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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들의 사회복지사상

2008.06.21 01:22

오해춘 조회 수:1197 추천:50

 

족장들의 사회복지사상

  구약성경은 창세와 신민인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 대한 역사적 기술이다. 물론 고대의 유대인에게도 이 문서는 신의 계시였다. 구약성경 기술은 J(야웨문서), E(엘로힘문서), D(신명기문서), P(제자장문서)문서의 편집으로 구성된 책이다. 그 중 가장 오래된 편집문서로는 J문서를 꼽는다. 이 문서는 메시아사상을 나타내는데 주로 히브리인의 조상 야곱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야곱은 자기영달을 구하는 복을 갈망했다(창32:25-29). 야곱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구한 것은 복지를 구하는 마음이 아니고, 자신의 환도뼈를 빼앗겨도 하나님과 대결하여 축복을 받아내는 심정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이 축복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행복을 얻는 것이다.

  또한 욕구를 채운 야곱은 프로메데우스(prometheus)이지 욕망의 성취자 메시아는 아니다. 복지를 하나님의 은혜로 갈망하는 마음의 믿음인 메시야가 아니라 행복을 자력으로 구하려는 환상적인 프로메데우스였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야곱의 이야기는 자아추구에만 멈추지 않고 메시야의 복지사상을 말하고 있다. 즉 구약성경은 사람과 하나님의 축복이야기로 전개한다. 그러나 야곱을 제외한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패배와 굴복으로 끝나고 있다.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싸운 사람들의 실패를 말하고 있는 이야기는 결국 인간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복지사상을 낳게하는 산파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야웨(Jahweh)사상에 나타난 복지 이야기는 세 종류의 복지내용이 담겨 있다.

① 개인의 구제이다. 노아의 방주(창7:3)의 구제와 소돔의 멸망에서 롯의 구제(창19:19), 아브라함의 부르심(창12:3, 27:29)에서 개인의 구원은 다음 후손들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 복지구원이라이라고 할 수 있다.

② 자손과 일가의 축복이다. 구약성경의 족장들은 자손을 갖는 복지를 희망했다. 그것은 자손으로서 후계로 삼아 복을 이어주기를 절실히 바랬다. 아브라함은 야웨 하나님께 아들을 갖기를 원했다(창15:3-4).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아들이 없음으로 몸종인 애굽인 하갈과 동침하기까지 하여 아들을 갖기를 원했다(창16:1-2).

  그리고 모압족속의 조상인 롯은 그의 두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모압’, ‘벤암’의 아들을 낳기까지 하였다(창19:30-38). 이처럼 야웨문서에는 하나님이 자식의 복을 주시는 분으로 말한다(창30:2). 더욱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으로 땅의 띠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 진데 네 자손도 세리라”(창13:16). 자손이 대를 잇는 복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까지 이어진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23:14). 자손과 함께 토지의 복을 주신다.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창24:2). 이같은 땅에서 이삭의 자손들(창26:22)과 야곱의 자손들에게 편만하게 복을 내려 주신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38:14). 실제로 야웨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야곱의 가문을 복되게 하신 하나님이라 볼 수 있다(출1:1).

③구약의 복지사상은 먼저 하나님의 구원이 나오고 다음으로 복지가 따른다. “네가 이 시대에 내 앞에서 외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7:1) 이 말씀은 인간타락으로 멸절시키기 위한 계획과 더불어 순결한 영혼을 보존하시고(창7:23) 그들로 하여금 새 창조 복지역사를 계획하셨다. 애굽 땅에서 우박재앙이 내렸을 때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무릇 밭에 있는 것을 쳤으며 우박이 밭의 채소와 들의 나무를 꺾었으되(출9:25)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한 고센 땅에는 하나님이 우박을 내리지 않고 그들을 구원한 것이다. 또한 애굽에서 장자에게 재앙을 내렸을 때 재앙을 피하도록 하셨다(출12:23).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재앙에서 구원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민족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감찰하시고 고난을 듣고 계셨다(출4:31). “네가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들을 권고하여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출3:16). 이렇게 야웨하나님은 고난에서 구원하시는 신이시며 이스라엘 아이들이 바로왕의 손에서 죽임을 당하게 될 때 그 위기에서 산파를 통해서 구원해 주신다. 출애굽하는 백성들을 쫓던 바로의 군대로부터 구원해 주신다.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출14:13-30)“고난과 박해의 애굽에의 땅에서 인도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동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보호”(창14:7)하셨다. 그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도록 도와 주신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출14:14). 여호와는 결국 그가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라고 외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무리 고난을 당해도 신으로부터 보호받고 고난에서부터 번영했다(출1:12-14). 이스라엘 민족의 복은 땅이 주어졌고(창12:7) 또 주어진 땅은 넓고 그 땅은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에덴의 낙원과 같아서 꿀과 젖이 흐르는 땅”(출3:8-17)이었다. 이렇게 민족은 복을 보장받아 홍수, 저주, 적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다(창8:21).

  이스라엘의 사회복지사상은 야웨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때 사회적 복지란 야웨하나님의 구원이 전제한 말이다. 즉 이스라엘 복지는 그 당시 종교적인 사회를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내리신 십계명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 사회복지사상은 종교 자체를 말하거나 아니면 사회복지가 종교를 규제할 정도로 강한 임무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사회복지가 절대 필요한 곳이었다.

  그 이유는 이집트나 바벨로니아 문화권 속에 쌓여 있어 양대 문화권이 합류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양대 문화권 사이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언제나 이질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되는 삶에서의 위협은 그들의 실존 자체를 흔들어 놓았고, 야웨를 섬기는 신학적인 이스라엘인의 종교적인 특수성과 동시에 그곳 원주민 가나안의 풍속과 실습에서 일어나는 보수성 때문에 언제나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구별하면서 공동체의 규범을 정해야만 했다. 그들이 정한 규범을 지키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종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신23:21). 그들에게 약속하길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인도하여 사막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며, 과부와 고아, 외국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면 그들은 나라를 정복하고, 그들의 자손이 바다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큰 민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면 적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지켜야 할 법을 어길 때 하나님은 패전과 적의 침략과 내부적인 사회압력 등으로 혼란을 격게 될 것이라고 변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의 사회복지공동체는 선과 악에 대한 신적 계시의 전달수단이 되었다. 그들이 실천해야 할선과 하지말아야 할 악은 언제나 그 사회의 하나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선민은 원래가 그들을 통해서 사회복지의 핵심인 하나님나라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임무를 띄고 있었다. 모든 인류의 복지가 의존되어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조건은 일련의 계약(Covenant)속에 계시되어 있다. 구약성경에서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전제하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어떠한 좋은 일을 실천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위로는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는 데에서 자신의 인격을 유지해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집단공동체가 국교적 공동체로서 상부상조하는 사랑의 유대를 지켜나가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