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신년설교/호기성 목사

2012.01.03 22:46

좋은글 조회 수:1890 추천:73

2012년 1월 3일(화) 오전 7시
서울중앙지방회 신년하례예배설교문

유수 같은 인생(마5:33-37)

호기성목사(새로운교회)

 

지난날에 이 자리가 언제쯤 내게도 올까? 그런 생각을 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왔군요.

그런데 이 자이에 서 보니까 회한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목회자로써 나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남겼나?

한 인간으로써 70여 평생을 무엇을 위해 살았나?

 

그래서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멋진 설교? 아니면 무슨 영원히 남을 만한 교훈 같은 것? 아니면 희망의 새해이니까 “꿈과 희망”을 가지시라고 열변을 토할까요?

 

설교를 잘 하지도 못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인간이 어떤 의지를 가진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리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물이 흐르는 듯”하는 인생을 생각 해 보고 싶었습니다.

 

1. 지난 날들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라고 첫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교회당을 좀 넓히려고 하다가 교회를 아예 손을 놓게 되었을 때 어떤 분은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하신 분도 계셨고, 또 어떤 분은 죽 쒀서 개주었 다고 하드라구요.

 

그런데 여러분! 이런 말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부끄러운 성공, 좋은 실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성공보다 좋은 실패를 택하겠다면 그 생각이 옳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좋은(동기)시도가 있는 실패는 한 번의 기회를 잠깐 놓치는 것뿐이지만, 부끄러운 성공은 수많은 기회를 모두 잃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실패 속에서 어떤 가치 있는 시도가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에게는 영성과, 지성과, 도덕성과, 인격성과, 자율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물질적으로 부유하더라도 거기에 만족함이 있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지성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고, 깨어있지 않으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설교를 해 왔을 것입니다.

 

요즘은 남자의 야성(멋진 남자)을 가리켜서 짐승남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 말은 사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말 입니다.

동물적인 차원으로 격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노아시대의 사람들이고,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으로 인해서 물과 함께 유황불 연기와 함께 한줌의 재로 사라지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런 짐승남 같은 성공이나 어떤 성취에 몰두 해서는 안되리라 생각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지난 날들에 대해서 속 아파 하지도 말고, 후회 하지도 말고, 심지어 누구를 원망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2. 때를 미리 준비 할 뿐입니다.

러시아에서 내려오는 전래 동화 가운데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죽음의 사자가 그의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 젊은이는 죽음의 사자에게 항변했습니다.

“나는 아직 젊습니다. 그런데 어찌 미리 알리지도 않고 내 앞에 들이닥치는 것입니까?”

“아, 그렇구나. 자네의 걸음걸이가 이상하여 다른 사람인 줄 착각하였네. 그 걸음걸이를 고치도록 하게, 앞으로는 미리 알려주겠네.”

젊은이는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젊은이는 자신의 걸음걸이가 병든 사람으로 보이는가 싶어 늘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젊은이는 항상 꼿꼿한 자세로 걷고 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아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그만 무엇에 홀렸는지 독한 술을 마시고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 죽음의 사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는 다시 죽음의 사자에게 항변했습니다.

“잘못 보았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아니긴… 이번에는 그대 차례일세.”

“언제 제 차례라고 알려주었습니까? 지난번에 제 차례면 미리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백 번도 넘게 그대에게 알렸네.”

오늘도 그대는 발을 헛디뎌 쓰러질 뻔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거울을 볼 때마다 주름살을 보았을 것이고,

또 종종 무릎이 아프고 숨이 찼을 것이네.

그 모두는 내가 그대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네.”

 

그러자 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죽음의 사자를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모든 만사는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3. 영적 호연지기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은《맹자》의 <공손추> 상편에 나오는 말로

“호연지기”란 사전적 의미를 보면

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정기

② 공명 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

③ 잡다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느긋한 마음

 

우리 목회자들은 이미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승리를 목도한 사람들 아니니까?

예수 안에서 이미 하나님이 주신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야 마땅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 하는 데에서 오는 여유와 평안, 그리고 주어진 결과와 현실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적인 것에 목숨 걸지 않는 대범함이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절대적인 세계에 몸담은 자에게서 나오는 깊은 정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호연지기입니다.

물론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승리만을 믿고 무책임한 게으름, 무사안일에 눌러 앉으란 말은 아닙니다.

성직자들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푯대를 향하여 풋풋하게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다 헛됨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삶의 영적 호연지기를 잃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서 욕을 먹는 이유가 바로 이런 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의 지평이 지나치게 좁고, 조급하고, 분주합니다.

비교에 민감하고, 역사적이기 보다는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 몰두 합니다.

신앙을 심화하기 보다는 강화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입신양명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데 주님의 이름으로 입신양명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부귀영화에 굴복하지 않아도 되는데 부귀영화에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중생과 성결을 강하게 주장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은 성결의 시작이며 성결은 중생의 결과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교리와 호연지기의 삶이 여기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느 성자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소개 해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느 성자의 가르침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 한 성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성자를 찾아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 왔지만 별로 신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정말 영리해 보이는 한 젊은이가 찾아와 제자 되기를 원했습니다.

며칠 후 그 젊은 제자가 성자에게 간절히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성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내가 가르쳐 주마.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다"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이 오래 동안 반복되었습니다.

 

10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성자는 제자를 데리고 숲 속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너에게 고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 내 뒤를 따르라" 드디어 그 날이 닥아 온 것이었습니다.

 

성자는 갑자기 숲 속을 향해 쉬지 않고 뛰어 갔습니다. 제자도 숨을 헐떡이며 따라 갔습니다. 한참을 달리던 성자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아름드리 되는 큰 나무를 끌어안고는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는 당장 성자에게 달려가 나무에 매달린 성자를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떼어 놓았다 싶으면 성자는 다시 나무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제자는 나무가 성자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자가 나무에 스스로 매달려 놓지 지 않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제자는 성자에게 나무를 잡은 손을 놓으시라고 타 일렀습니다.

그제야 성자는 마지못해 나무를 끌어안았던 손을 놓으며 말했습니다. "제자야! 바로 이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란다" 하고 말했습니다.

 

제자는 고뇌는 물질과 명예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부여잡고 놓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물질과 명예와 기타 여러 가지 많은 문제에 대한 염려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모든 염려들을 벗어버리라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0 내가 머문 곳 북버지니아 [403] file 오해춘 2008.05.17 42562
389 이번 주일은 창조절(나팔절) [148] 윤사무엘 2009.09.20 24357
388 이스라엘 성지순례기 (2009년 3월 15-21일) [199] 윤사무엘 2009.03.24 19400
387 미국 대륙횡단을 버스로? 그러나 비행기로(2008년 12월 18일-25일) 개정2(마지막) [1008] file 윤사무엘 2008.12.22 16608
386 한인들 미국 동화 빠르다 [448] 오해춘 2008.07.12 5631
385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701] 윤사무엘 2008.12.12 5481
384 김성찬 목사의 서울신대채플설교에 대한 복음적 의미 [303] 어진이 2009.11.28 5213
383 2010년 6월13일 주일설교내용입니다. 행복한 교회 이수만 목사 [34] 행복한사람 2010.07.22 5159
382 정방원/금식후기 [1] 2013.06.04 4356
381 우리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4) [457] 어진이 2009.04.04 4033
380 선교사역의 전환 박원석 2013.06.23 3836
379 적은 무리 박원석 2013.01.21 3805
378 황은연목사 설교-우리들의 영광 [1] 좋은글 2012.03.06 3694
377 우리신앙의 뿌리를 찾아서(5) [171] 어진이 2009.04.07 3686
376 선유도아이들 [2] 그루터기 2012.02.27 3679
375 함께 하는 것 박원석 2013.03.12 3670
374 터키 성지순례기(3)-라오디게아에서 서머나까지 [5] 윤사무엘 2008.04.10 3630
373 가슴을 후비는 말씀 [1] 김세진 2012.04.05 3557
372 두려움 박원석 2013.02.16 3552
371 선유도아이들 [1] 그루터기 2012.02.18 3438