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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동네

2009.10.16 03:20

오해춘 조회 수:816 추천:39

고요한 동네

 

  구획정리 잘된 동네를 이곳 저곳을 돌아보면 느끼는 것은 그저 고요함이다. 푸르게 펼쳐진 잔디밭과 잘 다듬어진 향나무, 편백나무 그리고 아름드리 도토리나무와, 단풍나무들이 동네와 집들을 지키고 있다. 하늘로 쭉 뻗은 키큰 도토리나무 숲들이 동네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은 원시림 그대로이다.

 

  동네를 들어서면 사람이 사는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고, 간간히 잔디깍는 기계소리만 진동할 뿐이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잔디깍다 말고 오랜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며 ‘하이’하며 인사를 보낸다.

 

  집들은 대략 30미터에서 50미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푸른 잔디위에서 침몽, 다람쥐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는가 하면 가끔 야생토끼나 붉은 여우, 사슴 등이 놀고 있다. 집주인 직접 잔디관리를 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업자들에게 맡겨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봄과 가을에 비료를 뿌리는데 잔디에는 영양비료이면서, 잡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성분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뿐인가 한달에 두 센번꼴로 집주변의 잔디를 깍아준다. 잔디를 깍는 소리외는 거의 조용함에 동네의 모습이다.

 

  해가 지면 더욱 고요해진다. 커다란 집일지라도, 마당초입의 10와트 정도의 전등뿐이다. 퇴근후 쇼핑하고오는 지각 귀가 차량 불빛만 보일 뿐이다. 저녁이 되면 더욱 고요하다 못해 으슥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끔 보듯이 저 아래 상가지역의 맥주집은 동네사랑방, 맥주 한 캔 시켜놓고 서양장기두며, 두 세시간 실컷 떠들고서 집으로 각각 돌아간다.

 

  내가 아는 동포는 백인들과 한동네에 살지만 저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멀쩡한 잔디를 뒤엎고 그곳에 온갖 유실수를 심어 경계를 그어 버렸다.  한국에서 하던 습성대로 그곳에 자두, 배, 감, 밤, 대추, 무화과, 포도 등이 심어놓아 이곳은 내땅, 저곳은 너희땅으로 말뚝을 박아버렸다.

 

 그리고 한켠엔 무궁화밭을 이루어 놓고 있다. 그뿐인가 개나리, 철쭉나무 또 다른 곳엔 고추, 깻잎, 부추, 호박, 오이, 토마토 등을 심어 놓고 자식 돌보든 지극정성으로 가꾸고 있다. 고국의 유실수와 농작물을 심어놓고 향수를 한껏 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숙히 자리잡은 고요한 동네 사람들에게 나만좋으면 좋다는 식의 발상은 아닐런지.

 

  이사람 뿐이겠는가? 고국을 떠나 살면 누구나 고향이 그리워지는 법, 그래서인지 동포들이 사는 집을 가보면 한켠에 상추, 오이, 토마토 등을 심어 생물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색이 다른 타민족과는 선을 긋고 사는게 우리민족이다. 푸른 잔디대신 상추, 부추 등을 심고, 푸른 향나무 대신, 밤, 감나무가 이웃과의 거리를 갖게한다. 거기에다 타민족과 함께 잘어울리지 못하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 잘난 백인들은  타민족과 어울릴 이유가 없기에 외곽으로 점차 빠져나가고 있다. 워싱턴 디시에서 2시간거리에 최근 뉴타운이 들어선 동네에 가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서울의 어느 한동(洞) 크기만한 곳 한 가운데 대형 인공호수를 조성해놓고 주변에 대저택 수백채 호화롭게 지어 빙 둘러 담장까지 쳐놓고, 수위실을 거쳐 출입하도록 한다. 그 안에 골프장, 수영장등의 온갖 시설을 갖추어 놓고 관리사무소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생각없이 살다보면 대국의 여유로움, 풍요로움 같은 것을 느끼면서도, 이런 저런 주거환경을 접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인종의 벽과 빈부간의 격차가 가면 갈수록 더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