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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자의 송사라고 해서

2011.09.10 11:02

박원석 조회 수:2662 추천:78

 

09월10일출23장1절-3절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드러내시는 아주 중요한 법은 바로 공평과 정의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사회에서 공의가 세워지고 정의가 펴지기를 원하신다. 암5:24에서“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 하시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떠나 우상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일선에 서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정의 공의가 세워져야함을 선포하신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지켜지고 나타나야할 것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이다. 그래서 이 백성들에게 교훈하시고 있다.


1절 :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 거짓된 풍설이란 근거 없는 소문이고 흔히 말하는바 루머를 말한다.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면서 그러한 말에 미혹되거나 현혹되어 사람의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거짓은 바로 사단이 그 아비라고 요8:44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창 3장에서 이 거짓의 사건으로 사람은 선악과를 먹게 되고 이 일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중단되는 인간에게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진리로 이 문제를 다스려서 예수님이 생명과로 오시므로 하나님과 교제를 다시 회복시키셨기에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졌다. 거짓된 풍설에 함께 하는 것은 곧장 악인과 연합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여주신다.

 

거짓됨이 바로 위증이며 악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위증하는 것은 자기중심의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악인과 연합하는 그 자체가 바로 위증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시1:1-6에서 복있는 사람은 바로 악인의 자리나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자가 바로 복있는 자라고 하셨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언제나 이러한 위험한 일들이 도처에 깔려 있어 순간 방심한다면 거짓된 풍설에 나도 모르게 요동하게 되고 동의하게 되어 악한 일에 휩싸이게 됨을 생각해 본다.


2절 :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 민주주의의 원칙중하나가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다. 그래서 다수결주의라고도 하지 않던가. 그 다수고 선을 이루고 선을 추구하고 선을 지향한다면 모르려니와 악을 따르고 악한 일에 드려진다면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됨을 규정한다.

 

즉 다수라 할지라도 공평이 무너지고 정의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한 일이고 하나님의 공의가 다수에 의하여 무시되어지는 일이 생기는 것을 경고하신다. 결코 다수가 선은 아니다. 다수가 다 옳은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수의 심리는 쏠리게 되어 있고 그래서 어느 한 편의 주장하는 자의 의견에 따르게 되어있다. 거기다 선동하는 자가 그 다수를 움직이는 사례가 무수하게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노략질 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다수의 횡포를 금하기 위하여 말씀을 주셨고 그래서 그 말씀은 우리에게 선함으로 이끄시고 공평과 정의를 이루어 가신다. 다수가 모두 바른 것이 아님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3절 :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 사람들은 일단 가난한 자가 어떤 일을 당하면 그 편으로 향하기 쉽다. 문제는 공평과 정의이지 어느 편을 두둔하는 일은 법의 형평과 공의에 맞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가난한 자일지라도 공의에 세워져야 한다.

 

공평은 부자나 가난한자나 모두에게 평등하고 공평한 것이다. 만약에 이것이 안되면 편벽이 이루어지고 한쪽으로 치우치므로 억울한 자가 생겨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법은 이미 죽은 법이다.

 

하나님의 법이 죽은 법일 수 없기에 공평을 드러내신다.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도 공평과 정의와 공의에서 예외가 없다. 이것이 바로 죄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더 놀랍게 해결하시려고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나라의 법이지 세상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공평과 정의이지 사람이 생각하는 공의가 아니다. 만약 이것이 사람으로 인한 것이라면 인간의 부족함이 거기에 나타나게 되어 틀림없이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게 되어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에 의한 것이요 불완전한 사람의 모습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난한 자의 편에도 그래서 불의하게 되는 일에 두둔해서는 안됨을 지적하신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