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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어들기

2010.11.24 21:48

김성찬 조회 수:929 추천:41

영혼일기 613: 끼어들기

2010.11.24(수)

 

 

내부순환로 월곡램프를 타고올라 남쪽으로 질주한다. 마장램프로 빠져나가려면 2KM전방에서 날개를 타고 내려가라고 번들거리는 내비게이션의 예고 창(窓). 2KM라, 2KM는 아직 멀다. 아득히 먼 2KM라 여겨 진 바로 그 지점부터 3차선 도로가 주차장이다. 설마 아직은 아닐 거야.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는 내 안의 초행 길 억지. 중간 2차선 도로로 시원하게 질주해 나간다. 화물열차처럼 길게, 사슬처럼 연이어진 주차행렬에 힐끗 동정의 눈길을 던지며 즐기는 질주. 시속60에서 80으로 밟아나가는 고속질주는 일순 2KM를 단숨에 밀어제친다. 헌데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앞에 들이닥친 오른쪽 날개로 빠져 나가라 번뜩이는 사인. 2KM 전방에서부터 줄지어 선 차량행렬이 그 벌건 머리띠를 드러내 보인다. 설마하고 지나쳐온 2KM 전방에서부터 줄지어 선 차량행렬은 마장램프로 빠져나가는 행렬. 아뿔싸, 그 차선이 그 길이다. 황급히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끼어들 틈을 노려본다.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아량을 노린다. 앞선 차량 행렬을 휙휙 추월해 가며 아량이 벌려놓은 틈을 찾아 기웃거린다. 이내 틈이 열린다. 아량이 열린다. 아량이 내 준 틈으로 잽싸게 끼어들며 비상등으로 깜빡깜빡 감사를 표한다. 시속 10km도 소화해 내지 못하는 저속주행에 틈내줄 만치 미숙한 운전자는 아무도 없다. 그 누구라도 숫제 벌벌 기는 주행행렬에 보조를 맞추지 못할 지진아는 없다. 늦은 출근길 펨토초(秒) ̂도 아쉬워 엉겨 붙은 방어벽엔 한 땀 균열도 없다. 그래서 틈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긴 앞줄에 연신 끼어드는 다급한 차량들. NS극처럼 들러붙은 차량들 사이사이 아량, 배려, 아량, 배려가 구슬을 꿴다. 내 앞으로 끼어드는 또 다른 절박에 나는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는다. 내 앞에서 깜빡이는 비상라이트. 그 라이트가 몇 차례 점멸하더니 이내 브레이크 등에 불이 환히 밝혀지고, 이어 앞차의 앞차가 비상등을 깜빡인다. 일순 앞선 모든 차량에서 피고 지는 비상등의 사의(謝意). 아량이 낸 틈으로 끼어드는 차량, 차량들. 주차장 된 주차행렬은 사의를 주고받으며 끼어들고 끼어주는 끼어들기 행렬. 내가 끼어들 틈을 얻었기에 나보다 급박한 길손에 틈을 내어준다. 나도 끼어들었기에 너도 끼어들 수 있다. 너도 끼어들었기에 그도 끼어들 수 있다. 우리들도 끼어들었기에 너희들도 끼어준다. 너희들도 끼어들었기에 그들도 끼어준다. 그들도 끼어들었기에 우리들도 끼어준다. 우리들도 끼어들었기에 너희들도 끼어준다. 모두 다 끼어들었기에 모두 다 끼어준다. 내부순환로 러시아워 주차장 된 마장램프는 끼어주기 행렬이다. 끼어들고 끼어줌으로 옴살스런 삶을 연대하는 감사행렬이다. 감사가 정체된 세상에 감사로 깜빡이는 러시아워 램프웨이는 감사하이웨이다. 매일아침 매연대신 감사로 세상에 진입하는 혼잡시간 마장날개는.


̂ 펨토초(秒) - 1,000조 분의 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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