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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의

2010.10.12 12:09

박원석 조회 수:959 추천:46

 

“자기의 의”(1)

 

자기 의(義)를 말할 때는 사람으로 의(義)를 말한다.

 

여기서 의(義)는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떳떳하고 정당한 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義)는 하나님의 의(義)를 말한다.

하나님의 의(義)는 하나님과 그 백성사이에 맺은 언약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다.(사5:16) 그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므로 언약관계를 유지하신다.

하나님은 압박당하는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의로운 자들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곤란 중에 있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 주신다.

그러나 반역하고 대적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징계하신다. 즉 공평이 바로 하나님의 의로 나타나고 있다.

 

신약에서는 고전1:30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義)가 되신다.

사람의 의와 구별되는 하나님의 의는 인류구원을 위한행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구원을 위한 의의 행동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한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로 유대인들인데 바울사도가 동족을 향한 안타가움을 드러내면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모습을 롬10:3에서 기록하여주고 있다.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로 다가오시기 전에 나는 자기의 의가 대단히 강하였던 사람이었다.

학교에서는 모범학생이요 동네에서도 모범적인 어린이였다.

가정에서도 장남으로서 동생들의 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아주 성실하고 착하고 부지런하여 흠잡을 데 없었고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내 기준이 분명하여서 그에 맞지 않으면 결국 내가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연출되었었다.

 

성장해 갈수록 남의 실수나 문제점을 용납하지 못해 비판적이고 혼자서 계속 질주하는 식의 생활을 살아가고 있었다.

남을 괴롭게 하거나 몹쓸 말, 행위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 없었다.

목사로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는 해를 끼치고 있었다.

 

나 같은 목사, 나 같은 사람이란 말이 입에서 줄줄 나왔다.

그야말로 자기의 의(義)가 충만한 존재였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던 중 함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교제하던 형제의 지적으로 말미암아 내가 자기의 의(義)가 충만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영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게 하셨다.

주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차지하였다.

예수님이 없는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묵상하면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저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게 인도하셨다.

 

고후5:21에서“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다.

이는 나의 삶에서 오직 예수님만 나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셨다.


자기의 의(2)

 

자기의 의는 바로 자기가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것이다.

 

자기의 의는 자기 자신에 관한 것에 대한 연민이요 자기 자신위주의 마음이다.

즉 자기 마음중심에 자기가 주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살아가는 모든 일들에서 자기 자신위주로 계획하고 진행하려 든다.

 

이게 안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마음에서 대부분 분노가 올라온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인과 아벨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4:5에서“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 하여 가인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가인의 제사는 자기의 의로 드렸다는 것을 제사 후에 하나님과 대화하는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

아벨을 쳐 죽인 후 하나님께서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자 가인은“내가 아벨을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되묻고 있다.

 

가인이 제사의 결과를 보고 나서 그의 태도는 바로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있다.

제사를 받고 안받고는 하나님의 하실 일이지 내가 아니다.

가인은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는 모습에서 자기중심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자기의 의로 살게 되면 그것은 자기의 생각을 좇는 것이다.

안색이 변하고 심히 분하여 하는 모습을 통해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생각대로 만을 원하고 스스로 자기가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은 바로 너도 스스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하는 것은 요7:18에서“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고 하여 자기 영광을 구하기 쉽다. 그것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의 강함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으로 살고, 자기 원대로 모든 것이 돌아가기를 원하고,

자기가 중심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하여 자기의 능력을 드러내려는 마음이다.

이것은 바로 악이고 육에 속한 것으로 그 시작이 사단의 영향아래 있는 것이다.

 

어떤 모임이든 간에 내가 중심이 되고 내가 모든 것을 이끌어 가야한다는 생각을 바로 자기의 의를 좇는 가운데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과정이다.

여기에 믿음이 없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요5:44에서“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누군가 나를 높여주면 기분이 좋고 인정받으면 마음 뿌듯해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이 나로 하여금 내 의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그래서 나 중심의 삶을 살아가게 한다. 아주 서서히... 규정을 준수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서 모범적인 삶이지만 그 중심에는 자기의 의가 자리하여 교만이 가득하면 믿음에 의한 의롭다함을 받기 어려워진다.

 

자기 의가 없는 자는 자기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며 자기는 없는 존재이다.(갈2:20)

단 주님이 계시기에 내가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가 나를 주장하시고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자 일뿐 단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바랄뿐이다(빌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