태도에 반항도 있었다.  분열의 영향으로 많은 장로교인들이 타교단, 이단, 캐톨릭을 포함한 타종교로 흩어졌다. 사회에서 교회를 보는 시각도 비판적이었다.
      3) 장점 - 교세 확장으로 인해 전도, 선교가 활발히 전개가 되다. 부흥회와 부흥사경회를 통한 부흥 (길선주, 김익두, 박재봉 등)
      4) 전망 - 한국에 신학교가 160개 넘는다. 미주에 한인 신학교가 80여개로 추산하고 있다.
1934년 9월 3일 기독공보 8명에 보면 한국교회 발전을 위한 의견을 물어본 통계가 나온다. 1순위가 교파의 난립을 막아야 한다 52.9%,  목회자의 자질부족, 올바른 의식개혁  30.5%,  개교회주의를 없애야 한다 29.2%
1994년 9월 3일 기독공보 2면에서 한국기독교 학술원장 이종성박사가 통합 교회 산하 목사, 장로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교회 분열에 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교회분열의 원인으로
  목회자들의 개인주의적 영웅심 때문  55.2%
  중심적인 신학사상이 없기 때문에  26.8%
  기타 이유, 신학교 난립, 개교회주의, 세속화

   7. 예수교 연합장로교의 사명
      1) 선교협의체 - CM& A 의 정신, 각 나라의 선교활성화
      2) 복음주의 신앙노선 정립
      3) 목회자 계속 교육의 의무화와 신학교육 강화를 통한 목회자 자질 향상
      4) 1.5세, 2세 등 차세대 지도자 양성과 목회지 마련
      5)
미주 한인교회의 분열“
(1) 불법체류 목사들의 증가
(2) 목사들이 시무할 교회가 없다
(3) 언어, 문화 장애
(4) 교회가 너무 약하다
(5) 목회 행정의 무질서,
(6) 신학교 난립으로 인한 혼란
(7) 교회가 사회에서 점차 빛과 소금의 역할과 사명을 잃어간다

참고서적
김리관,  한미교회 분열사, 서울: 기독교문사, 1995
김영재, 한국교회사,  1992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개정판, 서울: 대한 기독교출판사, 1982
박광선,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어디로 가나 ?  1960
윤사무엘, 미주한인교회 100년의 발자취와 비전, 서울: 보이스사, 2002.
이만열, 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 - 한국기독교사 연구논고, 서울: 지식산업사, 1991

김리관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문제로부터 우리 민족의 교회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신학적, 지방적, 재산, 교권 문제로 분열을 가속화했다.

  조선족 삼자교회들의 분열 사례    

작성자: 인보라
    
길림성 조선족 삼자교회들의 분열 사례

  조선족 교회가 분열되는 것은 아픈 현실이다. 본 자료에 언급된 교회들은 모두 삼자교회이다. 요령성과 길림성에 있는 조선족 교회는 거의 다 삼자교회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다.  이 자료는 비록 7개 교회의 경우를 취급하고 있지만 조선족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분열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자료가 조선족 선교 초기에 작성된 것이지만 지금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수치상의 오류가 있을 수 있고, 확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힌다.

1. 平安基督敎會(黑龍江省 牧丹江市 平安街, 담임교역자 李康喆 長老)
1. 시 주변 처소교회: 약 80개
2. 시내 구역: 3개
3. 등록 교인수: 약 300명(출석 교인수: 100여명, 제직 17명)
4. 교회상황
1) 1943년 북만노회가 목단강에 있을 때 김은숙 권사(현재)의 부친이 북만노회 영수로 잇으면서 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다. 그 후 근래에 와서 1993년 11월에 암임교역자 유영로가 목사안수를 받고 시무하고 잇었으나 최근 1995년 10월 6일에 별세함으로 지도자 부재 상황이 되어 교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음.
2) 현재 교회 청년 중에서 신학교(남경신학1, 동북신학2)에 재학중이나 교회의 내부 분열과 이단의 접근에 따른 교회의 어려움이 가중되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5. 교회분열의 원인
1) 교회내부에 쓴 뿌리 발생.
  1992년 담임교역자(당시 전도사)가 한국과 내통하여 간첩임무를 받고 북한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교인 중의 한 사람이 공안 당국에 고발함으로 담임교역자가 2년 3개월간 가택연금을 당한 일이 있다.
2) 이단의 침투로 내분 발생
  10.28휴거파(1992.10.28 이장림의 휴거파), 안식교, 광야교회(삼자교회 반대파)등의 영향으로 평안교회에 분열이 발생하였다.
  *광야교회는 자체교리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여 삼자교회는 세상 정부의 조종을 받는 음녀교회라고 비판하며 따라서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단의 교회 접근 형태 대부분이 먼저 경제적 지원으로 접근하여 성경공부를 교리공부로 유도하여 기존 교회로부터 이탈시키는 방법으로 교회를 분열시킨다.
3) 단기 선교 명목의 사역자들에 의한 분열 발생
  단기 선교의 명분으로 사전 계획 없이 불시에 방문한 사역자들에 의해서 주변 교회들의 상황판단 없이 금품을 제공하며(처소 지도자에게 직접 전달 방식), 중심교회 지도자와의 사전 연락과 협의 없이 성경공부를 함으로서 이후 교회 내부에 주도권 다툼, 또는 의심, 시기, 질투가 발생함으로 교회가 분열되었다.

2. 長春基督敎會(吉林省 長春市, 담임교역자 지경수 전도사)
1. 시내주변 처소: 13개(원거리 3곳은 별도로 예배 모임)
2. 등록 교인: 약 300여명(출석교인은 200여명)
3. 교회상황
  문화혁명 이후 교회 재건이 시작될 무렵 문혁 이전 교회 집사 직분을 가졋던 자 또는 믿음 있는 자들이 지도자로 등장하여 처소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때 당국에서 교회터들을 헐값으로 처분하는 과정에서 몇몇 집사들이 연합해서 교회 터를 잡아 교회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후 교회내부 주도권 다툼이 발생하게 되었다.
  1990년 지경수 전도사의 부임시에 교회가 3파로 분열된 상태였다. 이는 외국교회(한국, 미국)에서 직접 책임 집사를 통하여 경제적 지원이 됨으로써 교회 내부에서 지도자에 대한 불신과 함께 파벌이 조성되어 분란이 야기되었다. 현재는 안정된 상태이나 아직도 과거 책임집사가 이끄는 노장파들의 처소 모임이 있다. 이 처소들은 아직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자체 예배당이 없어 한족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헌금의 3/10을 한족교회에 재차 헌금하고 있다.
4. 교회분열의 원인.
1) 가난한 교회에 갑작스런 외부 경제 지원이 있음으로 이권을 위한 주도권 다툼이 발생하였다.
2) 교회의 위계질서가 없고, 지도자의 자질 부족으로 교역자의 권위가 상실되었다.
3) 새로 부임하는 전도사와 기존의 평신도 지도자 간에 사전 조율이 없어 강들이 발생하였다.
4) 민족적 기질이 한족교회와 비교하여 분란이 많은 편이다.
5) 현지 지도자와 사전 협의 없는 외부사역자의 처소교회 접근 성경공부 등이 분열을 조장하였다.

3. 永吉縣 基督敎會(吉林省 永吉縣 口前鎭, 담임교역자 차철 전도사)
1. 현내 처소교회: 약 90여겨(비준처소 - 50여개, 군소가정처소 -40여개) 이중 조선족 처소는 25개 정도.
2. 등록교인 : 200여명(출석교인 140여명, 재직 6명)
3. 교회상황
  1991년부터 1995년 9월까지 LA은혜한인교회(김광신 목사)의 영향을 받아왔음. 1995년 동북신학원에 재학중인 차철 전도사의 부임 이후 재미한인교회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만들어 가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의 장로와 연결되어 조건 없는 지원(인민폐 40만원)을 받아 500석 정도의 예배당을 신축하고 입당예배를 드렸다.  
4. 교회분열의 원인
1) 경제적 지원을 빌미로 한 외부 간섭. LA은혜한인교회의 영향아래 있을 동안 내부갈등과 분파 싸움으로 인하여 2회 분열하였다.
2) 이단의 침투로 인한 분열 조장.
  다미선교회의 영향으로 교인 중 일부가 별도 예배 모임을 갖게 되면서 교회에 분파 발생. 현재도 5명 정도가 시내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구원파(복음침례회), 안식교, 레마선교회 등의 활동이 동일하게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성경공부(교리공부)를 하게 됨으로 기존교회의 분열을 야기시킴과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4. 朝陽川基督敎會(吉林省 龍井市 朝陽川鎭, 담임교역자 박동관 전도사)
1. 진내 처소교회: 13개 단독교회, 기타 10명 모임처소 등 다수.
2. 교회 관련 처소(구역): 20개.
3. 등록 교인수 : 300여명(출석교인:180여명)
4. 교회상황
  권사 한 분의 지도아래 교회처소를 꾸려오다가 한국교회의 지원(감리교, 순복음, 기타)으로 교회부지를 확보하여 신축 완료되었으나 경제관련 분란으로 권사님이 물러나고 현재 교역자인 박동권 전도사가 동북신학원 졸업과 함께 부임하게 되었다. 이후 원사님이 이끄는 처소, 권사님을 반대하는 집사들에 의한 별도 처소 등으로 분열되었다가 최근 권사님 처소가 기존 교회로 통합되었고, 아직 반대 집사들의 처소는 별도 모임을 갖고 있다.
  현재 주변 단독 처소들의 난립으로 정부비준은 받지 못하고 있으며 공안 당국의 개입에 의하여 한 처소(연길 시내 관련처소)가 폐쇄되는 일이 있었다. 이때 교인 당 200원, 교회는 2,000원의 벌금을 물었다.
5. 교회분열 원인
1) 처소교회 지도자의 교회 관리능력 부족과 도덕성 문제.
* 외부 사역자(당기 방문자 포함)들이 교회 지도자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금전을 전달함으로써 책임성과 관리능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 지도자가 일반 성도보다 잘 산다는 인식을 주게됨으로 교인들 간에 신심이 저하되었다.
2) 교인들의 의식수준 미달
* 재직들 사이와 교인들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발생하여 소수의 분열이 발생하였다.
* 교회 내부 문제를 외부(종교국, 공안국)에 고발하는 일이 빈번하여 이로 인한 분열 조장.
3) 교리문제와 이단침투
* 주변처소들의 난립으로 기존교회인 삼자교회에 경제적 유혹 등의 영향을 주었다.
* 주변교회 현황 :
  연남교회처소(40여명-연길시내교회)
  신풍교회처소(70여명-미 침례파 영향)
  오순절 성령파(35명-소련에서 유입)
  김목수교회(10여명-호주 공명자 전도사)
  제7일안식일교회 처소(80여명)
  엘리야복음선교회처소(35명)
  기타 10여명 처소 모임(처소교회에서 사소한 다툼으로 분열되어 나옴) 다수.

5. 興安基督敎會(吉林省 延吉市 興安鄕, 담임교역자 박경호 전도원)
1. 교회 관련 구역: 15개
2. 등록 교인수: 300여명(출석 교인수: 150여명)
3. 교회상황
  연길교회의 지교회로 있다가 1994년부터 독립교회(담임 박상화 장로)로 있게 되었다. 이후 박장로의 교회 관리 능력 부족으로 교인수가 300여명에서 70여명으로 떨어졌다가 현재 담임교역자인 박경호 전도원이 맡게 됨으로 다시 교회가 회복됨.
4. 교회분열 원인
1) 무분별한 외부 사역자 접촉.
  * 외부 방문자들에게 무분별하게 주일 강단을 내어줌으로써 교회 질서가 혼란해지고 강단 말씀 선포가 잘못됨으로 교인들이 시험에 들게 하고 분열을 조장하였다.
  * 외부 사역자(박 모 목사-기장, 연변대학 민족교육원)의 잘못된 교회 접근으로 교인들을 유혹(옷장사-공장운영)으로 추종 교인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2) 이단 접근에 의한 교회 분열
*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의 접근으로 1개 처소가 넘어감.
-미 사이판에 노무로 갔던 자가 영향을 받고 귀국하여 교회 구역에 가담하였다. 그래서 영향을 주게되어 한국과 연계하여 계속적으로 경제적 도움과 함께 영향을 받게 되었다.(시내에 복장사를 차리고 계속 영향을 미친다)
-당시 교회 지도자인 박경호 전도원이 해외 연수차 한국에 나가있는 틈을 타서 교회 내분을 조장하려고 획책하였다. 그 이후 교회가 폐쇄 조치되고 교인들을 연행하는 등 교회 모임 자체가 약 1년간 사실상 정지되었다가 모임에 동참하지 않았던 현 지도자(박복순 집사)와 몇몇 교인들이 종교국의 허락을 받아 1993년 8월부터 모임을 시작하게 됨으로 1994년 현재 70여명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는 실정이다.(지도자 박복순 집사는 연길교회에서 하는 성경학습반 1년 과정에 재학중이다)
-1992년 5월 다미선교회 소속 교인 한 명이 침투하여 집회를 인도하면서 병치료를 빙자하여 방언기도, 철야집회를 하게 되었다. 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경고하면서 교인들을 사로잡아 생업도 포기하고 야외 과수원 단지에 나가 금식하며 철야기도를 하게 하였다. 재직 11명 중 9명이 동참하면서 거의 대부분 교인들이 참여함으로 주변 사회에 소문이 퍼지고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연길교회 유두봉 목사와 지역교회 장로, 권사들이 여러번 방문하여 권면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여러 가정이 공안국에서 해결해 주도록 고발하게 됨에 따라 공안국, 종교국이 합동으로 교회를 폐쇄 압수하게 되었고, 예배 모임을 갖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1년 후 동참하지 않은 집사와 몇몇 교인들이 종교국의 허락을 받아 다시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함으로 교회가 양분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최근에 폐쇄 압수하였던 교회 건물을 당국에서 매각처분하였는데, 매입한 사람에게서 이단에 넘어갔던 교인들이 다시 교회 거물을 매입함으로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국에서는 문제의 교회건물에서 집회하도록 허가를 내어주지 않겠다고 한다. 아직 남은 이단파 20여명이 모임을 갖고 있는데 연길의 신풍교회(중국기독교침례회-미국 침례교파에서 지원)에서 지원하여 처소를 만들게 하고 폐쇄된 건물을 매입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말미암아 지역교회의 이미지가 실추와 분열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6. 開山屯基督敎會(吉林省 龍井市 開山屯鎭, 지도자 이영덕, 전동일 집사)
1. 진내 구역: 3개
2. 등록교인수: 100여명(출석교인수: 20여명)
3. 교회상황
  용정교회 관할지역의 처소(담임 이영덕 집사)이며 1991년도 한국 수원 매산교회의 교회 건축 지원이 있게 되어 교회건축이 시작되었다. 이후 지도자에 대한 금전의혹이 생겨 교회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 청년들이 노집사들을 구타하는 등 교회 분란이 생김으로 종교국, 공안국이 개입하여 처소모임 불가의 지시가 내렸다.
  용정교회(박영호 목사)와 장로들의 중재가 실패하고 교회 내부의 갈등과 다툼이 심화된 상태에서 노장파(이영덕 집사패), 소장파(전동일 집사패)가 한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오전, 오후로 드리게 되는 상황으로 발전되어 종교국에서 하나로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문제만 더욱 커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한국의 지원교회 관계자가 때늦은 몇 번의 방문이 있었으나 하나로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깊은 갈등과 오해 속에 우뚝 서 있는 교회 건물이 도리어 세상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한편 95년 12월에 소장파 지도자인 전동일 집사의 가택수색과 함께 종교서적을 압수하고 정치적 발언에 대한 문책으로 공안 당국에 기소되어 있다.

4. 교회분열 원인.
1) 동정심에 의한 무분별한 금전지원 - 지도자와 교인간의 불신 조장.
2) 지도자의 소명의식 부재 - 하나의 직업처럼 교회일을 관리하여 지도자의 권위를 상실하였다. 그리하여 교인들의 마음이 분열되었고, 교회의 역할은 무기력하게 되었다.


7. 西城鎭基督敎會(吉林省 和龍市 西城鎭, 담임교역자 박복순 전도원)
1. 진내 구역: 5개(1996년도 10개 구역 확장 예정)
2. 등록교인수: 130여명(출석교인 70여명)
3. 교회상황
  1989년 10여명이 가정교회(정기도집사)로 출발하여 1년 후 80여명이 모이고 제직도 11명을 세우게 되었다. 교인 중 한국 친척의 도움으로 교회 건물을 신축하게 되었고 1992년 10월에는 200여명의 교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92년 5월 한국의 다미선교회에서 여자 한 사람이 와서 성령치료를 한다면서 병자를 위해 방언기도를 하고 요란한 집회를 인도하고 간 이후부터 교회 제직 9명을 포함한 대부분의 교인들이 92년 10월 28일 예수재림을 기다리며 일을 하지 않고 금식, 철여기도 등으로 일관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 길림성 조선족 삼자고회 분열의 주된 원인
1. 지도자의 자질 부족
1) 말씀의 빈약(소명의식 결여)
2) 교회관리 능력 부재
3) 교역자 권위 상실(위계질서 부재)
4) 신임교역자 부임시 협력의식 부재(주도권 다툼)
5) 외부사역자에 대한 분별없는 강단 허용
6) 교회 내 인재 부족으로 사역자 자질 저하 요인 발생

2. 무분별한 외부지원과 간섭
1) 선교 실적을 위한 분별없는 경제 지원
2) 지도자 개인에 대한 동정심과 금전 제공
3) 지원의 우선순위 무시(말씀이냐 예배당 건축이냐?)
4) 사전 협의 없는 성경학습

3. 이단의 침입
1) 지도자 및 교인들의 이단에 대한 지식 미흡
2) 구역관리 허술로 이단침입 대비 미흡
3) 교인들의 의식수준 미달로 쉽게 동화(말씀 빈약, 기복신앙, 경제적 이권, 병고침 등에 민감)

4. 사소한 교회의 내분
1) 제직들 간의 화합의식 부족
2) 인척지간의 교회사역으로 교인간 불신임과 파벌 조성 위험.
3) 교회 내부 일에 대한 해결 능력 부족.(종교국, 공안국 개입 유도)
4) 기타 사소한 분쟁으로 소수 분열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