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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장로님을 추모하며

2009.03.02 12:20

윤사무엘 조회 수:1473 추천:93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창가를 보니 하얀 눈이 대지를 덮고 있었습니다. 교회로 출발하면서 눈을 털어내고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습니다. 3월 첫날 조국에서 3.1절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사순절 첫째 주일이기도 합니다. 홍태경 장로님께서 어제 새벽에 평온히 주무시는 자세로 천국에 가셨습니다. 얼굴 표정이 환하며 모든 주름살이 펴지시고 92세의 노인 모습이 아닌 60대의 모습으로 보이셨답니다. 이번 주간 진행되는 장례예배가 은혜가운데 잘 마칠 수 있도록 적극 참석해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유가족들에게 크신 위로하심을 기원드립니다. 사람은 세가지 생일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태어난 날, 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적인 생일, 그리고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혼의 장막을 덧입는 천국입성 생일입니다. 본 훼퍼가 형장으로 끌려 가던 1945년 4월 5일은 종려주일이었습니다. 그는 수백명 죄수들에게 전도하였으며 기도와 상담 및 말씀을 증거했는데 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위해 울지 마시고 여러분들을 위해 우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천국에 입성하는 좋은 날입니다 하고 형장으로 당당히 나아갔다고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모세의 죽음, 다윗의 죽음, 세례요한의 죽음, 예수님의 죽음, 사도들의 죽음 등... 우리 신앙의 선배들처럼 우리는 주님안에 죽어서 주님 품에 안깁시다. 그래서 성도의 죽는 것은 복이라고 요한 계시록 14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 주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이미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홍장로님께서 구순 축하모임에서 후배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나는 피난 내려와서 50년간 서울 청암교회 장로로 봉사를 했습니다. 한번 장로가 되면 그 교회를 죽을 때까지 봉사하는 것이외다. 오늘날 이민 교회의 제직들에게 큰 도전의 말씀이었습니다. 실지로 장로님의 제직 세미나를 듣고 뉴욕의 어느 큰 교회를 섬기시던 장로님께서 교회를 옮기려다가 마음을 고쳐 먹고 지금까지 잘 봉사하고 계십니다.

 

일찌기 서소문동에 있던 대한신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7회). 그런데 목회자의 길을 걷지 아니하시고 평신도로 계시면서 사실 목양을 하셨습니다. 박형룡목사님, 이한수목사님을 담임으로 모시면서 교회서나 노회에서 크게 존경받으시던 인물이셨습니다. 장로님의 조부모님은 한국 황해도의 초기 신앙인이셨습니다. 그래서 장로님 가문의 6대째 기독교 집안으로 후손들이 신앙생활 하고 계십니다.


홍장로님께서는 작년까지만 해도 찬양대 가운을 입으시고 찬양대원으로 서셨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좋은지 지휘자 집사님께서 좋아하셨습니다. 찬양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병문안 가면 찬양을 불러달라고 주문하십니다. 고무호수를 코에 꽂은 상태에서도 찬양을 따라 부르셨습니다. 특히 55장(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즐겨 부르셨습니다. 지난 번 마지막 병문 심방하였을 때 상태가 호전되어 말씀도 하시고 기분이 많이 좋아져 계셨습니다. 그때 제가 두가지 부탁을 드렸습니다. "장로님 천국 가실 날이 점점 가까이 오는데, 기도하시면서 회개하지 않는 죄들을 모두 주님께 내놓으십시요. 죄짐을 주님께 다 고하시고 가벼운 심령으로 천국가실 준비를 하십시다. 또 천국가시는 순간까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실 것 모두 용서하시고, 불평 원망한 것까지도 감사의 제목으로 바꾸어서 감사하십시다"  고개를 끄떡이시던 장로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홍 장로님을 추모하며, 유가족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은총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