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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세 사람 이야기

2009.09.03 23:26

김성찬 조회 수:3037 추천:59

영혼일기 374: 세 사람 이야기

2009.09.03(목)


 

오늘은 특별한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 한 사람은 보석 같은 존재고, 다른 한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이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적임자다.


나는 오늘을 기대해 왔었다. 적어도 어제부터, 멀게는 그 천년 전부터. 그 특별한 사람을 위한, 그 특별한 사람에 의한, 그 특별한 사람의 날을 고대해 왔었다. 내 유별난 약자와 희생자를 위한 본능적 배려가 그 특별한 만남을 희구했다.

 

시간 순으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첫 번째 분은 보석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 분은 내가 접속을 예상했거나, 접속을 고대한 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분과의 장시간에 걸친 유선상의 대화는 오늘 우리 기독교대한성결교단이 당하고 있는 정치적 난국이 초래한 어쩔 수 없는 접촉이었다. 지난 8월 25일(화) 총회장 권석원 목사의 느닷없는 사의표명으로 표류하는 교단의 정치와 행정의 책임을 도맡아야만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게 된, 부총회장 원팔연 목사님께서 이 아침에 나에게 전활 주셨다.

 

그분은 보석 같은 존재다. 우리 교단의 보배다. 나는 그분을 몇 차례 접촉하면서 맘속으로 그런 생각을 자연스레 갖게 됐다. 그래서 겉으로는 표현한 적은 없지만, 늘 맘속으로 이 보석 같은 목회자를 우리 성결교단의 간판으로 내 세워,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그분의 복음적 열정과 인격적 감화력이 곳곳에 미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그분이 나에게 전활 넣었다. 어수선한 총회적 현안에 대한 협력과 도움을 그분은 나에게도 요구하셨다. 내가 총회 실행위원이고, 지방회장단 협의회 회장이라서 나에게 '공적' 차원에서 협력을 구하신 것이다. 나는 그분의 호소를 한동안 들었다. 그리고 최근 만천하에 불거진 그 불협화음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전했다. 그리고 분명히 말했다.

 

나는 총회 결의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 개인적 판단보다 앞선다. 나는 공동의 결의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뒷말하거나, 뒷북치는 행위의 정당성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마당이 깔려 있고, 공론화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비겁하게 침묵하고 뒷공작하는 세력들을 나는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회의 행정적 질서를 나는 중시한다. 공사를 분명히 하는 임역원이 되어야 한다. 관계의 바른 관계를 이해하고, 그 바른 관계를 잘 유지해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누구누구에 대한 그 어떤 음해공작이나, 난무하는 유언비어에도 나는 관심이 없다. 나는 오직 공명정대한 총회 행정과 온전한 복음 보수를 위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직임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구에게 오해받을 만한 정치적 행보나, 뒷 담화를 거들거나 부추기지 않았다. 최근에 있었던 지방회장단 협의회에서도 나는 이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 사태의 추이를 기도하며, 지켜보자고 정리했다. 행여, 이런저런 잡소리가 오가고 있을지라도 나와 우리 지방회장단 협의회의 공동 결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덧붙였다. 교단을 어지럽히는 정치 모리배들의 준동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길 소망하며, 그 악한 의도를 공론화하는 도구, 한국성결신문의 행패를 나는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함께 발했다. 다시 만남을 약속했다.

 

바람이 분다. 교단 정치의 지각변동이 예감된다. 총회장의 사의표명은 자신의 건강상의 위기나 그가 험한 세파를 헤쳐 오는 과정에서 드러난 허물이 그 일차적 이유였겠지만, 둘 째 가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 한국성결신문으로 대변되는 무소불위한 권력집단의 부도덕한 정략의 끝을, 그가 보여줬다고 난 생각한다. 그는 그 권력집단의 최대 수혜자임과 동시에 그 권력집단의 희생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무소불위 부도덕한 권력을 휘두른 세력들이 이제 그 도덕적 한계를 드러내 보이면서, 서서히 몰락해 갈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 균형 잡힌 시각을 지닌,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말없는 성결한 다수가 그 도덕적인 힘을 보여 줘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시기가 도래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을 우리 성결공동체가 다 같이 깊이 음미했으면 한다.

 

바로 이런 관점에 서서 나는 새 지도력에 기대하는 바가 적잖다. 아니 그 누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새 지도력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함께 기억해 내야만 한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편이다. 늘 민중이 새 지도자였다는 역사적 불변의 사실을. 그리고 그 시기의 흐름을, 시대를 읽는 눈이 있는 도덕적 다수만이 그 역사를 새롭게 창출해 냈다는 사실을. 우린 기억해 내야만 한다.

   

12시 정오. 나는 오늘의 주인공인 두 번째 사람을 만났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이다.

 

서울 역 그릴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에 나는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놀랬다. 나는 고르바초프가 내 눈에 서 있는 줄 알았다. 그는 많이 늙어 있었다. 그의 아내, 사모님은 무려 10kg이나 살이 빠져버렸다며, 뼈아팠던 지난 시절을 눈물로 회상했다.

 

차성완 목사 부부. 그는 날 만나길 거부했었단다. 내가 이 시점에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이며, 또 교권을 쥐고 있는 지방회장인 김성찬이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는지 알 수 없어 불안 했던가 보다. 내가 아는 차성완 목사는 순전하게 주님만 사모하며, 사십일 금식을 해 가면서 교회를 개척한 성실한 개척자였다. 그런 그가 교단(지금은 자폭한 모 지방회)에 의해 파직출교, 세상 법정에서는 횡령죄라는 명목으로 갖은 혐의를 받아 왔었단다. 그 애통하고, 절통할 모진 세월의 고초는 그야말로 형극의 세월이었단다. 목회는커녕, 그 터무니없는 혐의에 시달려 온 가족이, 그 자랑스런 명문 목회자 가문이 영육 간에 일순 초토화되어 버렸단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이겼다. 이겨냈다. 목회자로서의 소중한 명예를 한 순간에 강탈당하고, 자신이 세운 교회가 목을 조르는 기막힌 처사에 숨통 끊어지는 고통 속에 그는 폭삭 늙어 있었다. 살아 숨 쉬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그들은 그 누구도 이해 못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의 세월을 근 4-6년여를 겪어 왔단다. 그러나 그들은 최후 법정에서 이겼다. 횡령죄의 혐의를 벗어 내 던진 것이다. 고등법원까지 그들은 횡령 범이었으나, 공평하신 하나님은 그 어려운 대법원 판결에서 그들 편에 서 주신 것이다. 무죄!

 

한동안 말없이, 말을 주고받으며 우린 조촐한 오찬을 나누다 헤어졌다. 난 그들의 이야기만 들어줬을 뿐, 그들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거스를 이유도 없었다. 더 이상 자극하거나, 섣부른 권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말에 동의해 주고, 그들의 결단에 앞선 결단을 추임새로 넣어주는 일만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악질적인 교권에 파멸당한 그네들의 심신 회복을 위해 내가 도와줄 그 무엇도 없었다. 당신네들이 원하는 대로, 하고픈 대로 하시라고 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나는 공정한 행정만을 하겠노라 말했다. 숱한 의구심을 안고, 마지못해 날 만나러 왔던 그 늙어버린 부부는 그렇게 돌아갔다.

 

난 눈물이 어렸다. 사람이 짧은 한생 살아가는 동안, 이런 모진, 다시 재기하기 힘든 이런 기가 막힌 시련을 겪는다는 것이, 과연 그 섭리론으로도 쉽게 이해하기도, 풀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교권을 가진 자의 도덕적, 신앙적 각성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통탄할, 기가 막힌 사건이었다. 그래 나에게 허락하신 이 귀한 교권 공정하게 구사해야만 한다. 사람을 죽이는 쪽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편으로. 보다 약한 자에게 한 도움이 되는 편으로. 정말, 정말로. 오~ 주님!

 

세 번째 사람 그는, 적임자다.

 

나는 어제부터 오늘 오후 내내, 맘속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 강단에 적임자를 세워 주시라고. 내가 추구하고 있는 불편부당한 행정. 그 공정성의 구현을 위해서. 그 행정의 공정성은 사람 선택이 바로미터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

 

우리 서울중앙지방회는 오는 11월 8일(둘째 주일) 선교대회의 강사로 이신웅 목사(신길교회)로 오늘 오후 최종 선정했다.

 

그분을 선정하기까지 여러 인사들이 거론됐었다. 그러나 먼저 거론된 그분들 모두가 그날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해서, 최후 카드였던 이신웅 목사님께서 선정되셨다. 그러나 그분은 최후 카드가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는 최우선 카드였다. 왜냐하면 이번 선교대회는 '제주선교 60주년 기념교회 공동설립'이라는 땅 끝 선교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서울중앙지방회 행정구역 내에 교회를 설립하는 목적이 그 선교대회의 개최 목적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선교지를 지방회 밖으로 선정했기에 자연스레 이번 선교대회의 슬로건은 그렇게 결정될 수 있었다.

 

하여, 어제 아침 우리는 전도부 실행위원회에서 강사를 선정했다. 그 누군가가 제주선교를 위한 목적 있는 대회라면, 제주에서 목회 해 보신 분이 어떻겠느냐는 말이 나와서, 나는 그간 제주를 두어 차례 오가면서 알게 된 정보로, 이신웅 목사님을 추천했다. 그분은 제주제일교회 담임으로 계셨던 분이다. 그리고 그 척박했던 성결교회 선교 불모지에서도 큰 부흥을 일으키셨고, 그런 목회적 역량을 인정받아 우리교단 빅 파이브에 드는 신길교회 담임으로 부임해 오신 분이다. 그리고 그런 지역적 목회 경험이라는 그분만의 특성 뿐 아니라, 전도와 선교적 메시지가 요청되는 선교대회 강사로도 그분은 적임자다. 왜냐하면 그분의 교회는 이 어려운 시기에도 전도 열풍이 불어, 교회가 이제 1만 명을 돌파했다는 신문의 보도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관점에서 이번 선교대회 강사로는, 그분만한 적임자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적임자를 일부 여론이 정치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나는 내심 안타까웠다. 그분은 결국 최종 결정 단계에서 거론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난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친히 적임자를 최종적으로 선정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제 오후, 우리가 공동으로 선정한 후보자들이 줄줄이 여러 여건 상 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 회의에서 거론되지 않은 또 다른 한분을 지방회 어른을 통해 접촉 중이라는 전도부장의 현황 보고를 들었다. 난 밤새 맘으로 기도했다. 적임자가 선정되게 해 주소서. 아버지!

 

그리고 오늘 오후 최후, 선교대회 강사로 적임자인, 이신웅 목사님께서 선정되셨다.

 

난 오늘 그 적임자 선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신 분과 통화를 했다. 적임자를 모시자, 그리고 우리 서울중앙지방회가 서울남지방회 2중대가 아니지 않느냐? 우리가 어떤 지방회냐? 모교회가 있는 기수지방회가 아니냐? 우리가 모든 분들을 품어야만 한다. 그 화해와 협력을 교단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명이 있는 지방회다. 다시 중앙시장론을 발했다. 남부시장은 남쪽 사람들만, 서부시장은 서쪽 사람들만 가는 시장이지만, 중앙시장은 그 어느 동네 사람이나 다 오갈 수 있는 시장 아니냐? 우리 서울중앙지방회가 그런 모두를 품는 어머니 지방회가 아니냐? 다 품자. 만일 그 어떤 불평불만이 터져 나온다면, 내가 막겠다. 나에게 맡겨라. 나는 기백 있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호언장담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선교 불모지 제주 선교에서 승리한 그분이야말로, 제주선교의 의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최고 적임 강사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떤 자리도 적임자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실증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선 적임자를 세우는 공동의 노력이 우리 신앙공동체를 살찌우게 할 것이다.  

 

오늘 나는 기이하게 교단과 우리 지방회의 어제, 내일 그리고 오늘과 연관된 인물들과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결과도 얻었다. 감사했다.

 

이 귀한 하루를 허락하신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이 귀한 하루가 될 수 있게 어려운 용기를 먼저 발해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바람이 서늘해지고 있다. 심판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남은 기간, 교권의 공명정대한 집행을 위해 노력하리라. 이 부족한 사람을 돕는 이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 서 주길 간절히 기원하며,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 하늘의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 시편 2편 1-4절.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 19장 18절.

 

기쁜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