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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4)

2009.04.04 12:26

어진이 조회 수:4033 추천:96

2부 - 겨자씨와 밀알이 되어 섬기는 선교 (풀뿌리 복음)

견미단일행

하나님께서 굳게 닫혀진 조선의 빗장을 풀어주시자, 물밑듯한 복음의 기회와 역사들이 톱니바퀴가 들어맞듯이 일어나게 된다. 질풍노도처럼 풀리는 조선에 대한 복음의 본격적인 공격은 1882년 조미수효조약을 발판으로 삼아 그 힘을 더해 나간다.

하나님이 이 민족의 복음화의 작은 숨구멍 - 그러나 그것이 생명구멍이요, 폭발의 뇌관이 되는-으로 주신 것이 1882 한미수호조약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조약의 결과로 조선은 견미단을 파견하게 되는데 민영익은 1883년 7월 조선 정부의 전권 대사로 미국에 갔을 때, 우연히 열차 안에서 볼티모어의 가우처 대학의 총장인 가우처(Dr. John F. Goucher) 박사(각주1)와 만나고 같이 여행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의 정세에 얘길 하고, 조선의 선교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된다. 결국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아펜젤러 부부가 조선에 오게 된 것이다. 또한 동경대학에 동양학 교수를 오랫동안 역임했던 한국통 그리피스 (W.E.Griffis, 1843~1928)와도 뉴욕에서 면담한다. 또한 캐나다 선교사 게일 (J.S.Gale, 1863~1937)을 만나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다른 아무도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그분은 도와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민영익을 만난 가우처는 우선 자신의 종자헌금 2천불을 해외선교부 감독인 파울러 감독에게 보내고, 이후 3천불을 더했다. 그러나 해외선교부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1884년 1월 일본 주재원으로 있던 맥클레이 선교사(각주2)에게 조선에 대해서 선교가능성을 타진해보라고 지시한다.

“만일 은둔국인 조선에 선교 사역을 위해 그 나라를 답사하고 선교부를 설치할 만한 시간을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교도 땅에 최초의 개신교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1884년 6월 27일 맥클레이는 외교부의 주사로 있던 김옥균의 주선으로 7월 2일 서한이 고종에게 전달되고, 다음
가우처 박사
날 고종황제를 알현하고 학교와 병원 사역에 대한 윤허를 얻어낸다. 7월 8일 맥클레이는 서울을 떠나고 맥클레이의 보고가 감리교 해외 선교부에 알려지고, 기관지인 가스펠 인 올 랜드에 조선 선교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글을 싣는다. 또한 제임스 버클리란 에드버킷 신문의 주필이 조선에 관한 기사를 15회나 기재하여 선교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오하이오 주에 사는 슬로콤이 천 불을 보냈고, 아홉 살 배기 캘리포니아 소녀가 9불을 헌금했다. 맥클레이의 선교사의 고백처럼 고종황제의 선교 윤허는 주께로부터 온 것이다.


가우처 목사를 만난 것으로 인해, 미감리교 해외선교부가 자극을 받고, 비록 해외선교부는 아니지만 맥클레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그리고 제임스 버클리가 움직이고 슬로콤과 9살 작은 소녀까지 이 땅을 위해 헌신하게 하고 준비시키셨다. 그리고 여기에 맞춰서 국내에서는 민영익과 이수정이 움직이고, 드디어는 고종황제까지 ‘포교는 안되지만 병원과 교육은 가능하다’는 본격적인 조선 선교 시작을 알리는 영단(靈斷)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감리교는 아펜젤러 부부와 스크랜턴 부부와 어머니 스크랜턴를 준비하고, 장로교는 알렌과 존 헤론이라는 당대의 최고의 수재, 그리고 언더우드를 파송한 것이다.


선교의 베이스 캠프 “광혜원”을 마련한 알렌
가장 먼저 오는 이는 알렌이다. 알렌은 1858년 4월 23일,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났다. 1881년 웨슬리안 대학교를 졸업하고 1883년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즉시 장로회 중국선교사로 파송받는다. 그해 10월 11일 부인 메신저와 함께 상해에 도착하지만 1년동안을 사역지를 정하지 못하던 차에 동료 선교사인 헨더슨(Henderson)으로부터 조선 선교에 대한 소개를 받는다. 또한 그 시기에 견미단으로 가서 귀국중이던 민영익 일행을 중국에서 만나서 조선 소식을 듣게 된다. 또한 직접 조선에 있는 하스(Joseph Hass)라는 친구에게 알아본다. 6월 8일에 선교부에 조선 선교사로 보낼 줄 것을 간절히 요청하고, 하스는 미국공사 푸트(L.H.Foote)에게 말하고 푸트는 주한미국공사관의 공의로 그를 채용할 뜻을 밝힌다. 결국 6월 22일 선교부의 승낙이 있고, 드디어 조선선교사로 1884년 9월 20일에 입국하게 된다.
맥클레이 선교사

그는 처음에는 공관의 의사로서 역할만 하고 선교사의 티를 내지 않았으나 점차 소문이 나서 마침내 고종황제는 알렌에게 선교사가 아닌가 질문했다. 그때에 푸트는 “그는 미국 공사관의 부속 의사에 불과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결국 기회가 찾아오는데 바로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이다.(각주3) 이 사건으로 인해 민영환의 조카인 민영익이 개화파에 의해 난자를 당하게 되는데 14명의 한의사들이 고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알렌은 그의 요리사(각주5)와 가서 27곳이나 꿰매어 3개월을 간호하고 돌본 끝에 결국 살려내게 된다. 이 일로 알렌은 십만 냥의 하사금을 받게 되고, 고종과 나라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호의로 바꿔 놓는다. 하지만 알렌은 이때를 개인적인 명예와 만족에만 그치지 않고 고종에게 왕립병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결국 고종은 병원설립을 허락한다.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요, 하나님이 주신 지혜요, 하나님이 주신 베짱과 용기라 할 수 밖에 없다. 이에 고종은 그 뜻을 좋게 여겨서 비록 알렌의 신분을 알고 그 병원이 선교에 이용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참수당한 홍영식의 집을 제공하고, “광혜원”이라는 사액을 내린다. 1885년 2월 25일(음력이고, 양력으론 4월 10일) 드디어 역사적인 한국의 첫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한다. 광혜원은 13일 후 제중원으로 바뀐다. 고종은 알렌에게 “광혜원이 백성 만인의 병을 퇴치한다 하니 알렌 의사의 공적은 더욱 헤아릴 수 없소, 이에 과인은 알렌을 조선 조정의 참판에 서품하고 궁중 어의로 임명하는 바이오”라는 어명을 내린다. 이것은 한국에서 본격적인 선교 사업의 신호탄이 된다. 이 광혜원이 바로 세브란스 병원의 전신이요, 오늘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모체인 것이다. 그럼 그 과정을 살펴보자

각주1) 가우처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 가우처는 볼티모어에 있는 러브리래인 감리교회의 담임목사, 이 러브리레
알렌선교사
인 교회는 1772년 웨슬레가 미국 순회전도사로 프랜시스 애즈베리를 파견하고, 애즈베리와 죠셉 필모어가 공동으로 목회하면서 미국 감리교회의 모교회가 된 곳이다. 이 교회에서는 감독이 8명 배출되었고, 가우처는 부유한 처가의 도움으로 대학을 설립하고 1902년까지 총장직을 유지했다. 현재도 가우처 대학은 존재한다.각주2) 맥클레이 선교사에 대해 알아보자, 맥클레이 선교사는 일본에 있는 이수정에게 성경을 가르쳤던 인물이다. 1882년 민영익이 일본의 신사유람단으로 갔을 때에 이미 만났다.

각주3) 갑신정변은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 민영익 등은 친청 노선의 개화파와,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친일적 개화파 사이에서 일어난 권력 쟁투전으로 보는 편이 대세이다. 홍영식이 친일적 개화파에 붙으므로써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설 축하연에서 친청파를 제거하고자 하는 모략을 일본과 공모한 것으로 심일천하로 끝나고 만다. 이 일로 홍영식은 참수되고, 김옥균과 일본공사는 겨우 목숨을 연명해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 홍영식의 집은 후에 알렌에게 병원 부지로 제공되어 거기에 광혜원이 세워지고, 김옥균은 훗날 상해에서 암살당하고 다시 한국에서 육시형을 받는다. 서재필은 이후 망명하여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서 신학문을 공부하고 훗날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각주4) 갑신정변은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 민영익 등은 친청 노선의 개화파와,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친일적 개화파 사이에서 일어난 권력 쟁투전으로 보는 편이 대세이다. 홍영식이 친일적 개화파에 붙으므로써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설 축하연에서 친청파를 제거하고자 하는 모략을 일본과 공모한 것으로 심일천하로 끝나고 만다. 이 일로 홍영식은 참수되고, 김옥균과 일본공사는 겨우 목숨을 연명해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 홍영식의 집은 후에 알렌에게 병원 부지로 제공되어 거기에 광혜원이 세워지고, 김옥균은 훗날 상해에서 암살당하고 다시 한국에서 육시형을 받는다. 서재필은 이후 망명하여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서 신학문을 공부하고 훗날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광혜원


각주5) 여기서 재밌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 온 알렌의 가정 요리사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이하영이었다. 그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알렌으로 인생이 열린 경우라고 할 것이다. 알렌이 와서 기다리는 동안 묄렌도르프 로부터 급보가 날라들었다. 빨리 자기 집에 와서 환자를 치료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알렌은 거기로 달려가게 되는데 거기엔 당대 최고의 세도가인 민영익 대감이 칼에 난자가 당해 쓰려져 있는것이 아닌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살려 내야 한다는 말에 알렌은 며칠 밤을 새우면서 치료를 하고, 이때 이하영도 알렌과 똑같이 옆에서 알렌을 거들게 된다. 결국 민영익 대감은 다시 살아나게 되고, 후한 사례를 받게 되고, 왕의 시의가 되어 매일 출입하게 되는데, 이때 영어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자는 그래도 이하영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동행하게 되는데, 이하영이 벼슬이 없는 상태에서 임금을 알현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 결국 이하영에게 벼슬을 내리게 된다. 이후 그는 박정양 공사가 미국 방문할 때 수행원으로 가게 되는데, 그는 고종의 특별한 지시를 받고 간다. 고종은 원산과 부산 인천 부두를 담보로 20만 불을 대출받아 그 돈으로 미군 20만을 대려오라는 밀지를 내렸다. 이하영은 20만원을 대출받는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영어가 되므로 로비를 위해 낮과 밤으로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미군 파병은 상원에서 부결되고, 그러자 그동안 허비한 대금을 반환해야 하는 이하영은 초긴장과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 당국에서는 그동안 허비한 돈은 미국에서 책임질테니 나머지 돈을 반환하라는 결정을 내린다. 이하영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하영의 후일담은 그리 좋지 않다. 을사오적 다음으로 을사육적이 될 뻔했고, 실제로 그는 친일행각을 벌인다. 그는 알렌을 만나서 인생이 꽃핀 경우인데 용두사미로 끝나게 되어 실망스럽다. 하지만 이하영에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이하영은 친일로 욕을 먹지만 그의 손자는 서슬퍼런 박정희 정권의 반민특위의 칼날에서 살아남은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이다. 그는 1952년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직선제 개헌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경남·전남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훈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그해 7월 참모총장에서 해임되고, 1953년부터 7년간 육군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다가 1960년 육군중장으로 예편하였다. 5,16 쿠테타 때 반민특위로부터 할아버지로 인해 친일로 낙인찍혀 고생했으나 이승만에 대한 항명으로 인한 기록으로 다행히 오명을 벗게 된다. 그로 인해 이탈리아 대사, 국회의원등을 역임한다. 어찌됐건 이하영, 이종찬의 집안은 알렌 선교사로 인해 일개 요리사에서 장관과 국회의원까지 지내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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