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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2010.02.20 16:25

박원석 조회 수:623 추천:27

 

두얼굴

 

가끔씩 항간에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두 얼굴”이란 말이다.

 

이는 사람의 겉과 속이 다름을 나타내는 말로서 이중성격이라고도 표현한다.

사람이 겉과 속이 한결같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중심의 삶을 사는 과정에서 틀림없이 겉과 속은 다른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란 소설을 빌리지 않아도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의 인간은 두 얼굴을 지니고 살고 있다.

그것은 선과 악이었으며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의 대결이었다.

지금도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표현을 하고 살아간다.

자기의 유익을 위한 일이라면 그것이 겉과 속에 상관없이 자기에게 유리한 태도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숨어버리고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 사실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고 두려워하여 숨은 아담과 하와를 불러 책임을 추궁할 때 그 현장에서도 두 얼굴을 나타내고 있다.

사람은 선악을 알고 나서부터 두 얼굴을 갖게 되었다.

 

로마서에서 유대인들도 여전히 이 문제에 걸려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롬2:28-29에서“....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라 하셨는데 이것도 동일한 두 얼굴의 모습이다.

 

표면적인 내용은 사람의 겉모양을 말하고 있다.

겉으로 매우 훌륭하고 똑똑하며 교양이 많아보여도 속은 다를 수 있다.

속은 그렇게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표면적 유대인은 이 시대에 표면적 그리스도인으로 본다.

 

표면적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의한 행위에 매여서 신앙생활 하는 경우다.

보이는 것을 추구하고 실적을 구하며 겉의 모습을 가지고 평가하고 나타나는 것으로 평가하려든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쉽게 비판하고 판단하려든다.

 

표면적인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적이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엇이든 쉽게 내쳐버리고 편을 가르며 쉽게 심판한다.

그래서 육체에 한 한 법을 추구하고 정욕적이며 육신의 소욕을 따라 쉽게 분노하고 쉽게 말해버린다.

 

그러나 이면적인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자이다.

모든 분별과 판단을 말씀에 의하여 맡기고 살아간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여긴 자로서 오직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게 하신대로 살아가고 있다.

 

모든 환경과 되어지는 일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잠3:6처럼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게 된다. 자기의 것을 구하지 않으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가지로서 나무만 의지하고 살아가며 나무이신 예수께서 열리게 하시는 대로 열리는 열매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두 얼굴의 모습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두 얼굴은 말씀이 그 마음에 있느냐 없느냐 로 구분되고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살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