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5: 비린 비
2012.10.14 21:48
영혼일기 1095: 비린 비
2012.10.14(주일)
비린 비
오늘
비가 내렸다
맨 가뭄에 알곡 한 알 제대로 거둘 수 없는
빈 결실의 들판에
마른하늘에 살랑대는 여우비가
화들짝 반길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24시를 훌쩍 넘긴 시각
달포 해포 만에 출몰한 길손이
매장에 불을 끄고 간판도 내린 채 호객 행위 한번 없이
화병의 꽃처럼 뿌리 없는 개점을 맥없이 유지하고 있는
내 영혼의 주막에
오늘
여우비처럼 내렸다
비다 비
한 줌 비에 내 맘 쓰이는 까닭은
촉촉해져서가 아니다
흡족해져서도 아니다
삼킬 수도 내뱉을 수도 없는
비린 비지만
단골 없는 주막에 단골 된 뜨내기들로 인해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지 못하는
스치는 비바람에
소름이 돋듯
단 한 번 들려 준 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를 득하는
난
귀갓길
목로주점지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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