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부끄러운 심정

2010.08.05 10:03

오해춘 조회 수:762 추천:64

부끄러운 심정

 

 

 미국은 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 위기를 맞아 전국민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민자들이 겪는 고통은 두말할 것 없고 미국인들까지 가계지출을 현격히 줄이고 있는 실정이라 서민들의 주머니형편이 이만 저만 아니다.

 

사람들은 서류가방에다 커다란 사각도시락 가방까지 들고 직장으로 향한다. 개스값을 줄이기 위해 카풀 이용객이 부쩍늘고, 대저택을 팔아 작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를 선호하는 추세며, 부모자식이 떨어져 살다가 생활비 아끼려 한 집에서 함께 거주하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 오늘의 미국의 모습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태반이 직장을 얻지 못해 갈수록 실업률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 누구를 만나도 예전 같지 않은 현실을 보고 걱정만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 어느 곳 걱정 없는 곳이 있을까 싶지만 이민1세대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미경제사정 때문에 한인타운에 들어서면 스산하기까지 하다.

 

 철없는 자녀들이 드나드는 술집만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뿐인가 여과 없이 쏟아지는 각종 유해매체를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부모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청소년시기는 부모와 함께 지내야 하는 시기이다. 법에 의하면, 13세 이하 아이를 홀로 집에 두거나 18세 미만 청소년은 보호자 없이 밤10시를 넘기면 법적으로 처벌받게 된다.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것들은 원천적으로 접근이 불가하도록 암행단속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왜 그리 쉽게 도박, 알코올, 마약, 성문제 접근이 쉽고 용이하게 퍼져 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느 부모는 첫발을 잘 못 내딛은 아들을 데리고 걱정을 덜어보려는 심정으로, 상담소도 찾아가고, 병원도 찾아가지만, 일회성에 그칠 뿐이라고 한다.

 

 심지어 부모들마저 물에 넘어지고 불에 쓰러지고 있다. 술독 앞에 넘어지고, 24시간 화려한 불빛과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기성세대들도 쓰러지고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나는 도박과 술 중독에 빠져 지내는 교포을 만났다. 타국에서 가족도 없이, 딱히 갈 곳 없고, 할 일 없는 날에 밤을 새워, 독한 술을 마셔가며 그는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한인 셋만 모이면, 때와 장소 불문하고 등장하는 고스돕 놀이를 즐기는 부모들 흔히 접하고 있다. 그러다 흥이 나면, 도박장에서 공짜로 보내주는 리무진을 두 세시간 타고 원정까지 가서 탕진하고 온다. 그들 얘기를 들어보면 속칭 빠징꼬에서 쏟아지는 동전소리가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단방에 날려버린다며 듣고 싶지 않은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이런 모습을 보고자란 자녀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물론 이들은 교회에서 지도자요, 책임자요 신실해 보이는 성도그룹들이다. 그러나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갈 곳, 가지 말아야 할 곳, 먹을 것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분간 못하고 있다. 저들이 그 짓 하는데 한푼 주어본 일 없지만, 이민생활이 다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병을 고치고 귀신을 물리치는 능력을 주어서 세상에 내 보내셨다. 그러나 막상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간질병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데 제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지혜와 덕을 중시하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자신도 거짓과 허영에 물든 것을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목사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다.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곳이다.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로서 물 불에 넘어지는 아들의 문제, 아버지의 문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