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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 신상 털기

2013.09.24 09:48

김성찬 조회 수:3907 추천:97



영혼일기 1432 : 신상 털기

2013.09.23(월)

 

아침부터 바빴다. 심리부 회의에 이어 호주 예빈이가 일산 명지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한다고 해서 그곳에 들려 기도를 해 주고, 마침 같은 동네 고양시 행주네동에 충장체육공원에서 개최된 서울 8개 지방회 교역자회 연합(이하 서교련)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날씨는 맑고, 고왔다.

한적하고, 아담한 체육공원이 맘에 들었다.

 

나는 그동안 지방회 공적인 행사에 거의 빠져 본적이 없다. 오늘도 그랬다. 회원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한때 내가 행정책임자로 일하던 시기에 그 어떤 회무나 행사에 회원들의 참석을 질책(또는 고무) 독려했던 죄업(罪業)에서 사함받기 위해서 힘 다해 모든 행사에 참석해 왔다. 나만이 아니라, 나보다 의무에 더 충실한 아내 덕에 나는 모범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서울중앙지방회 행정구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멀고, 주차 시설 등 편의시설이 태부족한 체육공원이었지만, 그래도 적잖은 우리 회원들이 참석했다. 회의와 병원 심방 때문에 점심 무렵에 나는 참석했지만, 회원들이 다들 반겨줬다. 나는 체질이 몸 간지러워서 운동경기를 구경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늦게 당도한 바람에 배구 선수로 차출되지 못했다.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외도(外道)로 달랬다. 바로 그 고양시에 개척을 한 이상의 목사네 교회로 몇몇 목사님들과 이동해 탁구 경기로 몸을 풀었다.

 

아담하고, 정갈한 일산 행복한 교회. 그 곳곳에서 담임 이상의 목사의 전적인 헌신이 한껏 배어나고 있었다. 그 교회의 이력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개척자로서의 용기와 사심(私心)없는 물질적 헌신이 남달라 보였다. 그곳에서 그는 거듭났으리라. 오갈 데 없던 그가 서울 한 복판을 떠나 연고도 없는 고양시 외곽으로 교회당을 옮기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투자한 그 상가교회. 그런 그 헌신의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모자란다며 병마로 그를 드러눕게 하셨고, 그는 혹한 속 성막에서 삭풍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우리 애들이 고생 했어요…….” 그는 담담히 참 아팠던 그 순간의 고통의 편린을 한 줄 드러내 뵀다. 이제 그 둥지에 다소 안정이 찾아든 듯 했다. 함께 운동을 하며, 우리는 성도의 교제로 행복했다. 일산 행복한 교회의 안녕과 부흥을 함께 빌며.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103년차 동기 금번 회기 서교련 대표회장 신익수 목사와 103년차의 부스럼, 그 종기 다스리는 지혜를 논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자연치유. 가만히 대응하지 않고 놔두는 것. 적극적인 응대는 본체를 상하게 할 수 있기에. 뭐 그랬다. 워낙 103년차가 값진 상품이 된 까닭에 짝퉁도 당연히 등장할 수밖에는. 우리는 자연스레 한 덩이가 됐고, 그 누구도 입장을 제한 한 적이 없다. 외려 읍소하듯 함께하자고 애원(?)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마당쇠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정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정서를 우리는 이미 뛰어 넘었다. 헛된 권력욕은 거절한다. 문을 항상 열려있으니, 동승해라. 그리고 기여해라. 의무 한 번 행하지 않고, 무슨 권리 주장인가? 정 구 죽 천이다.

 

나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오늘 행사를 주관한 현 임원단이 나를 극진히 대해 줬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이나 마지막 시상식 무대에 본의 아니게 올라서야 했다.

 

사회를 보던 총무 백병돈 목사는 나를 공개적으로 서교련 초대회장이라고 명명했다. 행운권 추첨권도 행사했다. 더군다나 그 대회 피날레를 장식하러 올라갔던 현(現) 대표회장 신익수 목사가 예고도 없이 나를 불러냈다. “서교련 초대 회장이신 김성찬 목사님의 기도로 오늘 행사를 마치겠습니다.” 나는 적이 당황했다. 갑자기 기도하라는 공개 요청도 그렇지만, 사실 목사들이 대표기도 요청을 받으면 대부분 다소 부담스러워 한다. 만날 짓던 밥인데도 손님 상에 내놓기가 좀 그런 주부처럼. 그러나 그의 멘트가 내게 부담이 되었던 이유는 나를 그도 초대 회장으로 호명했기 때문이다.

 

‘신상 털기’ 라는 용어가 작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신상 털기는 ‘신상(身上)’과 ‘털기’의 합성어로 특정인의 신상 관련 자료를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여 찾아내어 다시 인터넷에 무차별 공개하는 사이버 테러의 일종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인육수색(人肉搜索)이라고 불린다. 네티즌들이 온라인 정보 체계를 바탕으로 특정인의 신상 정보를 찾아내고 이를 유포시켜 사생활 침해가 이루어져 사회적으로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나는 미리 내 신상을 여기에 턴다.

 

나는 서교련 초대회장이 아니다. 서울 8개 지방회 교역자회 연합회는 그 태동이 십 년도 넘을 것이다. 그런 역사적 근거로 나는 초대회장이 아니다. 그런데 현 임원단이 나를 초대 회장으로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내가 서교련 초대 회장으로 호명 된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서교련의 운영체제가 새롭게 확립 된 삼년 전부터 셈해서 그들이 나를 초대회장으로 불렀을 거다. 내가 대표회장이 되면서, 나는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몇몇 교권주의자들의 손에서만 놀던 서교련을 민주적, 자율적 기구로 재탄생시켜냈다. 그 저항이 만만치가 않았다. 내외부의 적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에 대한 시기심으로 충만했던 내부의 사이비 영성가, 몇몇 목사들과 그것도 교권이라고 영원히 자기 것 삼으려든 외부의 작은 권력자들이 우리 서울중앙지방회와 나를 기만하며, 우리네 의무와 권리를 탈취해버렸었다. 

 

그러나 교역자회 임원과 우리 지방회의 자존심을 내세운 중진들의 도움으로 나는 어렵게 그 의무와 권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돈도, 피도 흘렸다. 그리고 서교련 내규도 만들어, 몇 사람 손에서 놀아나던 서교련을 소속 지방회 교역자회에 돌려 줬다. 그런 새 출발 테이프를 내가 끊었다고, 그 아픈 현장에서 날 지켜봐왔던 서울남지방회 임원들이 나를 오늘 모르드개처럼 높여 줬다. 이것이 내 해석이다. 그리고 내가 그런 발상을 하기 전에 이미, 미리 현 집행부가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나를 해석해 낸 것이다. 그래 나는 그런 의미에서 서교련 초대 회장이다. 

 

그때는 참 힘들었고, 오해도 받았지만 올곧은, 상식을 위해 흘린 피와 땀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오늘, 나는 새삼 느끼며, 날 보상해 주신 역사의 주인공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우리 지방회는 명품 사회자를 배출했다. 오승희 목사는 오늘도 어제처럼 당당히 명랑운동회 주관자로 모셔져서 그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당시 회계였던, 모진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서교련 정상화에 든든한 뒷받침을 해줬던 강충선 목사는 오늘도 우리 지방회 총무로 온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교역자회 회장으로 월반하는 것 아닌지? 그 급발진(?)이 무섭다. ㅋ,ㅋ

 

그래 그 어느 단체나 모임이나 매사에 계산 없이 헌신하는 자들로 인해, 세상은 보다 맑고, 밝아지는가 보다.

 

우리는 그 행사 후, 강화도 일주 길에 나섰다. 해 떨어지는 강화 바다가 지척이라고 했기에, 그 누가. 신상을 털어보니 그는 강화 도령이었다. 신상을 털어보니 그와 그는 고교 동문이었다. 신상을 털어보니. 그가 나요, 나는 그였다. 내가 우리요, 우리가 나였다. 그런 장삼이사들이 강화도의 밤을 밝혔다. 여수밤바다, 나는 생경했는데 충무공을 주(主)삼은 그 누가 그 노래를 차창을 열어 강화 밤바다로 흘려보냈다. 그녀가 아닌 그녀를 그는 그리는 듯 했다. 불경하게. ㅎ,ㅎ 강화 묵밥이 별미였다. 핌플의 대가는 묵전에 취했다. “천국에 가서도 먹어 볼 수 없을 와우~ 이 묵전, 아~죽어도 좋아!” 그랬다. 여흥을 즐긴다는 것. 삶의 깨소금이다. 돌고 돌다가 커피향이 진국인 해안도로변 스마트한 카페에서 우리는 월북 시인 백석이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라고 읊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함께 읊조렸다. 문우(文友) 조병세의 관점에서 시인 백석의 ‘유유자적적 소요와 아픈 관조’를 읽고, 푹푹 내리는 눈인 푸근한 치유를 우리는 서로 나타샤가 되어줌으로 함께 누렸다. 이상적인 시적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네 고단하고 아픈 현실을 서로 치유했다.

 

나는 그 즉석에서 정제되지 않았으나,

일순 물큰 물큰 돋던 내 감각적 심사를 한 줄 토해냈다.

내 폰의 배터리가 다 소진되어, 그녀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신상 털기 

 

그녀의 스마트폰을 뒤집어본다

ㅎ부터 묵은 이력을 거꾸로 밀어 올리며

그녀를 핥던 인명을 더듬어 본다

 

나보다 똑똑한 폰은

499명이나 세뇌된 듯 제 마음에 각인해 냈다

무려 오백에 하나 덜 한

그녀의 그네를

 

암만 뒤집어도

그녀가 뵈지 않는다

사백 구십 구

오백에서 하나 감한 나이테에는

그녀가 없다

레알 그녀는

없다


정작 그녀가 없다

그 숲에 메아리가 없다

 

메아리가 없는 숲은 죽은 숲이다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될

이름 석 자를

 

그녀는 보물 쪽지 숨기듯

나종엔 자신도 찾지 못한

그 칙칙한 사백 99 전나무 숲에 숨겨 뒀던가 본다

 

세월이 그 흔적을 지워 버렸는지

너무 맘 속 깊이 묻어 버렸던 건지 암튼

그녀는

그녀의 영원한 그를

밤바다에 실종 신고 하고픈가 보다

 

뒤집어도 뒤집히지 않는

감추려다 영원이 되어 버린

영영

 

더 이상 숨을 공간이 없는

스마트한 세상조차 검색해 내지 못한

심비에 더 아련히 새긴 

 

적어도 결혼했던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