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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보리피리 김정호

2008.11.14 22:52

김성찬 조회 수:3329 추천:56



영혼일기 126: 보리피리 김정호

2008.11.14(금)



그의 눈물은 통속소설,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김한길)라는 제목을 기억나게 했다. 하여 난 낙타는 울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아니 낙타는 운다고 생각해 왔다. 내 어릴 적, 울 엄마는 그 불같은 시험 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시다가도, 우리가 뭔가를 눈치 채는가 싶으면, 얼른 말꼬리를 돌리시곤 했다. “바람이 매워, 눈에 티가 들었나봐.”


그는 눈시울을 몇 차례 붉혔다. 초면인 내 앞에서.

그는 그 사막에서, 의미 없는 의미를 찾아 헤매는 황량한 사막에서, 그는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메마른 사막에 젖어 있는 건 낙타의 눈뿐이야, 낙타는 결코 따로 울지 않지만 말이야.”


김정호.

젖어 있는 건, 그의 눈뿐이었다.

난 그 눈물이, ‘절정(絶頂)에서 자진 낙과(落果)한 꽃의 눈물’이라 명명했다.


젊은 나이 혁혁한 목회적 성취를 이루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한통의 메일이 비수처럼 그 심장에 꽂혔다.


아브라함의 부름  


보낸날짜  2005년 10월 28일 금요일, 오전 07시 10분 03초 +0900 

보낸이   "이강천" <barnabas@kehc.org> 

받는이  jungho304@hanmail.net


사랑하는 김정호 목사님 내외분께


오늘 저는 김 목사님 내외분께 진지한 부름을 전하려 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름만큼이나 중요한 그리고 결단을 요하는 부름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셔서 여기 바나바 훈련원 총무가 되어 저와 동역하면서 이 한국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세계 선교의 부흥을 위하여 봉사하셔야 되겠습니다.


(중략(中略), 다들 떠난) 훈련원에는 나만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추수의 주인이신 주님께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달라고 여러 날 기도하는데, 며칠 전

김 정 호

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로 온 이름인가하여 며칠 기도한 후 틀림없는 듯싶어 나는 결심하고 김정호 목사 내외분을 이곳으로 부릅니다. 아마 하나님의 부르심일 것입니다. 물론 여기는 목회하는 자리처럼 영광스럽지는 못하겠지요. 출세지향적인 생각으로는 못 오는 곳입니다. 오직 부르심과 사명으로만 올 수 있는 곳이지요.


김 목사님 내외분의 봉사로 수많은 목사들이 힘을 얻어 일어나는 것을 보십시오.

오십시오.

주님의 지시를 확인하는 기도의 시간을 1주일만 드립니다. 11월4일까지 답을 주십시오.  기도해 보시고 12월1일부로 부임하시도록 결단해 주십시오. 기대합니다.


2005/10/28

이강천 드림


“봉사하셔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정언적 명령이었다.


그는 이 명령 앞에서 신음을 했다.


알알이 영그는 보리알의 꿈이

토막으로 허리잘려 신음한다해도

후략(後略)

(보리피리/이강천)


그는 그의 원대한 목회적 비전이 “토막으로 허리 잘리”는 “신음”을 쏟아냈다. 기도 굴에 들어가면 그의 몸은 바나바에 있었고, 그 굴 밖으로 나서면 주문진교회의 찬란한 비전이 그의 맘을 사로잡았다.


“(다들 떠난) 훈련원에는 나만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9-13).”


그는 그를 좇기로 했다.

보리피리 된 그를 좇아 보리피리 되기로 결단했다.


그 힘든 결단의 시기에 주님께서는 들에 핀 백합화를 통해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날 석양 무렵 그는 한그루 감나무와 마주한다. 까치밥만 남긴 감나무를 응시하던 그에게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호야, 창조주인 내가 저 감나무의 남은 열매들을 대자연의 몫으로 남겨 두듯이, 주문진 교회는 나에게 맡기고 넌 그 광야로 가라!”


바보. 그 순전한 영혼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그는 목회적 성취도, 그 열매와 보람도 전무한 광야로 향하기로 했단다. 자녀들을 위한 교육적 환경이 열악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군다나 물질적으론 너무도 형편없는, 그 사례비가 주문진교회의 삼분의 일에 정도 밖에 안 되는 핍절한 광야로 나아가기로, 그는 결단했다. 


전략(前略)

당신 숨결에 불려지는 노래라면

보리피리되어 좋으리

보리피리되어 좋으리

(보리피리/이강천)


그는 “당신 숨결에 불려지는 노래라면,” 보리피리 되겠노라 결단했다.

 

사모님의 동의를 구한 후, 그는 아이들을 설득해 나갔다. 고등학생이던 큰 딸 아이가 “됐네요” 라고 퉁명스런 대응을 한 이틀 후, 문자로 “주께서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나도 나서겠다”는 답을 보내 왔었단다. 그 후, 초등학생이던 아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염려하며 기도하던 중, 어느 날 스쳐지나가며 아들과 함께 바라본 전원교회를 가리키며, “저 교회 멋지지 않니?” 라고 말을 건넸더니, 그 어린 아들이 “전 지구 교회 중에서, 우리 주문진 교회가 젤로 좋아”라고 답하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었노라 그는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닉네임이 ‘갈매기의 꿈’이다. 그는 그 어린 아들을 데리고 주문진 바닷가로 나아가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고차원적인 설득으로 그 아들을 설복시켰단다. “그 말이 그 말이야?” 어린 아이가 응답했단다. 그 아이는 세례요한 이후, 사람이 낳은 아이 중 가장 총명한 아이임에 틀림없다.


말없이, 이강천 목사님의 ‘소환장’을 당회원들 앞에 내어 놓자. 당회는 울음바다가 되었고, 그는 생명을 건 예루살렘 행에 앞서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과 눈물로 작별을 고한 바울사도처럼(행20:17-38), 그 발길을 사막으로 돌렸다.    


그의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하나님’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광야의 청사진은 빚 없이 새 건물을 신축하는 것이었고, 그는 우아하게 광야의 영성을 닦는 수도자일 거라는 제안만을 받았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그의 힘의 권능으로, 그를 통해 벌떡벌떡 일어나는 역사만을 그는 꿈꿨다.


그러나 그는 폐교된 시골분교의 ‘소사’일 뿐이었다. 그 너른 바닥을 쓸고, 닦아야만 했고, 그가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 변기구멍 깊숙이 손 내어 밀어 그 찌든 구린내를 제거해야만 하는 처절한 설움은, 그의 끝 간 데 없는, 돌이킬 수없는 수렁이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그는 그 화장실에 풀썩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그랬다. 그 사막에서 그가 좇은 것은, 신기루였다. 그 허망한 것, 아무리 퍼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노역, 그 무엇도 쥐어지지 않는 공허. 그는 자신을 뱃사공에 비유했다. 한배 가득 사람들을 물 건네주고, 홀로 쓸쓸히 그 빈 배를 저어 석양을 넘는 허허로운 뱃사공.


그는 몰랐단다. 이런 무의미를 의미로 삼는 사역이 기관사역이며, 총무의 일이라는 것을. 거기다 더해 그 훈련원 건물을 신축하면서 당한 숱한 어려움과 경제적 어려움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과업이었다며, 자신의 눈을 가리신 하나님을 그는 ‘거짓말하신 하나님’이라 불렀다.


그가 몸담은 곳은, 교육원이 아니다. 훈련원이다. 그는 착각한 것이다. 교육이란 교육목적이나, 목표를 먼저 제시한 후 실시하는 일이지만, 훈련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논산 훈련소에 가보라. 조교들이 저 축구 골대를 돌아오면 당신네들의 체력이 지금보다 곱절로 좋아질 거라 일러 주던가? 그저 속된 말로 먼저, 뺑뺑이를 돌리고 본다. 그런데 그 목적도, 목표도 한마디 일러 준적 없는 훈련의 결과가 ‘우수하고 강한 군사’ 정병(精兵)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 그는 훈련원에 들어왔다. 그 하찮은(?) 모진 고생을 전혀 예상치 못했었지만, 하여 그가 하나님에 대해 이런 저런 수식어를 갖다 붙였지만, 그래도 그는 그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했다. 그 화장실 변기 속을 밀다가,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 종아! 참 미안하고 죄송하다. 그러나 네가 밀어 닦고 있는 그 변기통에 누가 앉아 힘쓰겠느냐? 선교사들, 복의 근원, 축복의 통로. 세계적인 나의 종들의 뒤치다꺼리하는 너는 세계적인 나의 종이다.”


그는 교황도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로렌스형제처럼, 허드렛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임재연습’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임재연습에 매진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사모님은 적극적으로 ‘조리사’자격까지 따내어, 오늘도 그 까다로운 목회자들의 입맛을 돋우고 계신다.  

  

그는 눈이 크다. 쌍꺼풀진 눈은 연한 암소를 닮았다. 밭 갈고, 논 갈고 평생 죽도록 일만하다가 죽어, 주인 밥상 오르는 죽도록 충성하는 겸허함이, 그 눈빛에 녹아 있다. 그의 언어는 나직하다. 나직하여 묵직하다. 범접할 수없는 겸손이 그의 몫이다. 그래서 그는 일선교회 목회자로서 그 사역에 승리했었을 거다. 지난 추석에 주먹이 산山만한 조폭 같은 하청업자가 돈 달라고 훈련원에 찾아 왔었단다. 그런데 그는 원장님 모르게 그를 설복시켜 돌려보냈단다. 난 그 그림을 상상해 봤다.  김정호목사. 그 겸허한 인간에 대한 몸에 밴 삶의 태도가 그 고혈압을 누그러뜨렸을 거라고. 그는 돈도 없이 시작한 20억 공사에 샌드백 된 조정자였다. 그리고 오늘 그(들)는  물질적 환란을 통과하고 있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광야의 기적, 그 의미를 절감하면서. 그 바닥에서 하늘을 보며, 그는 말했다. “신앙의 용맹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습니다.”

 

신앙의 용맹 - 그는 담대하다.
그 담대함은 내려놓음에서만 가능하다.

그 광야에서 사모님께서 중병에 걸렸단다.
무서운 자궁암.
김정호는 기도했단다.
담 대 하 게.
"만일 안고쳐 주시면 난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다 내려놓은 자의 담대함에, 성령께서 움직이셨단다.

"예수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기적입니다."
그 담당의사가 고백했단다.

그런 그네들에게 독사에 물려 죽어가는 강아지를 안수로 살려내는 일은 일도 아니었겠지.

이런 일도 아닌 일을 체험하며 산다. 그네들은.
담대함. 그 자기비움의 충만을.


하나님은 정확하셨다.

그 원조 보리피리 이강천의 노래는, 보리피리로만 협연할 수 있기에, 보리피리 주니어, 김정호를 강권적으로 그 광야로 불러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고, 하여 바나바 훈련원은 그 대(代)를 이어가는 보리피리들로 그 힘든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하고 계신다. 여기에 바나바훈련원의 생명력과 내일이 있다.


그 아이들은 이제 잘 자라서, 세계 선교 비전을 바나바와 공유하게 됐노라,

그는 주께 감사해 했다.


우린 헤어졌고, 그 후 그가 보내 온 메일을, 난 다시 연다.


존경하는 김 목사님, 찬미예수!


하얗게 내린 새벽 서리에 움츠린 낙엽을 밟으며 하루의 문을 엽니다.

모두들 가신 이곳은 고요한 적막이 흐르며 주님의 임재 속에 호흡합니다.


목사님과의 만남은 제게 행복이고 즐거움이었습니다.

어제 아침 식탁에서 나눈 교제가 즐거웠습니다.

광야의 식탁이라 더 행복한 것 같지요.


말씀하신 이강천 목사님의 부름의 메일을 드립니다.

좋은 지도와 우의를 기대합니다.


김정호 드림.


그랬다. 

"모두들 가신 이곳은 고요한 적막이 흐르며 주님의 임재 속에 호흡합니다."


그는 이제 그 적막 속에서도 주님의 임재를 호흡한다.

이젠 됐다.

난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존경하는 김정호 목사님


목사님을 만나고 돌아 선 지금,

우린 너, 나 할 것 없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 내려놓음에 대해, 그 본질에 다가가기에 대해.

그 겸허한 순명에 대해, 그래서 평온한 강력에 대해.


칭찬과 격려가 오히려 더 큰 짐이 될 거라 여기면서도,

우린 바나바 총무님을 칭송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러나 행여 이후 목사님께서 그 어느 편을 택하셔도,

 우린 오늘의 목사님을 존경할 겁니다.)

 

 김성찬드림


여기, 그분네들을 형상화한 자화상, '보리피리' 전문을 새겨본다.

 

보리피리/이강천 


알알이 영그는 보리알의 꿈이

토막으로 허리잘려 신음한다해도

당신 숨결에 불려지는 노래라면


보리피리되어 좋으리

보리피리되어 좋으리

 

*김정호목사님께 들려주고픈 노래가 있습니다.

  이 홈피 나눔터-생각나누기에 있는

  290번 바람에 저항하는 라이온, 입니다.

  꼭 한번 들어 보세요.

 

보장된 미래와,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케냐에 국제 의료 봉사자로 떠난 한 일본 의사가, 3년만에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 보낸 편지의 내용에 사다 마사시가 곡을 붙였다.

 



 노래마을 출신 최영주의 노래입니다.

 

바람에 저항하는 라이온

갑작스런 편지에 놀랐지만 무척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제게 실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제부터 이곳에서 보내게 될
제 귀중한 하루하루를 의지할 곳이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이로비에서 맞이하는 세번째 봄이되어서야
새삼스레 북한산 자락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가 그립군요.
고향의 진달래가 아닌 당신이 계신 서울의 진달래가
그리운 것은 왜 일까요. 이상하네요. 이상하네요.

3년동안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느낀
그 감동의 시간을 당신과 나누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빅토리아 호수의 아침노을 백만마리의 플라밍고가
일제히 날아오를때 암흑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