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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 사막엔 나이테가 없다

2011.01.05 18:14

김성찬 조회 수:990 추천:47

영혼일기 637: 사막엔 나이테가 없다
2011.01.05(수)

그제(1월3일) 저녁에 북부감찰회로 모였다. 다들 감찰 보고서를 제출했고, 감찰 보고를 했다. 그런데 나는 감찰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 사무총회는 오는(1월9일) 주일이기 때문이다. 그랬어도 나는 구두로 교회 보고를 해야만 했다. 나는 한마디만 했다.

“사막엔 나이테가 없다. 해서 나는 보고할 것이 없다.”

지난 봄 성지를 순례 길 광야 사막을 통과하던 중,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었다.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이테가 없데요.” 그랬다. 사막엔 나이테가 없다. 그 밤 나는 돌아 와 아래와 같은 시 한 편으로 나를 토해냈다. 열어 놓기가 그래서 닫아 놨다.

그런데 어제 아침 신년하례회에서 사막에 강을 내시는 주님의 새 일에 대한 말씀 계시를 받았다. 류용성 목사님의 신년 설교가 사막에도 물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새삼스레 깨달아 알게 했다. 그 원고를 내 홈피에 올려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홈피를 열었더니, 그 옥고가 올라와 있다. 나는 감사의 답글을 올렸다. 그리고 연다. 그제, 어제 그리고 오늘 나이테 없는 사막에 물 길을 내시는 그 손길을 고대하며.

사막엔 나이테가 없다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은 뭐 그리도 젊어 뵈냐?
너무 젊어 봬,
홍등(紅燈) 추파 아닌 막말 시비까지 면전에서 내뱉는다

재삼 묻고 묻는
그 하대에는 근거도 있다

하늘 덮은 슈바르츠발트 ̂ 내 검은 숲 정수리에는
상투 튼 흔적도 없어 뵈고,

소니 리스튼과의 리턴매치에서 선 뵌
케시어스 클레이의 날랜 푸트워크를 경쾌하게 재현해 내는
내 몸 놀림은 시종여일해 뵈니,

보이는 대로만 믿는
보이는 것만 전부로 아는
신기루를 좇는 사막의 대상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의문부호다.
왜? 왜? 왜?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가볍고, 연혁에도 미달하며, 경력에 비해 초라한지?

저들은 알까?
알려 줘도 알 수 없을

칙칙한 내 검은 숲은
전나무의 병해-잎떨림병, 잎마름병, 잎녹병, 빗자루병, 줄기마름병
전나무의 충해-전나무잎응애, 소나무거품벌레, 솔나방, 솔박각시, 박쥐나방

온갖 병충해의 전방위적 총공세에도
남산 위의 사시사철 저 철없이 푸르딩딩한 소나무처럼
썩지도, 썩을 수도 없는 묵시록의 검푸른 낯빛임을

저들은 알까?
알려줘도 상상할 수 없을

1965년 5월 25일 보스턴.

인간기관차 소니 리스튼을 1회전 공이 울리자마자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 댄 젊은 케시어스 클레이를, 젊은 날 기억으로 추억해 대고 있는, 내 나이테를 감히 세어 보려드는, 한 걸음 떼기가 첫 걸음마보다 더 힘든 파킨쓴 병자 무하마드 알리의 수전증만을 기억하는 세대들은. 단 하루 밤새 사막에 세계 최고의 162층 거탑을 쌓는 거침없이 솟구친 세상은.

알까? 알 수 있을까?
손에 쥐어주고 입에 넣어줄지라도

열병으로 모래 알 된
열사의 땅에 뿌리내린 나무들에는 나이테가 없다는 모진 풍화작용을 헤아릴 길 없는
사람을 앓아보지 못해
웃자란 근심 없는 나무들이

염병을 앓은 대가리에 머리터럭 한 가닥 없는 모진 이유를
바위산이 모래 벌 된 억겁의 사막에는 나이테가 없다는 절박을

알까?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