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아이들
2010.06.17 15:36
지금
선유도는
접동
접동
애오라비 접동
접동새 소리 구슬픈
유월의 밤
우물가에서 앵두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뒷모습
우리는 매월 첫 주일 마다 주님의 성만찬을 기립니다.
포도가 많이 나는 계절에 잘 익은 백구포도로 엄선해서 집사님들이 설탕만 넣고
포도주를 담가 밀봉했다가 두어 달 지나 맑게 걸러낸 향기로운 포도주를
서늘한 곳에 보관해 두고 1년 내내 사용합니다.
황순희 집사님은 온 성도들이 큼지막하게 뜯어 먹어도 남을 만큼
커다란 빵을 그 때 마다 쪄옵니다.
성도님들이 주의 성찬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가 목사님 앞에 섭니다.
한 분 한 분, 차례 차례....
허리가 반으로 접힌 윤옥배 집사님
허리디스크로 한 쪽 다리가 짧아진 이복녀 집사님
심한 관절염으로 다리가 휘어진 최옥순 권사님
근육통으로 다리를 끄는 임미라 집사님
등이 굽은 강순애 집사님
눈꺼풀이 오른 쪽 눈을 다 덮어버린 박연순 집사님
젊었던 시절에 쌀 한 가마니를 머리에 이고
통계잔등을 훠이훠이 넘었다는 전설을 가진 정풍연 권사님
이제는 돌 지난 증손자 요한이 업어주기에도 버거워 보입니다.
열심히 올라오는 흰 머리카락을 염색으로 감춘 오영이 집사님
그냥 올백(all white)인 채로 놔두는 윤복이 집사님.
선유도에 와서 앵두가 익어가는 유월을 스물 두 번째 맞이하는 동안
성도들의 뒷모습이 많이 변했습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은 쓸쓸합니다.
특히 마른 나뭇가지처럼 야위어가는 노년의 뒷모습은 더 쓸쓸합니다.
조금씩 기울어가는 노년의 뒷모습은 더 쓸쓸합니다.
매번 주의 성만찬을 받으러 나가는 성도들의 뒷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릿해져 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
신명기 34장에 모세가 느보산에 오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을 보려고
전에 모세는(신 4:23-28)'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하나님께 요단 저쪽의 땅,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들여보내주시기를 간구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언지하, 단 한 번으로 모세의 요청을 거절하십니다.
덧붙여서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단단하게 못 박으십니다.
전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모래 바람 부는 광야에서 모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제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목이 곧은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어떻게 대들었는지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완고하고 탐욕스러웠던, 그리고 번번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던 무리들을 어떻게 변호했는지를
너무나 잘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무 무자비하신 것 같아서....
가데스 므리바 물가에서의 단 한 번의 실수를 너무 가혹하게 벌하시는 것 같아서
오랫동안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섭섭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컴으로 성경 쓰기를 하다가 신명기 34장에 이르렀습니다.
내 묵은 상처처럼 뻐근한 아픔이 남아 있는 34장을 자판으로 치기 전 찬찬히 먼저 한 번 읽었습니다.
묵은 상처를 들춰내듯 조심스럽게.
그런데 열 번째 줄에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하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모세 사후 그의 수종자였던 여호수아가 첨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
여호수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존경하는 스승,
결코 넘을 수 없는 큰 산인 스승의 사망기사를 쓰면서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하고 스승을 후세에 전합니다.
광야 사십 년 동안 패역한 무리들 앞에서
원망과 불평을 들으면서 돌질하러 달려드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존전에 엎드렸던 모세
그는 때마다 일마다 '여호와께서 대면하여'주셨던 은총을 누렸던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누렸던 사람이었던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있었던 그 감격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모세를 친구와 같이 대하셨던 하나님의 특별하심을 생각하다보니
하나님께 대한 섭섭함이 다 사라졌습니다.
고독했던 광야 학교와 그보다 더 혹독했던 광야의 수업이었지만
그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하나님의 만나주심이 있었기에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세는 만족햇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두 눈으로 보았던 사람
하나님이 행하신 큰 권능과 위엄을 두 눈으로 보았던 사람
그는 그것으로 충분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나이 知天命
이제 하늘의 음성을 들 을 수 있는 나이(?)
어느 날 부터인가 은퇴 후의 일들을 가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어딘가 조금씩, 혹은 아주 많이 아픈 노년의 성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늙어가겠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빛나는 젊은 날을 여기에서 보낸 후
말년이 누군가의 짐이 되면 어쩌나 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가끔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신명기 34장을 읽는 것이 아팠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날 아침
매일 매 순간을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았던 모세의 감격스런 삶이 깨달아지면서
나도 매일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을 수만 있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을 수만 있다면
매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다소 쓸한 노년도
혹 누군가의 짐이 되는 말년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어 어떻습니까?
종일 뿐인데요. 그죠?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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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산에서 우리는 손바닥만한 약속의 땅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 은총으로 일기가 쾌청해서 그 천지사방을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산정에서 나는 설교할 수 있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미완의 완성, 그 참된 완성을 은혜로 누린 모세의 삶을 우리는 함께 묵상했습니다.
근데 오늘 선유도 이야기 속에서,
모세가 누린 은혜를 하나 더 발견합니다.
누군가의 짐이 되는 말년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은혜(?)
그 은혜를 나도 누리길 앙망합니다.
그러나 또한 그 누군가가,
그 누군가에게 '짐이 될 내 말년'을 짐으로 여기지 않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살아 있음에 오히려 감사한 여명이길 빕니다.
지천명? 아직 파릇파릇하시네요.
이순耳順-귀 순한 나이.
헌데 왜 나날이 더 완고해져 가는 지......
벌써 스물 두 해.
선유도 이야기 그 연륙은 언제인지?
그 현실이 낭만인 우리 육지 것 들은,
그 청정 선유도 이야기가 끝간데 없이 이어지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앵두가 익어가는 우물가, 그 애잔한 향수 뒷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