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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2009.04.14 13:56

박원석 조회 수:794 추천:45

“살든지 죽든지”

 

사람은 어떻게든 살려고 애를 쓴다.

살아있기 때문에 살려고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일이다.

죽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은 죽어야만 하는 개인적인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연예인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여 사회에 충격이나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인데 적어도 이 생명에 관한한 사람의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웬만하면 알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태어나고 죽어가는 것은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고 있다.

인간의 기쁨과 분노 그리고 슬픔 즐거움이 교차되는 매일의 삶에서 살든지 죽든지라는 가치관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인생에 대하여 어느 정도 정리되어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라고  말할 때는 삶과 죽음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서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이 전능자의 뜻하심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전능자에 대한 경외감일 것이다.

전능자이신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을 만드시고 사람을 마지막에 만드셔서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

 

하나님과 교제가 계속되었을 때는 살든지 죽든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고 나서는 사람은 그때부터 살든지 죽든지가 문제였다.

이 땅의 사람들은 지금도 살든지 죽든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는 것에 있어서 잘 살아 볼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죽는 것에 있어서는 죽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사람들로 이 땅에 가득차고 있다.

그러나 내가 살든지 죽든지 신경이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 사람의 사는 문제와 죽는 문제의 열쇠를 쥐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 분이 초청하기를 마11:28에서“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

 

이렇게 예수님 앞에 나오면 빌1:20에서“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는 말씀대로  나를 통하여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라게 되어 진다.

 

그리고 고백은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