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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사랑 타오르게 하옵소서

2010.12.07 16:37

최승열 조회 수:935 추천:48

 

주님 사랑 타오르게 하옵소서!(신30:1~8)

   성. 프란시스가 스바시오산 동굴 속에 들어가 통회의 고뇌, 자기가 가장 큰 죄인인줄 느끼고 넘치는 눈물 속에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엎드려 주님을 부르다가 다시 동굴에서 나올 때는 모진 고난의 비탄을 거쳐 새사람이 되어 나왔다.


   동굴 속에서 받은 은혜,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사랑의 물결이 가슴에 바다의 조수처럼 밀려와 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압도되어 미친 사람 같이 된 그는 통곡하며 아씨시 거리를 다녔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으니 그는 오른손을 높이 쳐들며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못 견디게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참된 기도는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빠졌을 때 나온다.

   참된 찬양은 좋은 가사나 음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사랑에 빠졌을 때 나온다.

   참된 예배는 좋은 예배의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사랑에 빠졌을 때 나온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결여된 신앙생활은 습관적 종교적 행위에 불과하다. 주님 사랑하는 만큼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생동감(生動感)이 있고 깊이가 있다. 주님 사랑하는 만큼 힘(力)이 있고 능력(能力)이 있다. 그러므로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지속적(持續的)으로 불타올라야 한다.


   진심으로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있고자하는 마음’과 ‘친밀한 교제의 갈망’을 내포(內包)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진심(眞心)으로 사랑한다면 주님과 함께 있고자하는 마음과, 주님과 친밀(親密)한 교제(交際)의 갈망(渴望)이 있다.


   구약성서 학자들은 신명기(申命記)를 구약의 가장 중심(中心)이 되는 책(冊)으로 평가(平價)한다. 잘 아시는 대로 신명기(申命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긴 광야(廣野) 유랑생활(流浪生活)의 끝인 약속(約束)의 땅 진입직전에 모세가 모압 평지(平地)에서 행한 고별설교(告別說敎) 내용이다.


   설교(說敎)의 내용(內容)은 율법을 풀어 설명(說明)하는 것으로써 신명기(申命記)를 ‘제2의 율법’율법의 반복’ 이라고 한다. 모세는 세 번에 걸쳐서 설교를 한다. 첫 번째 설교는 1:1~4:43, 두 번째 설교는 4:44~26:19, 세 번째 설교는 27:1~34:12까지이다.


   오늘본문 말씀은 세 번째 설교가운데 ‘모압 언약’(29:1~30:20)에 관한 부분이다. 설교를 듣는 회중(會衆)은 두 명의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출애굽 2세대,희망의 세대들이다.


   모세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들어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問題)에 대한 하나님의 뜻(will)을 제시하는 율법을 강조(强調)한다. 모세의 설교의 핵심(核心)을 요약(要約)하면, “너희들은 너희 부모들이 광야에서 했던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하나님께 순종하면 약속의 땅에서 복되게 살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29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不順從)으로 언약(言約)의 저주(咀呪)가 임하고, 약속의 땅이 어느 시점에서 황폐(荒幣)될 것을 전망(前望)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30장에서,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不順從)으로 하나님의 저주(咀呪)가 임(臨)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記憶)하고 돌아오면 은혜(恩惠)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2~5절“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6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生命)을 얻게 하실 것이며”


   오늘 함께 묵상(黙想)하고자하는 말씀은 6절 말씀이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 순종(順從)은 불가능(不可能)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말씀을 순종(順從)하게 된다. 많이 사랑하면 많이 순종(順從)하고, 적게 사랑하면 적게 순종(順從)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 사랑에 빠져있었던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힘(力)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능력(能力)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붙어있을 때 세속에서 넉넉히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시 143:6“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思慕) 하나이다.”(셀라)


   사도바울역시 ‘하나님의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자였다.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였고,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고백하였으며,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소원한다고 하였다.


   고후 5: 13-14“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주님 사랑에 불이 붙는 것은 우리의 의지(意志)나 노력(努力)만으로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원(願)함뿐이다. 알고 보면 원(願)함마저도 주님이 주신 것이다.


   신 30:6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마음의 할례는 육체의 할례와 달라서 외적인 표시(表示)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變化)까지 동반(同伴)한다. 마음의 할례’가 곧 성령께서 우리마음에 오셔서, 굳은 마음(心)을 제거(除去)하고 부드러운 마음(心)을 주시기 때문이다.


   굳이 강요(强要)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열의(熱意)로 하나님의 법(法)을 능동적(能動的)으로 지키게 하며, 열정적(熱情的)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음의 할례’를 베푸시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도,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게 하심으로 가능한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 수동적(受動的)은혜(恩惠)이다.


   매일 우리 교우들과 친지, 친구, 형제, 가족, 손자, 손녀에게 까지 동일한 기도를 주님께 드리고 있다. “주님의 사랑을 알고 느끼게 하시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름 부어 주옵소서. 주님과 더욱 친밀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 받는 생애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일 외에 모든 것은 이차적이다.


     영성적 기도


   영성적 기도를 침묵의 기도로 ‘결혼의 비유’로 설명하기도 한다. 초기의 신랑과 신부와의 만남은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서로간의 알지 못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탐구하기 위하여 많은‘말’들이 오고간다. 그러나 점차 관계가 무르익으면서 많은 ‘말’들이 하나의 ‘표정’이나 ‘느낌’으로 전달된다.


    그 친밀감의 정도에 따라서 그 표징이나, 느낌이나, 상징적인 행동 안에 그 만큼 많은 ‘말’들과 ‘의미’가 담겨지게 된다. 결국 오랜 결혼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교제의 수단은 주로 ‘침묵’‘느낌’이다.


   수동적(受動的) 기도를 위해서는 잠시 외부적(外部的)인 일을 멈추(stop)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주장하고 행하여오던 일을 멈추(stop)어야 한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내 자신 안에 있는 ‘의도(intention)자체도 멈추는 일’이다.(참조: 출 14:13 “가만히 서서”)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는 불행히도 우리의 마음중심이 ‘하나님 아버지와 교통하는 은밀한 시간’이기보다는 일방적(一方的)으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쏟아 부어 놓는 시간인 경우(境遇)가 허다하다. 우리는 많이 기도하지만 영적인 힘(力)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일방적(一方的)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수동적 은혜를 받기위해서는 침묵(沈黙)기도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언어(言語)를 사용하는 기도의 수준(水準)에서, 침묵(沈黙)의 기도 수준(水準)으로 향상(向上) 되어야 한다.


   수동적 기도 (이끌림을 받는 기도)


   수동적 기도는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기도이다. 우리의 요구(要求)를 강청(强請)하는 기도가 아니라, 거룩한 토기장이 이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기도이다. 진흙에 불과한 우리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면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우리를 빗으신다.


   기도를 업그레이드 시키자.


   회교국(回敎國)의 영적 지도자(指導者)이며, 신비주의자(神秘主義者)인 파리드가 아크바르 왕(王)을 만나기 위해 왕궁(王宮)에 도착(倒着)했을 때 일이었다. 마침 왕(王)이 기도(祈禱)중이어서 기다리던 파리드가 기도(祈禱)를 끝내고 나오는 왕(王)을 만나자 이렇게 물었다. “왕(王)께서는 방금 전에 무슨 기도(祈禱)를 하셨습니까?” “나는 세 가지를 신(神)에게 기도(祈禱)했소. 첫 번째는 성공을, 두 번째는 부(富)를, 세 번째는 장수(長壽)를 달라고 기도(祈禱)했소!” 왕(王)의 대답에 안색(顔色)이 굳어진 파리드는 왕궁(王宮)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당황하며 나오는 수행원(隨行員)에게 파리드가 속삭였다.


   “내가 왕(王)을 만나러 온줄 알았는데 걸인(乞人)을 만나고 가는 구만! 저런 기도(祈禱)는 걸인(乞人)이나 하는 기도(祈禱)지, 왕(王)으로서는 할 수없는 기도(祈禱)야! 왕(王)이 되었으면 가장 성공(成功)한 것인데, 성공(成功)을 구하다니? 이 나라에 왕(王)보다 부자(富者)가 누가 있다고 부(富)를 구해? 오래 살기 위해 왕궁(王宮)에 각종 좋은 것들을 드시는 분이 장수(長壽)하기를 구한다? 이는 왕(王)의 신분(身分)에 맞지 않는 왕(王)답지 못한 기도요, 걸인(乞人)이나 구할 법한 것이지, 오늘 나는 왕(王)을 만난 게 아니라, 걸인(乞人)을 만나고 가는군.”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는 권세(權勢)를 얻은 왕(王) 같은 제사장(祭司長)들이다. 혹시 왕(王)의 기도(祈禱)를 해야 할 우리가 걸인(乞人)의 기도(祈禱)를 하고 있지 않는지? 이방인(異邦人)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내일을 걱정하며 입신양면(立身兩面)과 부귀영화(富貴榮華)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구(求)한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 자신만을 구하는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