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 종점
2007.11.20 17:49
10번 종점
문 나서면
겹겹 굽이 친 불암산 비탈에 선다
먼 동 트는 새벽
밤새 뜬눈을 밝히고서도 구원받지 못한
눈 벌건 백열등이 도깨비 불 되어
산으로 산 속으로 빨치산처럼 숨어들고 있다
고향산천 떠나와
청계천에 쪽배를 띄웠다가 집단 보쌈 당한
종점인생을 산지
천년도 넘겼건만
아직도
하늘을 지붕 삼는 저 산 마을에서
더 이상 이슬만 먹고는 살 수가 없어
산골散骨하듯 흩뿌려 대는 한줌 구호미로
호구지책 삼는 가련한 목숨들이
밤에만 살금살금 산짐승처럼 내려와
사람 틈에 살 비벼 대 보는 곳
간밤에도 환인換人에의 몸부림으로 질펀했을 난장亂場
어둠이 어둠을 핥고 지냈을 아득한 암전暗電
온밤을 지새우는 호곡號哭에도 불구하고
대책 없이 밝아 오는 면목 없는 이 미명未明
전혀 다 감출 수 없는 구미호九尾狐 꼬리처럼
사람이고픈 천년의 욕망만은 정녕 감출 길 없어
한낮을 사수하는 전신주 백열등 마냥
여전한 환인換人에의 미련에 퇴각 못한 패잔병들이
퀭한 눈 벌겋게 부릅뜨고
형형(熒熒)
또, 하루를 엿보고 있다
문 나서면
겹겹 굽이 친 불암산 비탈에 선다
먼 동 트는 새벽
밤새 뜬눈을 밝히고서도 구원받지 못한
눈 벌건 백열등이 도깨비 불 되어
산으로 산 속으로 빨치산처럼 숨어들고 있다
고향산천 떠나와
청계천에 쪽배를 띄웠다가 집단 보쌈 당한
종점인생을 산지
천년도 넘겼건만
아직도
하늘을 지붕 삼는 저 산 마을에서
더 이상 이슬만 먹고는 살 수가 없어
산골散骨하듯 흩뿌려 대는 한줌 구호미로
호구지책 삼는 가련한 목숨들이
밤에만 살금살금 산짐승처럼 내려와
사람 틈에 살 비벼 대 보는 곳
간밤에도 환인換人에의 몸부림으로 질펀했을 난장亂場
어둠이 어둠을 핥고 지냈을 아득한 암전暗電
온밤을 지새우는 호곡號哭에도 불구하고
대책 없이 밝아 오는 면목 없는 이 미명未明
전혀 다 감출 수 없는 구미호九尾狐 꼬리처럼
사람이고픈 천년의 욕망만은 정녕 감출 길 없어
한낮을 사수하는 전신주 백열등 마냥
여전한 환인換人에의 미련에 퇴각 못한 패잔병들이
퀭한 눈 벌겋게 부릅뜨고
형형(熒熒)
또, 하루를 엿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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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詩를 쓰기까지 저희 아파트 멀리 불암산 산자락에 틀어박힌 동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중계본동 10번종점(구) 산동네를 쓰린 마음으로만 응시하곤 했었습니다. 거기가 내 교구였지만, 아픈 목사는 그들을 보살필 힘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날을 가슴앓이 하다가 어느 날 새벽 저는 이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한편의 시를 쓰고나자 신기하게도 일순 가슴의 통증이 눈 녹듯 사라져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나의 책무가 여전히 눈 앞에 놓여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이게 문학치료일까요?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자기최면일까요?
이것은 무슨 현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