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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아이들

2009.05.01 01:32

그루터기 조회 수:795 추천:62

선유도아이들

             -연수니

 

연수니는

마음이 아프다.

 

예닐곱 고사리 손

어미 병수발에 눈물마를 날 없었던

연수니는

오래 앓던 어미 여덟 살에 죽어

친어미 얼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의붓어미 매타작에

잔뼈가 굵은 연수니는

컴컴한 뒤란이 무섭다.

 

장재미(壯子島)에서 배타고

나매기(南岳里) 얼굴 뽀얀 키 큰 남자에게

시집오던 날

연수니는 마음이 설렌다

아들

삼년 터울로 낳고

재미지게 살고펐다.

 

태생이

게을렀던 신랑은

제 몸 하나 위할 줄 밖에 모르고

시집살이는 고추보다 매웠다

칼날 같던 시엄씨

풍으로 드러눕고

연수니의 병수발은 또 시작되었다

십년 하고도 긴 몇 날을

연수니는

아궁이 앞에서 울었다.

 

가진 것 없이 이재에만 밝았던 

아들놈은

서해안개발 바람에 편승하여

헛 꿈꾸다

공동명의 산 들어먹고

고향엔 발도 못부친다

노름판에서 날이 가고 달이 기우는

서방을 기다리던

꽃 같은 며늘애기는

계집애 둘 떨궈놓고

홀홀 

대문을 나섰다.

 

연수니는

마음이 더 아프다.

 

그때부턴가 보다

연수니는

사람만 보면

한 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슴에 켜켜이 쌓인

한을 들추어낸다

물에 불린 누에고치에서

실 뽑아내듯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또 그 얘기

어릴 적 매맺던 그 얘기

시엄씨 병수발 그 얘기

사람만 보면

또 그 얘기다

딸 둘이 진저리를 친다.

 

저 지난해부터

남편에게 치매가 찾아들었다

자주자주

딴 세상 사람이 된다

얼마전 부터는

앉은 자리에서 오줌을 술술싼다.

 

신경통이 있는 연수니의 오른 쪽 눈은

눈꺼풀이 완전이 덮어버렸다

이도 몽땅 빠져 합죽이다.

 

연수니 젊은 댁일 때

고구마 한 박스 머리에 이고

한 시간 넘게 걸어와

우리 집 토방에 '쿵'내려주고

씩씩하게 되짚어 걸어가던

그 연수니의 등이

이제는 허깨비처럼 휘휘하다.

 

손은 갈퀴처럼 크고

머리가 허연

연수니가

오늘 목사님 앞에서 목 놓아 운다

어린 애기 마냥

서럽게 운다

꾹꾹 눌러놓았던

설움을 꺼이꺼이 토한다

우는 연수니를

오줌 싼 바지를 뭉개고 앉은 노인이 멀뚱히 보고 있다.

 

둘이 누우면

빠듯한 방안에

죽은 듯이 잠을 자는 남편이 무섭다

동네 맨 끝집

天地間에 연수니 혼자다.

 

아들놈도

딸년들도

연수니의 넋두리에 질려서

전화도 하지 말랜다

남편의 죽음을 혼자서 보게 될까봐

연수니는 무섭다.

 

팔십이 낼 모레인

연수니는

여적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