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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한 음성

2007.11.17 04:07

윤사무엘 조회 수:632 추천:39

“세밀한 음성”

작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프린스톤 시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평소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 FM 채널 래디오를 켰다. 바이올린 독주곡이었는데 은은한 물결처럼 흐르다가 다음 악장에서 성난 파도와 같은 곡이 흐르는데 주변의 신록과 어울려 멋진 예술의 세계를 즐겼다. 더워 에어컨을 트는 대신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차 창문을 열게 되었다. 물론 래디오를 틀은 것을 잠시 잊어버렸다. 달리던 차가 신호등 앞에 멈춰 섰을 때, 다시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이 순간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바로 ‘세밀한 음성’의 교훈이었다. 음악은 흘러나오는데 달리는 차속으로 힘차게 들어오는 바람소리가 커서 전혀 듣지 못하다가 그 바람소리가 멈추는 순간 다시 음악이 들렸다는 사실이다. 음악이 멈춘 것이 아니고 내가 못들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음성도 매순간 지속적으로 들려오는데 내 욕망, 죄악, 교만, 세상자랑 등으로 그 음성을 못듣고 있지나 않는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엘리야는 바알종교와 싸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니 이스라엘 땅에 3년 반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와 번개, 천둥을 주관하는 이는 바알신이라고 떠들었던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도 가뭄앞에 무력했다. 엘리야의 제안에 갈멜산에서 대결이 벌어졌다. 오전부터 오후3시까지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의식을 행하며 제단위에 불이 내려지기를 간구했어나 아무일도 없었다. 엘리야는 제단을 수축하고 물을 그 위에 붓게 한후 저녁 소제드릴 때(오후3시)에 기도하기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 이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왕상 18:36-37) 하니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게 되었다. 그래서 도망가던 바알신을 선전하던 선지자들이 엘리야의 손이 죽임을 당하였다. 그 이튿날 화가 난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살해 협박을 하였다. 이때 엘리야는 순교를 각오하고 이세벨과 맞서 싸워야 했었다. 불행하게도 엘리야는 탈진(burnt out)하고 말았다. 결국 40일 걸려 호렙산까지 도착하여 굴에 유하였다.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데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말씀은 바알의 잔당과 싸워할 네가 사명을 포기하고 여기서 무엇하느냐?는 도전적인 질문이었다. 외로운 싸움이었다는 대답에 하나님의 말씀이 또 임하시기를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섰으라”고 하신다. 여호와께서 지나가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였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불 후에 세미한 소리(a still small voice)가 있는데 바로 그 소리 가운데 주님은 계신 것이었다.(왕상 9:12)  여기서 보면 강한 바람, 지진, 불은 모두 세미한 음성의 전주곡이었다. 아니 세미한 소리를 담는 그릇이었다. 보좌하는 security guard 였다. 큰 소리를 좋아하고, 대형 교회를 부러워하고, 큰 직분만 추구하며 높은 지위를 좋아하는 현대판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학사, 서기관들과는 달리, 작지만 분명한 소리, 따뜻한 마음,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도 주님은 계신다.

예수님께서 깊이 기도하실 때는 ‘한적한 곳’(a solitary place, 막 1:35)에 가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한적한 곳이 주님께서 기도하신 장소였다. 주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칭찬하셨다(마 25: 21, 23) 우리는 주님의 세미한 소리를 듣고 있는가? 한적한 곳을 더 좋아하는가? 작은 일에도 충성을 하고 있는가?

                                윤사무엘 목사(미국 뉴저지 감람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