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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 달무리 진 밤 처럼

2012.09.04 10:19

김성찬 조회 수:610 추천:37





영혼일기 1050: 달무리 진 밤 처럼
2012.09.04(화)


어제 젊은 처자들과 오랜만에 탁구를 쳤더니, 온 몸이 욱신거리며 무거워 가라앉는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아무도 날 찾은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산장같이 일순 적막해진 방콕에서, 홀로 그 누군가와 문자를 토닥거리다가 타이레놀에 취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몽롱한 상태로 기대어 있는데,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켜 둔 T.V에서 낯익은 화음이 들린다.

남철-남성남 선생이 나와 50평생 한결같이 니캉내캉 양보와 배려를 주고받으며 쌓아 온 우정을 나누고 있다. 올드보이들의 미운정 고운정 그래서 온 정된 우정이 L.P판 돌아가는 소리같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그래 저분들의 봄날은 가고 있다. 남편 생각해서 샴쌍둥이 콤비의 건강과 심기까지 챙겼다는, 남성남 선생의 아내는 남철 선생 옆 자리에 앉아 그 숟갈에 건강식을 챙겨주며, 한 십년만 부부가 바꿔서 살아 봤으면 좋겠다는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두 부부가 한 마음된 연대를 과시하고 있다. 남편의 외도, 애정행각 그 어떤 잡기나 돌출행동에도 가정을 지키고, 그 어떤 경우에도 남편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아내의 의무를 다하는 청교도식 부부애로, 아니 그런 교조적 신앙심의 발로일 수는 없었겠지만, 단지 세상 남자 다 그려러니 하고 남정네를 철부지 아들로 셈해 준 여인들의 소망의 인내가 있었기에 오늘, 저들 부부는 천년을 해로하며, 세상에 둘도 없는 우정을 연이어가고 있다. 혼자서는 웃길 수없는, 둘이 한 몸 되어야만 웃음이 되고, 돈 된 운명공동체였다고 하지만, 오늘까지 아니 이제 후 죽는 그날까지 서로서로 양해하고, 배려하며 살겠다는 우정이 부럽고, 아름다워 뵌다. 젊음에 강탈당한 재산을 이제 다시 되찾은 듯, 저들은 막판 횡재를 즐기고 있다.

오늘의 몸살은 단지 어제, 무섭게 치고 올라 오는 젊은 처자의 매서운 칼질 때문만이 아니다.


상심한 달이 내 심사에 아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심한 달.
죽어가는, 그 속도를 과시해대는 한 여인의 뼈저린 아픔이 내게 전이된 때문이고,
죽어가는, 우리네 분신 같은 미물 아지의 심장의 고동이 초원의 빛처럼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통첩을 받은 연고이다.

달무리 진 밤이 사흘을 채우면 어김없이 내리는 밤 비.

날로 여위어 간다는 것.
짚풀처럼 사위어 간다는 거.
달무리 진 밤이 도래헸다는 거.

너 내 위로가 사라져 간다는 거.


내가 내 심사에 투정을 부렸더니,
어쩔 수 없이 - 안 그러면 문자 벼락 맞을까 봐,
"몸조리 잘하시고요. 조만간 둘이 찾아 뵐 게요. 샬롬!"
립서비스(?)해댄 후배의 재롱이 박하사탕 같다.

몸 아프고, 맘 힘드니
그 누가 찾아 온다는 것도 부담스럽다.

남성남 선생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서로가, 양 가족이 다 그런대로 자리잡고 사니까. 우정이 지속된 측면도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살림도, 건강도, 형편과 처지도, 규모도 심지어는 건강조차도 엇비슷해야 관계가 유지 된다는 말이다. 냉정해 뵈나 정확한 진단이다.

아지 만큼이나 내 위로와 내 추근댐의 대상이었던, 비애의 계절 나의 참 위로자였던, 김채균 목사와 나는 요즘 소 닭 쳐다보듯하며 산다. 만난 기억이 별로 없다. 만날 수도 없다. 만나 주지도 않는다. 그 집 앞을 서성거려도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그가 몸이 약해 지면서, 맘문을 걸어 잠근 까닭이다.

그는 홀로 독야청청한 독립지사다. 그는 황야를 맨몸으로 달리던 독립투사처럼, 일평생 남 돕는 일에 온 몸을 바치다 이젠 그 쇠 같은 몸이 부서져 버렸다. 병들고, 살림 망한 이들을 돌보다가 물질은 물론 몸까지 망가진 그는, 그가 성심껏 돌봤던 이들 - 병들고, 가난한 이들 곁에 아무도 없음을 늘 보아 온 탓에, 그 냉정한 현실을 반면교사 삼았는지, 그는 자신이 약해지자 스스로 맘문을 닫고, 외인들의 염려나 위로조차 거부하고 있다.

뼈가 으스러지고, 쌀독이 동날만큼 타인을 예수 사랑으로 차고 넘치게 돕기만 했던 그가, 이제 남을 돕지 못하게 되자, 남 도울 수 없는 자신이 타인에게 무슨 효용가치가 있겠느냐 라는 식으로 자가 진단 해 버리고는, 그는 오늘도 홀로 산에 오르고 있다. 나는 그에게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다. 그랬어도 그는 나에게 서운해 하지도, 자기 자랑도 내 앞에서 한 치도 내뱉은 적이 없다. 어떤 장삼이사들은 마치 나를 위해 자신을 투자한 것처럼,(내가 그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까맣게 잊고) 턱 없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던데, 그는 다르다. 그는 참 예수의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일말의 도움도 되지 못한 나는 늘 그에 대해 죄스럽다. 그래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도왔던 인간들은 나를 배신해도, 나를 도운 그는 나에 대해 섭섭해 하지 않는다. 故 김준곤 목사님께서 전도의 비법을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너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이 곧 전도의 대상자이다." 내가 도움을 준 사람은 내 전도의 대상자가 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김채균-최말임 사모 그리고 두 아들과 향연교회 위에 하늘 상급이 홍수처럼 범람하길 간곡히 기도한다.

그는 의지가 강철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다르다.
나는 곁에 그 누군가를 끼고 살지 않으면 외발 자전거다.

근데, 홀로 가야할 길만 남은 생. 이 구만리 장천, 내 홀로 어찌할꼬?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그 주가 내게서 아직도 너무 멀다.

그래 나는 여전히 비신앙적인 측면에서는 강한, 성년된 세계의 인본주의적 주인공이다.

신앙의 깊이가 없으니,
목사가
달무리 진 밤 처럼
몸살을
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