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아이들
2009.05.01 01:32
선유도아이들
-연수니
연수니는
마음이 아프다.
예닐곱 고사리 손
어미 병수발에 눈물마를 날 없었던
연수니는
오래 앓던 어미 여덟 살에 죽어
친어미 얼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의붓어미 매타작에
잔뼈가 굵은 연수니는
컴컴한 뒤란이 무섭다.
장재미(壯子島)에서 배타고
나매기(南岳里) 얼굴 뽀얀 키 큰 남자에게
시집오던 날
연수니는 마음이 설렌다
딸
아들
딸
삼년 터울로 낳고
재미지게 살고펐다.
태생이
게을렀던 신랑은
제 몸 하나 위할 줄 밖에 모르고
시집살이는 고추보다 매웠다
칼날 같던 시엄씨
풍으로 드러눕고
연수니의 병수발은 또 시작되었다
십년 하고도 긴 몇 날을
연수니는
아궁이 앞에서 울었다.
가진 것 없이 이재에만 밝았던
아들놈은
서해안개발 바람에 편승하여
헛 꿈꾸다
공동명의 산 들어먹고
고향엔 발도 못부친다
노름판에서 날이 가고 달이 기우는
서방을 기다리던
꽃 같은 며늘애기는
계집애 둘 떨궈놓고
홀홀
대문을 나섰다.
연수니는
마음이 더 아프다.
그때부턴가 보다
연수니는
사람만 보면
한 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슴에 켜켜이 쌓인
한을 들추어낸다
물에 불린 누에고치에서
실 뽑아내듯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또 그 얘기
어릴 적 매맺던 그 얘기
시엄씨 병수발 그 얘기
사람만 보면
또 그 얘기다
딸 둘이 진저리를 친다.
저 지난해부터
남편에게 치매가 찾아들었다
자주자주
딴 세상 사람이 된다
얼마전 부터는
앉은 자리에서 오줌을 술술싼다.
신경통이 있는 연수니의 오른 쪽 눈은
눈꺼풀이 완전이 덮어버렸다
이도 몽땅 빠져 합죽이다.
연수니 젊은 댁일 때
고구마 한 박스 머리에 이고
한 시간 넘게 걸어와
우리 집 토방에 '쿵'내려주고
씩씩하게 되짚어 걸어가던
그 연수니의 등이
이제는 허깨비처럼 휘휘하다.
손은 갈퀴처럼 크고
머리가 허연
연수니가
오늘 목사님 앞에서 목 놓아 운다
어린 애기 마냥
서럽게 운다
꾹꾹 눌러놓았던
설움을 꺼이꺼이 토한다
우는 연수니를
오줌 싼 바지를 뭉개고 앉은 노인이 멀뚱히 보고 있다.
둘이 누우면
빠듯한 방안에
죽은 듯이 잠을 자는 남편이 무섭다
동네 맨 끝집
天地間에 연수니 혼자다.
아들놈도
딸년들도
연수니의 넋두리에 질려서
전화도 하지 말랜다
남편의 죽음을 혼자서 보게 될까봐
연수니는 무섭다.
팔십이 낼 모레인
연수니는
여적
마음이 아프다.
댓글 2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70 | 한 낮의 총성 [8] | 오해춘 | 2009.06.18 | 768 |
269 | 영원한 나의 사랑, 나의 애인, 이광옥사모님! [5] | 양동춘 | 2009.06.17 | 1048 |
268 | 지방회를 통한 은혜 [1] | 박원석 | 2009.06.10 | 576 |
267 | 선유도아이들 [2] | 그루터기 | 2009.06.04 | 589 |
266 | 오는 주일(2009년 6월 7일)은 삼위일체주일 [2] | 윤사무엘 | 2009.06.03 | 1216 |
265 | 미 기독교인이 줄고 있다. [2] | 오해춘 | 2009.06.02 | 665 |
264 | 성령 강림주일 (2009년 5월 31일) [45] | 윤사무엘 | 2009.05.30 | 1743 |
263 | 자녀사랑 [1] | 박원석 | 2009.05.29 | 592 |
262 | 가족의 힘 [3] | 오해춘 | 2009.05.26 | 891 |
261 | 제 12차 볼리비아 교육선교여행기 [3] | 윤사무엘 | 2009.05.19 | 1088 |
260 | 선유도아이들 [2] | 그루터기 | 2009.05.18 | 555 |
259 | 세가지 금 [3] | 오해춘 | 2009.05.17 | 811 |
258 | 선유도아이들 [5] | 그루터기 | 2009.05.07 | 1044 |
257 | 남자가 앉아서 소변본다 [2] | 오해춘 | 2009.05.03 | 1534 |
» | 선유도아이들 [2] | 그루터기 | 2009.05.01 | 795 |
255 | 동성애자 성직 안수 반대 유지(미국장로교) PCUSA [1] | 윤사무엘 | 2009.04.30 | 785 |
254 | 피고 지고 [1] | 박원석 | 2009.04.25 | 766 |
253 | 우리신앙의 뿌리를 찾아서(7) [5] | 어진이 | 2009.04.24 | 2586 |
252 | 책소개/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4] | 오해춘 | 2009.04.24 | 727 |
251 | 우리신앙의 뿌리를 찾아서(6) [1] | 어진이 | 2009.04.21 | 920 |
참고 참았던
설움을 길고길게 퍼올렸습니다.
한 사람의 생이 왜 이다지도 힘이 드는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