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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 회춘동기(回春同期)

2010.07.26 22:54

김성찬 조회 수:3332 추천:58

영혼일기 574: 회춘동기(回春同期)
2010.07.26(월)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시오도스(Hesiod)는 『노동의 나날』에서 인류의 다섯 시대 중 그 첫 시대를 황금시대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다섯 시대는 황금 시대→은의 시대→청동 시대→영웅 시대→철의 시대로 진행되어간다. 그가 구분한 인류의 다섯 시대의 변천사는 우리에게 인류의 역사는 퇴보와 타락의 역사임을 웅변해 주고 있다.

그가 말하는 황금시대란 자연의 은총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평등했으며 행복했던 시대이다. 크로노스가 지배하던 태초에 황금 족속이 살았고, 그들은 늙지도 않았고, 죽음을 잠드는 것처럼 생각하여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땅은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주었기에 이들은 모든 것을 평화롭게 나누었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동양의 공자는 우주의 원리를 다룬『주역(周易)』제 2장에서 황금시대라는 것을 쵸황(Cho-fang)이라는 말로 나타냈는데, 그것은 문자대로 한다면 요리인의 휴일이라는 뜻이다.

이상에서 말하는 동서양의 황금시대에는 공동점이 있다. 값없이 쉼을 얻는 시⦁공간이 황금시대의 우주라는 말이다. 이곳이 바로 유토피아이며, 무릉도원이다. 이는 우리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바 에덴같은 곳이다. 바울이 아덴에서 설파했듯, 동서양의 신비가들이 “알지 못하던 시대에(행17:30a)," 신화적 상상을 통해, "알지 못하고 위했던(사모했던) 그분(것)(행17:23b)"이 천지의 주재(主宰)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의 창조하신 에덴동산이었던 것 같다.

에덴은 불노소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동산이다. 불로소득이 오히려 더 당당한 상태(狀態)다. 영아(嬰兒)가 그 모유 앞에서 당당하듯. 우리는 오늘 그런 당당한 여유를 즐겼다. 자연의 은총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황금시대의 주인공들처럼, 값없이 쉼을 누린 황금순간을 만끽했다. 네비게이션처럼, 목적지를 오래된 미래 ‘에덴’로 입력해 놓은, 택정함을 받은 우리. 험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냥 내키는 대로 향방 없이 엑셀을 밟아댔어도, 오늘 우리는 그 은총으로 작은 에덴으로 이끌림을 받았다.

그야말로 요리인의 휴일이었다. 영의 양식을 공급하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은 거룩한 성일을 보내고 난 첫 날. 오늘 월요일은 우리 영적 요리인의 휴일이다. 오늘이 그 요리인의 휴일 인 쵸황(Cho-fang), 즉 황금시대다. 거기다 더해 오늘 우리는 회춘동기(?) 최목사님 부부의 초대로 아산만 일대를 휘돌며 풍류를 즐겼다.

지난 해, 총회 행정을 같이 논하다가 사막과 같은 인생길에서 우리는 보너스 같은 인간관계를 획득했다. 기계적으로 엄격하게 업적이나 공헌도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보너스가 아니라, 황금시대의 자연의 은총 같은 무상 보너스를 받았다. 그 무상 보너스가 소비적 물질이 아니라, 살가운 정인(情人)이라는데 우리의 희열은 더한다. 그런데 문장가 최목사님은 더 명쾌한 용어로 우리들의 정체성을 대변했다. '회춘동기.

회춘동기(回春同期)!

아주 멋지고, 적확한 표현이다. 우리는 회춘동기(回春同期)다. 회춘(回春), 우리는 다시 봄으로 돌아가고, 다시 젊어지는 활력을 서로 불어 넣어주는 동기다. 우린 이미 나이, 성별, 지연, 학연 그 어떤 이력들도 훌쩍 뛰어넘었다. 그렇다 우리는 그 에덴을 회복케하는 동기(動機)를 상호 선사하는 동기(同期)다.

아산만 불타는 조개구이로 해감 된 갯것을 대한다. 나는 살아오면서 조개를 구이로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근데 조개 구이가 예상과는 달리 그 맛이 고소하고, 그 육질은 쫄깃했다. 인류가 구이로 식재료를 요리를 해먹기 시작한 것은 인류 최초 7만년 후, 돼지구이부터였다고 한다. 그 초기엔 산짐승의 날고기를 손톱으로 쥐어뜯거나, 이로 물어뜯어서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불탄 돼지우리에서 검게 거슬린 어린 돼지구이를 맛 본 이후 사람들은, 자주 자기네 돼지우리에 불을 지르곤 했다고 한다. 그 후 우리 인류는 오늘 홍천 화로구이와 조개 구이의 별미까지 즐기고 있다. 이젠 남의 돼지우리에 몰래 불을 질러대면서. 염천(炎天) 해변의 움막에 불에 불을 놓으면서. 우린 화(火)기애애 했다.

가는 곳마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반겨주는 우정이 들꽃처럼 만발하고 있다는 것. 과연 홍복이다. 에덴은 그런 곳이다. 그래 우리의 나와바리는 전국구다. 사랑, 중원지킴이 한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술람미를 연모하여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을 헤치고 온 솔로몬처럼, 그는 득달같이 우리에게로 왔다. 그는 열전(傳)하고, 열탁(卓)하고, 열설(說)하느라 매우 분주했다. 그랬음에도 그는 우리를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 떼(아가6:6a)"되게 하고 서둘러 떠났다. 그 대(大) 온천장 앞에서 그를 배웅하는 내 맘에 이슬이 적셨다.


나는 죽마고우 외에는 인생길에서 참된 우정을 나눌 수 없을 거라 생각해 왔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듯, 우정도 긴 시간의 터널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 여겨왔다. 그런데 초로(初老)의 인생길에 접어들면서 나는 객지에서 짜릿한 우정을 맛보고 있다.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들어야 참된 정(情)이라는 데……. 나는 소원한다. 만년(晩年)에 붙은 불, 우린 주님 오실 때까지 고운 정만 서로 주고받고, 사랑과 선행만을 상호 격려하는 우정이었으면 한다. 우리의 회춘동기회가 목회현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스크림 룸(scream room)이었으면 한다. 오늘 함께 했던 그 누가 나에게 ‘김 목사님을 만난 것이 자신의 생의 큰 복락’이라고 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빈말이라도 좋았다. 그러나 그 말이 절대로 입에 발린 말이 아님을 나는 안다.

좋은 시간 주선해 주시고 사랑 가득한 좋은 만남의 시간 행복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 아무개부부

그래 외롭고, 힘든 목회자 부부들에게 나는 주안에서 그 사랑과 격려의 가교가 되고 싶다. 아내가 그랬다.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우리가 앞장서 돈지갑을 팍팍 열수 있으면 좋으련만……. 만날 그 우정에 빚을 지는 형편이 가슴 아프다는 거다. “그래도 괜찮아. 우린 믿음의 형제니까.” 난 당당하게 괜찮지 않은 허세를 부렸다. 나는 그 허세에 맘을 열었다. 행복하기에 죽을 힘을 지닌 순교자처럼, 행복하기에 우리는 우리를 스스럼없이 서로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해묵은 고립조차.

또 문자가 날아들었다.

행복했구요. 귀한 섬김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더위에 건강을 빕니다. -다른 아무개 부부.

p.s
다음엔 그 누가 자기네 돼지우리에 불을 지를 건지,
침을 흘리며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